다른 사람들과 함께 추는 것의 중요성
부실하다는 말로도 부족했던 체력은 댄스학원을 나가는 날들이 조금씩 늘어날수록 함께 성장했다. 춤을 추고 나서는 구역질이 날 정도로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집에 가서 샤워하고 다른 할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나아졌다. 유산소 운동의 재미와 보람은 바로 이것이다. 처음엔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것을, 나중에는 조금 덜 힘들어하면서 해낼 수 있게 되는 것. 몸과 운동은 정직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조금씩 쌓이고 성장해나가는 체력이, 일상의 나에게도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당장 스트레칭과 댄스 동작을 따라 하기만으로도 벅차 하던 초반을 지나가니, 조금씩 댄스 그 자체에 집중하며 즐길 수 있었다. 댄스 학원 선생님은 K-POP 안무와 다양한 안무가의 choreography (안무가가 창작한 안무)의 수업을 번갈아서 진행하셨다. 케이팝 안무는 얼마나 완벽하게 아이돌의 안무를 따라 하느냐가 중요하다. 그와 반대로 choreography는 기본적으로 정해진 안무를 따라 하기는 하지만, 그 동작을 자신의 느낌을 담아 살려내는 것이 포인트가 된다. 이전에는 배워본 적 없던 부분이었다. 늘 항상 얼마나 동작을 정확하게 하느냐에 집착했었는데, 조금 자유롭고 여유 있게 춤을 추는 것은 또 새로운 경험이었다. 노래를 듣고 나의 감각과 개성을 담아 출 수 있는 것이 또 다른 몰입을 가져왔다. 유명한 안무가들이 창작한 안무는 난생 보는 동작들, 독창적인 표현들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케이팝 아이돌의 안무와 choreography를 번갈아 배우면서 조금씩 내가 표현하고 느끼는 춤의 범위를 넓혀갔다.
어느 순간 이제 체력의 한계보다는 춤을 더 잘 추고 싶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러면서 조금씩 새로운 고민이 하나 생겼다. 나는 직장과 다른 스케줄의 문제 상 월수반을 다녔는데, 월수반은 초급반이었다. 아직 학원을 개원한 초기라 수강생 수도 많지 않아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인원이 있었는데, 대부분 댄스학원을 처음 시작해본 분들이었다. 부족하나마 나는 이 전에 학원을 일 년 넘게 다녔었고, 동작을 따라 하는 것은 평균보다 빠른 편이었다. 다른 분들이 나를 보고 춤을 따라 하거나, 잘 춘다고 칭찬해 주면 처음에는 으쓱하고 기분도 좋았다. 하지만 문제는 황당하게도 이 반에서 내가 가장 잘 추는 사람이 되었을 때였다.(스스로도 놀라운 일이다) 다른 누군가를 보며 감탄하고, 분발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 의지를 불태우면서 노력해야 춤도 발전할 수가 있다. 하지만 아무 준비 없이 가도 내가 가장 빠르게 동작을 외우고, 정확하게 따라 했다. 학원의 진도는 당연히 수강생의 평균에 맞춰진다. 나는 이미 동작을 다 외웠고, 다음 진도로 나가고 싶은데, 계속 같은 동작을 배우게 되니 좀 나태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본성이 그렇듯이, 도전할 목표가 없으면 재미가 덜 하다.
그러던 중 댄스 선생님이 중급반을 권유하였다. 그 시간이 화목인데, 도저히 시간이 나질 않아서 못 가던 중 회사 스케줄에 일이 생겨 일주일 정도 화목반을 갈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마침 하던 노래가 모두 마무리되었고, 중급반에서도 새로운 노래를 시작한다고 해서 부담 없이 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중급반이라고 하더라도 아무튼 여기는 동네 댄스학원이지 무슨 원밀리언 같은 곳은 아니니, 다들 잘 하긴 잘하겠지만, 내가 아무 열등생이 되지는 않을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다. 노래 한 번 안 들어보고 아무 준비도 안 하고 쭐래쭐래 중급반 수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댄스 수업이 시작되면서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 난 아직 제대로 외우지도 못 했는데, 그다음 진도를 나가고, 또 문제는 다른 수강생들은 그걸 다 따라 하는 것이다. 게다가 동작들은 정확하고, 무엇보다 그냥 잘 췄다. 긴장도가 확 올라갔다. 어어, 이거 정신 안 차리면 나만 구석에서 고장 난 로봇처럼 팔다리를 어색하게 움직이고 있게 될 것이 뻔했다. 선생님의 가르침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내 모든 능력치를 모아 따라 하고 춤을 췄다.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다. 다른 사람들 동작 보면서 감탄하고, 내 춤 보면서 당황했다. 하지만 초급반의 자존심을 보여주겠어. 라며 남들은 신경도 안 쓸 투지를 불태우며 말 그대로 춤을 '열심히' 췄다. 그렇게 온 마음 온 노력을 다해 댄스 학원에서 춤을 배웠던 것이 꽤 오랜만이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부족했지만, 그 점이 오히려 나의 의지를 자극했다. 내가 도달할 목표가 있고, 그것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져오는 쾌감이 있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나보다 잘 추는 건 나에게 오히려 좋은 자극이 되었다.
그 경험을 하고 다시 월수의 초급반으로 돌아갔다. 경험을 안 했으면 모를까, 이미 한 번 중급반의 그 엄청난 에너지와 실력을 느끼고 나니 초급반의 루즈한 진도에 만족할 수 없었다. 댄스 학원 때문에 회사 스케줄까지 조정해야 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부서가 바뀌면서 화목반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중급반으로 반을 변경하였다. 댄스 학원 생활은 중급반에서부터 달라졌다. 나보다 잘 추는 사람들, 내가 집중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따라가기 만만하지 않은 댄스 진도, 그리고 아주 단순히 운동을 넘어서 춤을 좋아하고 잘 추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달랐다. 부끄러움 없이 최대한 열심히 웨이브를 하는 것. 동작을 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여기서는 열심히 춤을 추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부끄러운 일이었다. 다른 이의 열정에는 나 역시 열정으로 응하게 된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추는 지도 생각보다 정말 많은 자극이 되었다. 댄스 선생님이야 워낙 잘하시고, 또 동작의 스타일이 있어서 그게 눈에 익은데, 다른 수강생들의 동작을 보면 그 동작을 익혀서 자신만의 특징을 담아 살려내는 경우들이 종종 있다. 아 저기서 고개를 저렇게 들면 느낌이 또 다르구나, 저 사람은 이 포인트에서 시선 처리를 저렇게 하는구나, 어떤 사람은 웨이브를 굉장히 부드럽게 하는구나 등등 자신만의 스타일이 있고, 그 스타일들을 보면서 내 동작을 수정하거나 혹은 동작을 첨가하거나 빼거나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 옆에서 나 만큼, 그리고 나 이상으로 진지하게 춤을 배우고 춘다는 것이 가져다주는 시너지가 좋았다.
그리고 단순히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동작을 완전히 내 것으로 익히기 위해서는 순서를 암기한 뒤 여러 번 춤을 춰보며 연습을 해야 한다. 그때는 선생님은 빠지고 수강생들끼리 거울로 자기 자신의 모습에 집중하며 춤을 추는데, 그때마다 옆에서 함께 추는 수강생 동료들이 큰 자극과 의욕의 원천이 되었다. 그리고 춤은 혼자 추는 것보다 같이 추는 게 더 재미있다. 같은 노래에 맞추어 함께 그 순간을 공유하며 몸을 움직이는 것은 꽤 큰 교감이 된다. 함께 몸을 맞대거나 어떤 시합을 겨룬 건 아니지만, 요이땅- 하듯이 동시에 시작해서 동시에 같은 움직임을 하며 춤을 추고, 동시에 멈추고 가빠진 숨을 고르는 것은, 혼자서 거울을 보고 춤을 추는 것과는 다르다. 또 나 혼자만 내 모습을 본다고 생각하면 대충 하게 될 동작도, 다른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고, 또 더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든 제대로 습득하고 완성하고 싶어 진다.
학원을 꼭 갈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요즘은 유튜브 댄스 강의도 잘 되어있고, 내가 원하는 춤을 언제든 찾아서 보고 배울 수 있는데, 필라테스처럼 특별한 기구가 필요한 것도 아닌 댄스 학원을 꼭 가야 하냐는 말이다. 물론 이성적으로는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의문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꽤 여러 가지가 다르다. 일단 하드웨어적으로 특별한 기구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댄스에서 사운드는 정말 중요하다. 음악을 빼놓고서는 춤을 논할 수 없다. 대부분은 아파트에서 살고 있고, 그러다 보니 집에서 빵빵한 사운드를 틀기가 좀 어렵다는 점, 그리고 격렬하게 춤을 추다 보면 층간 소음이 심해질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널찍한 공간과 크고 넓은 거울이 집에는 잘 없다는 점이 있다. 그리고 소프트웨어적으로는 결국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혼자만 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다른 이와 함께 추는 것은 정말 큰 즐거움이고 무엇보다 나의 춤 실력을 향상하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이 세상 수많은 스포츠들이 그렇지만, 결국 나보다 잘하는 고수와 함께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