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만 하기에도 허덕였던 시절
댄스에 조금씩 재미를 붙여나갈 무렵, 나는 취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직장 근처에서 자취를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댄스를 배우던 것도 중단되었다. 일단 일부터 익숙해지고 그다음에 운동을 해보자. 하지만 그 일의 시작이 춤의 마지막이었다. 일을 시작한 후 모든 것이 올스탑 되었다. 난생처음 시작한 사회생활은 생각보다 매우 힘들었다. 동종 업계가 대부분 그렇겠지만, 처음 시작할 때 밤을 새워서 일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나는 잠을 못 자면 좀비가 되는 타입이다. 직장생활은 내 모든 잉여 에너지를 앗아갔다. 내가 가진 선택지는 없었다. 열정 가득한 현재의 마음으로 그 시절을 다시 돌이켜 보아도 아마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직장에서의 생활은 쉽지 않았다. 제시간에 퇴근하기도 힘들고, 퇴근을 하게 되더라도 운동은커녕 잠을 푹 자는 게 소원이었다. 취미에 들일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일을 하기 위해 잠을 잤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자극적인 음식을 먹었다. 건강도 챙길 수 없으니 그 이상의 무언가는 언감생심이 되었다.
요즘 유행하는 아이돌이 누구인지 잘 모르기 시작하던 시점도 그즈음부터였을 것이다. 내가 일을 시작할 때쯤은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많은 아이돌들이 나왔다. 노래 자체를 아예 안 들은 건 아니다. 빠른 비트의 중독성 있는 멜로디는 '노동요'로 듣기에 딱 이었고, 당시 나의 지난하고 고난한 일상의 작은 에너지 드링크가 돼 주었다. 당시 자주 듣던 노래들은 지금도 정확하게 기억난다. 방탄소년단의 'I NEED U'와 'RUN' 아이콘의 '취향저격' 여자친구의 '유리구슬'을 정말 많이 들었다. 한 곡을 수십 번~수백 번 반복 재생 해 놓고 억지로 해야 할 일들을 꾸역꾸역 해냈다. 지금도 이 노래들을 들으면 사회초년생의 그 순간이 다시 떠오른다. 하지만 각 그룹의 멤버는 어떻게 되는지, 유행하는 춤은 무엇인지, 그들의 무대를 보거나 하는 등의 노래 이상의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여유는 없었다. 최소한 그 전에는 유행하는 춤 정도는 알고 있었고, 입사할 때 환영회에서도 EXID의 '위아래' 정도는 가볍게 선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랬던 시절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나는 요즘 가장 핫한 아이돌 댄스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일반 직장인이 되어버렸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했던 옛말은 틀린 것 하나 없다. 차트에 올라와 있는 노래는 간간히 들었지만, 내가 직접 무대를 보고 춤을 따라 하는 시간이 없어지면서 나는 점점 춤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학생 시절에 헬스 열심히 하던 사람들도 회사에 입사하고 직장인이 되면 배가 나오는 아저씨가 되는 것과 같이, 나는 잦은 야식으로 춤과 체력 대신 뱃살을 얻었다. 그러다가 문득, 나도 예전엔 춤 열심히 췄었지. 잘 추고 그런 건 아니어도 열정만큼은 아이돌 지망생 못지않았는데.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나이가 들면서 사회인이 되면 어쩔 수 없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있는 건가 보다. 어른들이 다들 그랬던 것처럼 별 수 없이 나도 그렇게 되어가나 보다.
그렇게 어느 순간, 내 마음이 나 스스로를 나이 먹었다고 정의 해 버렸다. 그런데 신기하지. 그렇게 내가 내 스스로를 정의 내린 순간, 정말로 나이를 먹어 버렸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단순히 물리적으로 신체가 바뀌는 것과 별개로 내 마음과 사고 방식이 확 나이든 것이다. 춤을 추지 않고, 최신 유행하는 아이돌의 댄스도 모르고, 무대도 보지 않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흥미가 떨어졌다. 어렸을 땐 참 그런 거 좋아했었지. 이젠 뭐 나도 그럴 나이가 아니잖아? 라는 마음이 무의식에 자리 잡았다. 내가 나를 나이든 사람 취급하기 시작한 것이다. 춤을 추지 않는 나는, 반짝이던 열정 하나를 꺼트린 채 눈이 조금 더 탁해진 어른이 되었다.
각자 현실이라고 이름 붙여진 무언가의 고난을 살아내면서, 남들과는 달랐던 나의 순수한 열정과 재미의 분야 하나를 잃어버리는 것. 나에겐 그것이 춤이었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음악이었을 수도, 그림이었을 수도, 글쓰는 것이었을 수도, 여행이었을 수도, 혹은 사랑이었을 수도 있다. 어떠한 계산이나 이득 없이 오로지 즐거움으로 이어나갔던 시간들. 과거도 미래도 없이 오로지 현재에만 존재했던 춤을 췄던 시간들이 나에게서 사라졌다. 나는 더이상 무아지경의 순간을 경험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일을 하든 100% 순수하게 몰입하여 빠져들었던 시간이 인생에서 없어진다는 건 생각보다 나를 늙게 만드는 일이었다.
'이젠 그럴 나이가 아니지. 그런 건 어릴 때나 가능했던 거야.'
내가 그렇게 생각해버린 순간, 나는 정말 그렇게 되었다. 지금 내 나이에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기는 것은 나이를 먹는 과정에서 생기는 슬픔이다. 더 슬픈 건, 그게 왜 슬픈지조차도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리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할 용기가 없어서 나이 핑계를 대게 되는 것.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어느덧 서른이 되었다. 조금씩 일에도 익숙해져가고, 이전보다는 정시에 퇴근도 할 수 있었다. 아마 춤을 다시 시작하려면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뭔가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니, 용기라기보단 좀 귀찮았다. 춤은 20대 때나 추던 거지. 30대에는 필라테스나 요가 같은 걸 해야 하지 않을까. 춤을 안 춘지 5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어느새 내 마음은 그렇게 스스로의 범위를 가둬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