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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언니 Jan 30. 2021

어느 눈 오는 날의 끄적임

01. 해외 여행

 아침 일찍 부스스 잠에서 깨 커튼을 걷어보니 하얀 진눈깨비가 날린다. 사과를 하나를 대충 썰어 접시에 담아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창너머 사방팔방 흩뿌리는 눈발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보니, 문득 해외여행 생각이 난다.

 

 코로나 때문에 ‘관광’을 목적으로 해외여행이라고는 당분간 꿈도 꾸기 어려울 것 같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생업’ 때문에 타향 만 리 타국에 나가 있는 지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중 하나, 나의 친애하는 지인이 엊그제 보내준 이탈리아 콜로세움 동영상을 다시 한번 틀어봤다. 고작 1분 내외의 짧은 영상이지만 작은 스마트폰 화면 넘어 현지 느낌이 물씬 난다. TV나 인터넷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정제된 영상이 아니다. 멀리서 콜로세움을 한 바퀴 빙 돌려 촬영한 언니의 영상에서는 그곳 특유의 ‘생동감’이 배어 있다. 날 것 특유의 활기가 손바닥 위의 작은 네모 박스에서 흘러넘친다.


 하늘은 또 어찌나 파랗고 청명한지.


 영상을 몇 번을 돌려 다시 봐도 도무지 질리지가 않는다. 다른 영상을 더 보내달라고 했다. 곧이어 도착한 영상은 이탈리아의 정육점 실내, 그리고 차와 오토바이가 질주하는 거리 풍경이다. 역시 60초 내외 짧은 영상이지만 눈을 뗄 수가 없다.


 나에게 외국 여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아니, 직장인으로서 그동안 외국 여행은 내게 어떤 의미였을까?


 매일 출퇴근하며 일 년에 제대로 된 장기 휴가를 기다린다. 짧으면 일주일, 연휴나 공휴일을 야무지게 끼워 넣으면 2주 남짓한 시간을 기다리며 지루한 일상을 반복한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되면, 그 모든 시간을 성실히 견딘 보상으로 금쪽같은 휴가를 즐기러 해외로 떠났다.


 다람쥐 쳇바퀴 같은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게 고작 1년, 여의치 않으면 격년에 단 한번일뿐이라도.


 어디로 떠날까?

 가고 싶은 곳에, 가야 할 이유도 다양했다.


 학업 때문에 잠시 머물렀던 미국은 20대 초반, 눈부신 청춘의 추억을 곱씹는다는 이유로, 대학 때 남들 다 간다는 OO박 xx일 유럽여행을 못 가봤다는 이유로, 그렇게 오매불망 유럽 앓이를 해대며 24시간이 꼬박 걸리는 장거리 비행에도 거리낌 없이 몸을 실었다.


 일본인 제부와 결혼해 타국에 정착한 동생을 봐야 한다는 이유로, 의례 남들이 한 번 씩 다 가봤다는, 가성비도 좋은 호캉스에 눈부신 자연 풍광은 덤이라는 동남아행 비행기에도 부지런히 몸을 싫었다. 현지에서 유학 중인 지인들을 만나러 간다는 핑계 역시 꽤 좋은 구실이었다. 그렇게 상해로도 떠났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렇게 평소와는 다른 ‘일탈’을 꿈꾸며 떠났지만 나는 늘 외국에서 ‘익숙한’ 것들을 찾고, 늘 ‘하던 대로’ 행동했다.


 가령 일본에 가서 동생을 만나러 갔을 때, 언젠가 호텔로 마중 나온 동생이 “언니, 언니는 왜 맨날 이 호텔에만 예약해?”라고 물었다. 모름지기 해외여행을 가면 새로운 숙소들을 두루 섭렵하는 재미도 있을 테지만, 그렇다. 나는 매번 같은 호텔을 예약한다.


 “편하잖아. 이 앞에서 바로 공항버스도 탈 수  있고.”


 새로운 경험, 낯선 곳에서 일탈을 꿈꾸며 피땀 흘려 모은 월급으로 고작 1년에 단 1번, 어떨 때는 그마저 어려웠던 황금 같은 시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해외에서 낯선 환경에 무방비로 노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공항에서 늘 매번 나오는 출구로 나와, 똑같은 버스를 타고, 똑같은 호텔로 향한다.


 다른 나라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초행길을 제외하고 재방문하는 곳은 영락없이 이전에 경험한 루트를 반복해 따라갔다.


 특히 어린 날 교환학생 신분으로 꽤 오랜 기간 체류했던 미국은 고국에서 부모님이 보내주는 돈을 아끼고 아껴 같은 학교에서 출신 친구들과 같이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하루 종일 바깥세상을 탐독하던 호기심 많은 햇병아리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향수의 장소다.


 학교가 있던 워싱턴 DC와 틈만 나면 향했던 뉴욕에 가면 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공원에서 앉아 멍하니 풍경을 구경하거나, 그 일대를 그저 하루 종일 어슬렁 거린다. 힘들면 어디든 엉덩이를 걸칠 구석을 찾아 앉고, 그마저 여의치 않으면 가까운 카페에서 저렴한 커피를 마시며 10여 년 전 내가 돌아다니던 익숙한 듯, 그 사이 조금 변한 듯 한 풍경을 바라본다. 그러다 지겨워지면 쇼핑을 하거나, 좋아하던 식당에 또 가서 그 시절 즐겨먹던 메뉴를 먹었다.


 여름 시즌의 여행이면 주로 야외에 앉아 볕을 즐겼는데, 행색을 보면 한눈에도 대번 한국인인 것이 자명한 나는 종종 나와 같은 신분의 고국의 여행자들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뭔가를 찾다가 여의치 않는지, 한 눈에도 ‘딱티 한국인’인 내게 주춤주춤 다가와 친숙한 언어로


 “한국이시죠? 저…… 여기 어딘지 아세요?”라고 스마튼 폰 맵을 보여준다.

 “이 근처 어디인 것 같은데……”


  나 역시 아무리 구글맵이 상세하고 친절히 알려줘도 근처에 다다르면 영락없이 좌표 잃은 부표처럼 떠돌며 방황했던 적이 무수히 많기에 내가 아는 곳이라면 바로 손가락을 들어 “저기예요. 바로 저 건물 뒤쪽이에요.” 대답해준다. 그리고 그들이 묻는 곳은 대부분 현지에서 유명한 관광지고, 이전에 나도 부지런히 찾아다닌 곳들이라 대답해주기가 한결 수월했다. 컨디션이 좋은 날이면 ‘거긴 뭐가 유명하고, 뭐가 맛있고, 언제가야 사람이 덜 붐비고’ 같은 묻지도 않은 깨알 같은 팁들을 대방출한다.


 그러면 열에 아홉은 함박웃음을 띄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목적지로 총총 사라지지만, 간혹 어떤 이는 “근데, 혹시 여기분이에요?”라고 호기심 어린 질문을 하기도 한다. 관광객 치고 이리 여유 넘칠 리가 없다는 황송한 오해가 질문 기저에 깔려있는데, 나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은, 1년에 한 번. 소중한 휴가를 받은 관광객 신분이라 대답하면 곧 다시 머쓱한 미소를 뿌리며 사라진다.


 솔직히 그런 오해가 기분 나쁘지만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다.


 다시 내 침대 모서리로 돌아와, 여전히 눈 내리는 창 밖을 바라보며 해외에 나가 익숙한 게이트웨이를 빠져나와 익숙한 버스를 타고, 익숙한 호텔로 들어가 짐을 정리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익숙한 거리를 방황하고 동포들에게 그곳에 사는 현지인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언제쯤 다시 올까? 문득 궁금해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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