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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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중에서 적극적으로 스스로를 좋은 회사에 다닌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여기서 '적극적으로'라는 단서를 붙인 이유는, 주변 사람들이 '너는 좋은 회사에 다녀서 좋겠다'라고 부러움 섞인 이야기를 할 때,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그런 상황은 제외시키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좋은 회사'의 기준은 다를 것입니다. 한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들끼리 조차도 말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마다 겪어온 커리어가 다르고, 각자 속한 직종의 상황에 따라 다르고, 각자의 삶의 모양새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다수가 공감하는 컨센서스는 있을 것입니다. 월급이 안 나오는 회사, 야근을 밥 먹듯 하는 회사, 차별이 있는 회사, 인격 모독이 난무하는 회사를 좋은 회사라 말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혹자는 "세상에 좋은 회사는 없다"라고 단정합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덜 나쁜 회사가 있을 뿐이다"라고요. 십 수년 전, 이 말을 들었을 때, 씁쓸했지만 그렇다고 딱히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10번의 이직을 했습니다. 현재 다니고 있는 호두랩스가 11번째 회사입니다. 매번 더 좋은 회사를 기대하며 이직이라는 선택을 한 것이겠지요. 운 좋게도 한 두 차례를 제외하곤 늘 더 좋은 회사로 이직할 수 있었습니다. 몸 담았던 여러 회사를 돌이켜 보니, 저에게 '좋은 회사'의 기준이 항상 같았던 것은 아닙니다. 저의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회사의 기준을 공유하려 합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절대적인 기준은 없으니, 참고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사회 초년생 때, 월급만 잘 주어도 좋은 회사라고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많이'가 아니라 '잘'입니다. 지금이야 많은 회사에서 연봉제를 도입하면서 전체 연봉을 12로 나누어 매월 균등하게 지급하는 회사가 많지만, 예전에는 연봉을 16이나 18로 나누어서 4나 6만큼을 3개월에 한 번씩 또는 2개월에 한 번씩 상여금이라는 명목으로 지급하는 회사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회사들이 경영 환경 어려워지면 상여금 지급을 안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법적으로 상여금은 경영 성과에 따라 줘도 되고 안 줘도 되는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과거형으로 쓴 이유는 현재는 그런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에서 입니다) 저는 하필 이때, IMF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맞았었습니다. 경기가 급속히 나빠지자, 회사는 월급은 절반만 지급하고, 상여금은 아예 지급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고통스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나중에 상황이 좋아지면 주겠거니 했었는데, 퇴사 후에도 끝내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 때는 그저 월급만 꼬박꼬박 나와도 좋은 회사였습니다.
연차가 좀 차고 일도 손에 익을만한 시기가 되니까 뭔가 배울만한 선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일도 좀 그럴듯한 일을 해보고 싶고, 능력 있는 선배와 같은 부서가 되거나 그런 선배와 함께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습니다. 월급만 잘 주는 회사가 아니라 직원들의 능력 개발에 관심을 갖고, 교육도 잘 보내주는 그런 회사가 좋았습니다. 월급은 동종 업계에서 높은 편이지만 매일 일은 바쁘고,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분위기에서는 내가 가진 얼마 안 되는 지식과 기술을 쪽쪽 빨리는 기분마저 들었습니다. 특히 IT 엔지니어들에게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이 중요한데, 배움의 기회가 적은 회사는 좋은 회사의 기준에서 멀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배울 게 없는 회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본인 스스로가 배울 자세가 안 되어 있거나, 본인 스스로 뭘 알고 뭘 모르는지 조차 모르기 때문에 배울 게 없다고 하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회 초년생, 주니어 시절에 그런 것까지 이미 깨달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도 주니어 시절엔 제가 제일 잘 난 줄 알았으니까요.
경력 5년 ~ 10년 정도의 시기가 회사에서뿐만 아니라 시장에서도 가장 잘 팔리는(?)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이 시기에 실무를 가장 잘할 때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업무를 맡을 기회도 늘어납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 시기가 가장 위험한 시기일 수 있습니다. 회사의 일은 내가 다 하는 것 같고, 업무의 중심에 내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것입니다. 내가 한 일의 양과 성과에 비해 연봉 인상률은 매번 성에 차지 않고, 회사가 자신과 같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싹트기 시작합니다. 상사들은 그 흔한 칭찬 한 마디를 안 해줍니다. 연봉 협상 시즌만 되면, 그놈의 연봉 테이블이 뭔지, 형평성 얘기는 또 왜 나오는지가 납득이 안 갑니다. 이런 일을 겪으면 자신이 인정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겁니다. 저도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뭔가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었지요. 회사가 나를 인정해 주는 방식은 금전적인 것뿐 아니라 다른 방법도 있다는 것을 잘 몰랐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회사도 좋은 인재를 잃으면 손해라는 것을 압니다. 적어도 좋은 인재인지 아닌지를 알아볼 수 있는 정도의 안목이 있는 회사라면 말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나를 인정해 주는 회사는 하나의 좋은 회사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비전... 여러분은 비전이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뭔가 멋있긴 한데 좀 막연하지 않습니까? 많은 회사가 자신의 미션, 비전을 갖고 있습니다. 모두들 그럴듯한 문장으로 자신의 비전을 말합니다. 수많은 회사들의 비전을 보면 모두 멋있고 그럴듯한데 뭔가 좀 공허한 느낌입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첫 번째 이유는 회사의 비전과 나의 비전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마다 비전을 갖고 있지만 내가 공감하지 못하면 공허할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비전이 있는 회사'의 다른 말은 '나의 비전과 일치하는 비전을 가진 회사'일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많은 회사의 비전이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비전이 좀 더 명확하고, 날이 서 있는 회사가 신뢰가 갑니다. 아래는 저의 책 <나는 열정보다 센스로 일한다>에 나오는 리더십과 비전에 대한 내용입니다.
“리더는 비전을 현실로 만드는 사람.” 세계 최고의 리더십 전문가이자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경영학 교수인 워런 베니스(Warren Bennis)의 말이다. 필자는 이 말 중에서 ‘현실’에 방점을 찍고 싶다. 비전을 제시하고 아무런 실체가 없다면 사이비 교주나 사기꾼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네, 그렇습니다. 저는 비전이 그저 미사여구로 치장된 구호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말에 현혹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현실감각이 있는 살아있는 비전이어야 합니다. 비전이란 것이 원래 희망 찬, 기대감이 섞인, 조금은 허황되고 과장된 것일지라도 말입니다. 우리가 다니고 있거나 다니게 될 회사는 사기꾼 집단이나 사이비 종교집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조금은 먼 듯, 달성하기 쉽지는 않은 듯 하지만 그래도 방향과 목표가 선명한 비전, 그 비전을 달성할 구체적이고 명확한 계획이 있는 회사, 그런 회사가 좋은 회사입니다.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서 느낀 점은, 이직을 결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비단 저의 사례뿐만 아니라 제가 그동안 목격한 것들을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특히 함께 일하는 사람의 영향이 큰 것 같습니다. 퇴직 사유 중 가장 큰 이유가 '상사와의 문제'라고 합니다. 동감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며 좋은 상사를 만나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저도 아직 첫 직장의 상사분의 성함과 그분이 저에게 보여 주셨던 모습들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요즘 표현으로 츤데레 스타일의 부장님이셨지요. 사회 초년생으로서 그분이 많이 어렵고 높은 존재였지만, 그분 덕에 빠르게,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비단 상사뿐이 아닙니다. 동급의 동료나 부하직원을 잘 만나는 것도 복입니다. 서로에게 좋은 기운을 주고받으며, 말이 통하고, 시너지가 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등하다고는 하지만, 사람에게도 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수준이 맞아야 대화도 되고, 일도 잘 됩니다. 품격, 인격, 이런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파리와 어울리면 똥밭에 가고, 나비와 어울리면 꽃밭에 이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내가 파리인데 나비들과 어울릴 수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이 많은 회사, 좋은 동료들이 많은 회사, 좋은 회사의 기준일 수 있습니다.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키우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자녀를 둔 많은 직장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여러 가지가 달라졌지만, 그중에 하나가 바로 이 글의 주제인 '좋은 회사의 기준'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제 아들이 태어날 무렵, 교육 업계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마침 어린이 영어 교육을 하던 회사였지요. 아들이 서너 살이 될 때부터 당연히 아빠가 다니는 회사의 영어 교육 프로그램을 보여줬었습니다. 그 회사 이후에도 계속 교육 기업에서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녀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좋은 교육, 아이가 행복한 교육, 지속 가능한 교육, 평생 학습과 같은 주제에 대해 깊이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교육을 통해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어쩌면 제 아들을 위해서라도 그 믿음을 현실로 만들고 싶을지 모릅니다. 제 아들이 태어나고 난 후부터, 저에게 있어서 좋은 회사란 '내 아들에게 입사를 추천할만한 회사인가?'입니다. 아빠가 다니는 회사를 기꺼이 아들에게 추천할 수 있는 회사라... 생각만 해도 너무 멋진 일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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