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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청환 Aug 03. 2023

《일곱 살의 장날 》

《일곱 살의 장날 》

횡단보도를 건너다

나도 모르게

아들을 안쪽으로 밀어 넣습니다

문득,

앞산에 솔개 떠올랐을 때

병아리 날개 속에 감추던

안막골 우리 집 암탉이 생각났습니다

장날이다. 길마에 짐을 실은 누렁소가 딸랑딸랑 요령 소리 앞세워 고개를 넘고 뒤따라 맥고자를 눌러 쓴 아버지와 보퉁이를 든 엄마의 모습마저 사라지자 아이는 정말 혼자가 되었다. 아이의 눈에 또다시 울컥 눈물이 고인다. 오늘은 그예 틀렸다.

아침부터 부모님은 장에 가는 낌새를 숨기려고 나름대로 아이의 눈치를 살피며 침묵을 지켰지만 아이도 알 건 안다. 아버지는 소의 등에 길마를 얹고 거지게를 걸친 후 광에서 콩이며 수수 등 곡식 자루를 들어내 싣고 엄마는 기름 짤 들깨와 빈 병 따위를 보퉁이에 챙기며 부산하다. 그게 아니라도 아버지가 소금물로 양치를 하고 면내에 나갈 때나 꺼내 입는 깨끗한 회색 잠바를 걸치는 것만으로도, 잠잘 때 외에는 좀처럼 벗지 않는 흰 머릿수건을 벗어 놓고 오랜만에 비누로 머리를 감은 엄마가 쪽 진 머리에 비녀를 고쳐 꽂는 것만으로도, 또 마루 밑에서 하얀 고무신을 꺼내 걸레로 닦고 흙투성이 옷 대신 고운 한복을 찾아 입는 것만으로도 증거는 차고 넘치는데 정말 아이가 모르고 있을 거라 믿는 듯 시치미를 뗀다. 아이도 모르는 척하지만 혹시나 같이 가자고 하지나 않을까 아버지 눈치를 보며 엄마 주위를 맴돈다. 형과 누나들은 아침 먹기 바쁘게 학교에 갔고 엄마는 끝내 같이 가자는 말을 안 했다. 대신 시렁에 올려놓은 원기소 통을 꺼내 무려 다섯 알이나 손에 쥐여주었다. 그때도 아이는 울컥 눈물이 고였다. 지난번처럼 생떼를 부려볼까도 생각했지만, 아버지의 침묵 앞에 엄두를 못 냈다.

멀리 월악산 영봉이 바라다 보이는 우묵한 산골에 아이의 집이 있다. 안채는 마당으로부터 봉당 높은 곳에 다시 그만큼 높이의 대청마루가 있는 초가집이다. 지난겨울 새로 해 입힌 이엉이 말끔했지만 켜켜이 쌓인 묵은 이엉의 두께와 간간이 마당으로 떨어져 서로 먹겠다고 달려드는 닭들에게 싸움 빌미가 되는 굼벵이가 역사처럼 지붕의 세월을 증언하며 나름대로의 위엄을 발하고 있다. 안채 끝에 있는 부엌과 맞닿은 곳에 ㄱ자로 덧붙여 새로 지은 사랑채가 있는데, 사랑채의 벽은 안채와 마찬가지로 볏짚을 썰어 섞은 흙벽이지만 지붕만은 슬레이트가 얹혀 있어 조금은 묘한 부조화를 자아낸다. 사랑채는 제일 왼쪽에 방이 한 칸 있고 그 옆으로 쇠죽을 끓이는 가마솥이 걸린 부엌이 있는데 한쪽 벽면으로 괭이와 쇠스랑, 호미 네댓 자루가 걸려 있고 그 밑으로 밤이면 아궁이 온기를 찾아 모여든 닭들이 무단으로 헤집은 자리가 움푹하다. 그다음이 지게나 쟁기 등 조금 큰 농구(農具)와 추수한 곡식 그 외 잡동사니를 들여놓은 헛간 겸 광이 있는데 자물쇠는 없지만, 빗장 달린 문이 있어 출입할 때를 제외하곤 항상 닫혀 있다. 마지막 제일 오른쪽이 외양간이다. 외양간은 곧바로 텃밭으로 이어지고 그곳에 제법 수북한 거름더미가 푸른 비닐 천막에 덮여 삭혀지고 있다. 양철로 된, 그렇지만 지붕에 이엉을 해 덮은 세모꼴 모양의 개집이 거름더미 앞에 있다. 가끔 쥐도 잡고 뱀도 잡아서 온 가족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검둥이 집이다.

소나무가 주종인 야트막한 앞산은 아이가 태어나기 전부터 겨울이면 땔감을, 여름이면 소를 매어두거나 쇠꼴을 해 나른 덕에 소소한 잡목이 자랄 틈이 없다. 듬성듬성 빈 공간이 보이는 탓에 울창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벌거숭이도 아니어서 적당히 푸르다.

안채를 배경으로 뒤쪽과 오른쪽은 제법 경사가 있는 밭인데, 아이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부터 하나하나 직접 일군 것이라 한다. 반면 왼쪽으로 삼십 미터쯤 내려가면 샘이 있고 그 샘에서 흘러나온 물줄기의 끄트머리께서 시작해 몇 마지기의 다랑이논이 계단식으로 펼쳐진다. 논의 끝에서 다시 경사가 있는 언덕이 시작되는데 언덕 초입은 아카시아나무가 띠처럼 숲을 이루고 중간쯤부터 꼭대기까지는 다시 밭이다. 아카시아 숲에는 군데군데 오래되고 키 큰 밤나무가 몇 그루 보인다.

아홉 가구가 사는 안막골, 면사무소가 있는 면내는 물론 마을회관이 있는 큰 동네만 나가도 신작로에 하루 몇 번씩 시외버스가 다니고 전기가 들어오지만 같은 '리'라도 이곳은 외따로 떨어져 섬 같은 곳이다. 아직 신작로도 전기도 없다. 더구나 아홉 가구가 제각각 골짜기 골짜기 흩어져 있어 아이의 집에서 보이는 집이라곤 오른쪽 대각선 쪽으로 백여 미터쯤 떨어진 거리의 앞산 초입에 있는 동갑내기 승근네 집뿐이다. 하지만 승근이 동생 세 살배기 승하가 담배건조실 

옆 도랑물에 엎어져 빠져 죽고 매일 술에 취해 살던 승근이 아버지마저 죽은 어느 날 승근네는 온다 간다 말도 없이 하룻밤 새에 떠나버렸다. 어른들은 그걸 야반도주라고 했다. 언젠가부터 아이는 승근네 집 근처에 가는 것조차 무섭다.

아이에게 장날은 온 우주에 혼자 남겨진 것 같은 날이다. 때때로 엄마가 데리고 가긴 하지만 대부분 치맛자락을 붙들고 졸라대거나 생떼를 부려야 하는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리고 그건 아버지의 야단과 애처롭게 바라보는 엄마의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실 어른 걸음으로도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장터에 아이를 데려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가 있으면 오가는 시간도 더 걸릴뿐더러, 볼일 보는 데도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빠듯한 살림에 장날이라고 여간해선 점심 한 그릇 사 먹는 법이 없는 터에 아이가 장터에서 군것질거리에 보내는 애처로운 시선들을 외면하는 것도 부모로서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다 장에 따라가는 날이면 엄마는 짜장면집이나 국밥집에서 한 그릇만 시켰고 빈 그릇을 달래서 아이 앞에 놓인 그릇에서 몇 숟가락 덜어 먹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때 아이가 그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었다. 겨우 일곱 살이었다.

첩첩산중에 혼자 남겨진 아이가 할 일은 별로 없다. 두 살 터울의 작은 형이 학교에서 조금 일찍 돌아오는 날은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보통은 산봉우리 저 너머에 노을이 붉어질 쯤 상처 난 끝물 과일이나 물 진 생선 몇 마리가 든 보퉁이를 들고 엄마가 고갯마루에 다시 모습을 보일 때까지 오롯이 혼자였다. 검둥이를 찾아 쓰다듬기도 하고 봄이면 민들레꽃이나 제비꽃 할미꽃 등을 꺾어 봉당 위에 꽃 식탁을 차리거나 샘 근처에 가서 올챙이를 잡으며 놀았다. 여름이면 나비와 호박벌을 쫓아다니다가 텃밭에서 토마토와 오이를 따 먹고 작대기를 들고서 논두렁을 두드리며 개구리를 잡으러 다녔다. 아무리 살금살금 걸어도 샘 근처에만 가면 어떻게 알고 한꺼번에 울음을 뚝 그치는지 신기했고 바로 발 앞에서 논 속으로 첨벙첨벙 뛰어드는 개구리들을 보며 깜짝깜짝 놀랐다. 곧이어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뒤쪽에서 개골개골 울음이 시작되면 긴장이 풀리고 괜스레 마음이 평온해졌다. 가끔 뱀을 만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는 데 한참 걸렸다. 가을이면 마당의 바지랑대나 텃밭 고추 말목에 앉은 잠자리를 잡으며 놀았고 빈 소주병을 찾아들고 논으로 가 메뚜기를 잡기도 했다. 그렇게 잡은 메뚜기는 형들이 잡은 메뚜기들과 한데 모아서 볶아 먹곤 했다. 겨울이면 눈밭에 발자국을 새기거나 거름더미 근처에 좁쌀이나 콩깍지 등을 던져 놓고 멀찍이 숨어 몰려드는 참새를 구경하기도 했는데, 여름이나 겨울은 방학이 있어서 형과 누나들이 있으니 좋았다. 그렇게 계절별로 혼자 노는 방법을 터득한 아이지만 단 하나 계절과 관계없이 좋아하는 놀이가 있었다.

아이의 집엔 항상 열 마리 남짓 되는 닭을 쳤다. 큰 벼슬을 뽐내며 붉고 푸른 깃털이 어우러진 장닭은 위엄이 있었지만 무서웠다. 장닭은 이따금 초가지붕에 날아올라 길게 울었고 새로 해 얹은 이엉을 헤집으며 굼벵이를 잡아먹곤 했는데, 그러다 보면 종종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굼벵이들이 있었다. 그건 대부분 아래에 있던 어미닭과 운 좋은 중닭들의 몫이었는데 때때로 장닭이 날카로운 울음과 함께 마당으로 뛰어내리기도 했다. 충분히 멋있었지만 또 그만큼 위협적이었다.

아이는 닭들과 노는 걸 좋아했다. 장닭은 언제나 홀로 한 쪽 높은 곳에 올라앉아 마치 경계를 서듯 먼 곳을 바라보는 듯했고 다른 닭들은 어미닭을 졸졸 따라다니며 연신 부리를 쪼아대며 구구거렸다. 병아리들은 특히 더 귀여웠는데, 자주 행렬을 이탈하는 듯 보였지만 잠시 후 둘러보면 어느새 어미닭이 주위에 다가와 있곤 했다. 아이는 닭들을 쫓아다니며 꼬챙이로 괴롭히기도 하고 손으로 쓰다듬기도 하고 곡식 알갱이를 던져 주기도 했다. 어떨 땐 아버지가 덮어 놓은 거름더미의 비닐 천막 한 귀퉁이를 살짝 들어 올리고는 꼬챙이로 헤집어 지렁이를 잡아 던져주기도 했는데 닭들이 특히 좋아했다.

 그런데 종종 뭔가 서늘한 기운이 엄습하며 오싹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그때 하늘을 올려다보면 어김없이 앞산 봉우리께에 솔개 한 마리가 빙빙 하늘을 맴돌고 있는 것이 보였다. 순식간에 닭들 속에서 시끌벅적 소란이 일어나고 푸득거리는 날갯짓과 함께 어미닭이 쏜살같이 사랑채의 부엌 쪽으로 내달린다. 그 뒤를 중닭들과 병아리들이 급하게 뒤따른다. 잠시 후 부엌에는 닭들이 옹기종기 모여 꼬꼬거리는 가운데 병아리들이 어미의 날개 속에서 서로 안쪽 자리를 차지하려고 삐약대며 버둥거리고 있다. 이때도 역시 장닭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하얗게 질린 아이가 어미닭 옆에 바짝 붙어 쪼그려 앉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다.

신호가 바뀜과 동시에 또르릉 또르릉 경고음이 울렸다.

일곱 살 아들의 손을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다 불현듯 그때 그 어미닭과 장닭과 아이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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