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
/ 박청환
병점역 하행 승강장
천안행 전철이 떠나고 한산해진 틈에
등에 커다란 집을 짊어진 사내가
투명 쓰레기통 앞에 서더니
허리를 깊숙이 파묻는 거라
그 모습이 얼마나 경건해 뵈던지
부처님께 절하는 큰스님 같았어
한동안 어깨가 들썩이더니
불현듯 신문지로 왼손을 말아 쥐는데
두툼한 왼손이 꼭 목탁 같았어
하나둘 다음 전철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승강장 끝으로 슬금슬금 걸어간 그가
철기둥 뒤에 서서 신문을 펼쳐 드는데
저게 경전인가 싶더라고
쪽, 쪽,
큰스님 불경 외는 소리가
바나나 우유 향으로 퍼져나가는
향긋한 오후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