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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하이웨이 Sep 29. 2016

만원의 행복

가령 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자. 얼른 떠오르는 것이 없다. 오래 전 한 TV 프로그램에서 이름 난 연예인들이 만원으로 일주일 버티기에 도전한 적도 있지만 종방 된지 꽤 시간이 흐른 지금 솔직히 만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평소에 점심 먹고 싼 커피 한잔 마실 수 있으려나?    

행복에 가격은 없겠지만 단돈 만원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이가 들어 직급이 올라가면서 주변에서 골프 치라는 얘기를 귀가 따갑게 들었고 치기도 했다. 간혹 소질 있다는 말도 들었지만 정작 나 자신은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우선 골프는 시간이 너무 많이 든다. 새벽에 일어나서 골프장 가는 길이 마치 소풍 갈 때처럼 흥분된다는 사람들도 여럿 봤지만 좋은 티오프 시간에 맞추기 위해 주말 새벽에 일어나는 일은 고역이었다.    

게다가 비용. 장비 구입비 등은 빼고 라운딩 비용만 치더라도 그린피, 캐디피, 카트비 여기에 기름 값까지 포함하면 주말 라운딩에 삼십 언저리는 족히 깨진다. 가령 백 타를 친다고 하면 공 한번 칠 때마다 삼천 원이라는 얘기다.    

접대를 하거나 받는 경우라면 기름 값을 빼면 개인 돈 들어갈 일은 아주 많지 않겠지만 어쨌든 나는 시간과 비용의 측면에서 골프는 절대 권하지 않는다. 운동 효과와 환경 문제 등도 언급할 수 있지만 자리가 자리인 만큼 접는다.    

최근 라이딩을 시작하면서 생활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자전거를 타기 전에는 주말에 뭐했더라? 영화보고 감상문 쓰기? 영화를 극장에서만 연간 백 편 넘게 보고 백 편의 리뷰를 남긴다면 이건 돈이 안 된다 뿐이지 주말 알바다.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영화를 그냥 보는 게 아니라 뜯어보고 리뷰까지 작성한다면 사실 노역에 가깝다. 난 이 생활을 십 년 간이나 했다. 그래도 좋으니까 했겠지.    

따지고 보면 극장에서 영화 보는 일도 만원의 행복이다. 만원의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많지 않은 일 가운데 하나다.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자전거 타려고 낸 건 아니지만 오늘 휴가를 내서 처음으로 주중 라이딩을 해보았다. 주중이니까 옥수에서 양수까지 가볍게 40킬로. 충분히 자고 일어나서 자전거를 실을 수 있는 열 시 넘어 경의중앙선을 탔다. 팔당까지 달려 점심을 먹고 양수에서 커피 한잔을 하니까 만원이다. 평소와 다른 건 만원에 라이딩을 즐겼다는 것이다. 만원의 행복도 이런 행복이 없다.    

시간도 넉넉하고 그동안 여유 없이 지나쳤던 산과 강도 렌즈에 담아 보았다. 멈추면 보인다고 하더니 그 말이 사실이다.    

주말엔 친구와 신시모도 라이딩을 계획하고 있다. 뭘 먹고 마시느냐에 따라 만원보다 더 들어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라이딩은 중년의 놀이치고는 꽤 싸고 괜찮은 놈이다.


2016.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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