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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하이웨이 Sep 26. 2016

‘호모 사이클링쿠스’

직장 생활을 하며 직급이 올라 갈수록 자주 듣는 말이 골프 하라는 것이다. 상사는 골프 치라고 하고 거래처는 배우라고 한다.    

골프 칠 줄 모른다고 하면 어디 사느냐고 묻는다. 일산에 산다고 답하면 아니 왜 일산 살면서 골프 안 배우느냐며 골프 시작하면 머리 올려주겠다고 한다.    

‘기승전골프’다.    

어른과 아이의 차이 가운데 하나는 가지고 노는 공이 다르다는 것이다.    

어려서 구슬치기(요즘 아이들은 뭔지 모르겠지만)하던 아이는 조금 커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고 대학에 들어가면 당구를 즐긴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골프를 배운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를 공을 가지고 노는 인간이라는 뜻에서 ‘호모 볼링쿠스’라고 명명할지도 모른다.    

일단의 과학자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시대를 ‘인류세’(人類世)라고 부른다. ‘세’란 지구의 지질시대를 구분할 때 쓰는 용어인데 인류세란 인류에 의해 지구의 기후와 생태계가 변하는 시대라고 한다. 그리고 인류세의 특징으로 닭뼈를 든다. 먼 훗날 인류세를 대표할 화석으로 닭뼈가 무더기로 출토될 것이라는 것이다. 닭은 지구상에서 한해에 600억 마리 가량이 소비된다고 한다. 한 사람이 일 년 동안 먹고 마시는 치맥을 고려해 보면 그럴 듯하다.    

그런데 라이딩을 하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볼링쿠스’나 ‘인류세’도 그럴듯하지만 어쩌면 우리가 훗날 ‘호모 사이클링쿠스’라고 불릴지도 모르겠다는..    

바퀴가 문명 발달에 엄청난 기여를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5세기를 전후로 찬란한 문명을 이루었던 잉카제국은 아이러니하게도 바퀴를 발명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만약 그들에게 보다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바퀴가 있었더라면 채 삼백 명도 되지 않는 스페인 군대의 의한 멸망을 피할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오늘날의 문명은 인간의 가장 뛰어난 발명품이라는 바퀴에 의해 발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퀴는 인간에게 속도를 선물했다. 자동차도 비행기도 바퀴가 없었다면 결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즐기는 자전거도.    

오늘날 도로에는 수많은 바퀴가 굴러다닌다. 도로역시 바퀴를 위한 것이다. 길을 내는 이유는 예나 지금이나 똑 같다. 보다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    

그렇다면 먼 훗날, 바퀴를 타고 다녔다는 뜻에서 우리를 ‘호모 사이클링쿠스’해고 해도 그른 말은 아니지 않을까?


2016.9.25

블루 하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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