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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 하이웨이 Oct 05. 2016

자전거를 타고 춘천을 다녀오다니

하마터면 참 우울한 연휴가 될 뻔했습니다. 원래는 지난 주말을 이용해 친구와 신시모도에 다녀오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는 고장난 시계 이론이 들어맞았는지 그동안 ‘삑사리’만 내던 기상청 예보가 일요일에 적중해 버린 관계로 라이딩을 취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Crying in the Rain'이라더니 내리는 비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기분이 이런 건가요?    

하지만 다행히 연휴 마지막 날인 월요일에 비가 그쳐 북한강 길을 따라 춘천에 다녀왔습니다.    

국토종주도 하고 왕복도 하는 라이더들이 속출하는 마당에 운길산역에서 춘천까지 70킬로 길을 달렸다는 게 뭐 대단하다는 말씀을 드리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춘천은 물론 가는 길에 있는 대성리며, 청평이며, 강촌의 심리적 거리는 물리적 거리인 70킬로보다 훨씬 먼 것 같습니다.    

제가 대성리를 처음 가본 건 고등학생 시절 학교에서 떠난 수련회를 통해서였습니다. 지금은 서울에서 대성리까지 전철로 운행을 하니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집니다만 당시는 전철이 아니라 기차가 다닐 때였습니다. 전철로 가는 길과 기차로 가는 길은 같은 길이라도 심리적으로 아주 많은 거리가 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 여행은 왠지 아주 먼 곳으로 떠나는 느낌이 드니까요.    

청평이나 강촌은 또 어떻습니까? 워터 파크는커녕 변변한 수영장도 없던 제가 어릴 때 청평유원지는 서울시민의 물놀이 공원 같은 곳이었습니다. 제 오래된 앨범에는 수영복도 없이 청평에서 튜브를 타고 노는 사진이 있는데 당시 저희 어머님은 절 데리고 어떻게 청평까지 가셨을까요?    

강촌은 한 때 대학생들의 단골 MT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함께 강촌 놀러가자던 여학생의 제안이 지금도 귓가에 맴돕니다. 춘천도 그 즈음 친구들과 다녀온 것 같습니다.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는데 소양강변에 있던 카페 ‘이디오피아’에 가본다고.    

그런데 어제 자전거를 타고 추억의 대성리와 청평과 강촌을 지나 노란 코스모스 밭과 물길을 따라 춘천에 다녀 온 것입니다. 올 때는 경춘선 전철을 타고 돌아왔습니다.    

오래 전 대성리와 춘천을 함께 갔던 친구를 보며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춘천엘 자전거를 타고 와서 전철로 돌아가다니 세상 좋아졌다’고.    

세상이 좋아져서 공간의 물리적 거리는 정말 단축되었습니다. 사실 십 여 년 전만해도 자전거를 타고 국토종주는커녕 춘천이나 충주까지 가는 건 생각하기 어려웠죠.    

최근 들어 속속 새로운 자전길이 열리고 있고 올해 안에는 동해안 종주길도 뚫린다고 합니다. 그 때는 자전거를 타고 그 길을 달리며 또 무슨 추억이 떠오를까요? 친구들과 아버지 차를 몰래 타고 나가서 7번 국도를 달리던 시절을 생각하며 세상이 더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할까요?    

이제는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만 대성리나 강촌이나 춘천은 제게 있어서는 여전히 기차와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가야만 될 것 같은 아주 ‘먼 곳’입니다.     


2016.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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