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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nah Jul 09. 2019

#7. 산후도우미가 우리에게 남긴 것

아이의 눈동자와 마주 보는 시간

둘째를 낳고 입주 산후도우미 이모님을 신청했다.

이모님 덕분에 신생아 케어에 대한 두려움을 덜 수 있었고, 밤중 수유도 하지 않아 나에게 갓 한 달이 지난 아기가 있는 지를 체감할 수 없을 정도로 잠도 실컷 잘 수 있었다.


하지만 낯선 사람과 한 공간에서 온종일을 보내야 하는 것은 생각보다 불편하고 답답한 일이었다. 첫째 아기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나면 하루는 어린이집 엄마들과의 티타임으로, 또 하루는 마트 장보기로, 그러다 또 하루는 영화관에서 홀로 영화보기로 스케줄을 만들어냈고, 그렇게 집 밖을 전전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이모님으로 인해 집은 더 이상 나의 온전한 쉼터가 될 수 없었지만 반대로 좋은 점은 가사 노동에서 벗어나게 되니 첫째 아기 바다와 눈을 맞추고 놀아주는 시간이 몹시 많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나는 바다의 행동 하나하나를 면밀히 관찰하며 끊임없이 반응해 줄 수 있게 되었고, 나는 바다를, 바다는 나를,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알게 되었다. 나는 아직 말을 잘하지 못하는 바다의 바디랭귀지를 이전보다 훨씬 잘 단번에 알아차리는 능력을 얻었고, 늘 마주 앉아 요구사항을 금세 충족시켜주는 엄마를 얻은 바다는 맑은 웃음과 깊은 신뢰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전에는 집 정리와 바다의 식사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니 놀아주는 것 그 자체가 힘들게 느껴졌었지만, 이제는 얼마나 놀아주었나 수시로 시계를 확인하지 않아도 될 만큼 놀아주는 것이 힘들지 않았고, 사실 상 바다의 하원 이후부터 잠들기 전까지의 시간 전부가 함께 마주 보며 노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하루는 마트에 들러 바나나우유를 사들고 아파트 카페테리아에 앉아 정원의 꽃들을 구경했고, 하루는 놀이터의 점령자가 되어 미끄럼틀과 그네를 오가며 몇 시간이고 뛰놀았다. 또 하루는 병원에 들렀다가 나온 길가에서 비둘기를 따라다니며 구경하느라 한 시간 여의 시간을 보냈고, 또 하루는 거실 책장의 책을 한 권씩 한 권씩 꺼내와 끝없이 읽었다. 나는 가사 때문에 아이가 하는 일들을 외면하거나 서두르라며 재촉하지 않아도 됐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 기다려주고 마음을 읽어줄 수 있었다.


여유를 갖고 바라보자 그동안 단순하고 반복적이라고 여겼던 아이의 행동은 열 번이면 열 번 모두가 달랐다. 반짝이는 눈동자는 매번 다른 것을 보고 느끼며 성장하고 있었다. 그까짓 집안일 무어라고 나는 이 눈동자를 놓쳤던 것일까. 후회와 반성이 몰려왔다.


이모님이 떠난 뒤에도 이 눈동자를 바라보는 것, 고사리 같은 손이 자라고 땅을 딛는 두 발이 조금씩 단단해지는 것, 놓치지 않고 바라봐 주어야지.


이모님으로 인해 내 마음 둘 곳을 잃었지만 아이의 마음 둘 곳이 되어줄 수 있게 되었으니 나로선 얻은 것이 더 많은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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