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은 자들의 파멸
『햄릿』은 망설이는 자, 『오셀로』는 질투하는 자의 파멸을 그렸다면 『리어 왕』은 어리석은 자의 파멸을 그렸다. 『리어 왕』에서 죽음을 맞는 인물들은 크게나 작게 모두 어리석은 판단을 저질렀다. 못된 딸들을 믿고 권력을 모두 넘겨준 리어 왕, 악한 서자 에드먼드의 속임수에 의심 없이 넘어간 글로스터,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를 서로 차지하려 했던 고너릴과 리건, 아내의 악행에 동조한 콘월. 그리고 마지막으로 코딜리어가 있다. 코딜리어는 다른 인물들의 죽음과 비교하면 다소 의아하다. 마음씨 착하고 정직하며 진심으로 아버지를 사랑하는 딸이 에드먼드의 계략에 의해 죽음을 맞는 것이 다른 어리석은 이들의 죽음에 비해 부당하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코딜리어가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녀 역시 어리석은 판단을 했음을 알 수 있다.
리어는 성질이 고약하고 다혈질이며 매우 신경질적인 인물이다. 그런 그가 영토를 삼등분해 놓고 세 딸에게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물었을 때는, 누가 봐도 답을 정해 놓은 상황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런 그의 성정을 감안하여 억지로라도 그가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 주었다면 코딜리어도 브리튼에 머물러 왕국의 1/3을 차지했을 것이다. 이후 다른 두 딸이 리어를 경시했을지라도 최후에는 진심으로 아비를 사랑하는 코딜리어가 받아주었을 테니 비극도 발생하지 않았을 터다. 그러나 코딜리어는 그 답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쓸데없이 정직함이라는 고집을 부려 이와 같은 사달이 일어나는 계기를 제공한다.
이렇게 코딜리어가 리어 왕의 심기를 건드리며 비극은 시작된다. 리어가 코딜리어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냉랭하게 대하는 것을 본 그녀의 언니들은, 이후 자신들에게도 그럴 것이라 불안을 느끼곤 결국 리어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그를 발톱 빠진 호랑이로 만든다. 그렇게 리어가 언니들에게 버림받자, 코딜리어는 아버지를 구하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프랑스 왕비로서 군대를 이끌고 브리튼을 침략한다. 이렇게 일어난 전쟁통에 많은 혼란이 발생하고 여러 사람이 죽어간다. 그리고 그녀 역시 전쟁에서 패배하고 포로로 잡혀 죽으며, 그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리어 왕도 죽는다. 결국 『리어 왕』 스토리의 시작과 끝에 코딜리어가 있는 셈이고, 그녀 역시 어리석음에 의해 죽은 것이다.
이 작품을 리어 왕이 아닌 코딜리어를 중심으로 볼 때 또 흥미로운 점이 있다. 극 중에 코딜리어가 등장하지 않을 때는 바보광대가 등장하며, 이 둘이 동일시된다는 것이다. 바보광대는 왕에게 진실을 퍼부으며 극 전반에 걸쳐 인물들의 어리석음을 풍자하고 비난한다. 특히 리어의 옆에서 그의 잘못을 상기시키고 자극함으로써 리어의 광기를 부추긴다. 이렇게 리어에게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코딜리어와 바보광대의 역할은 동일시된다. 리어 왕이 처음에는 코딜리어를 비난하고 내쫓다시피 했으나 결국에는 코딜리어에게 의지하고 그녀를 사랑하며 아끼는 것처럼, 그 누구의 말보다도 바보광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를 어여쁘게 생각했던 것 역시 코딜리어와 바보광대의 위상을 겹치게 한다.
특히 코딜리어와 바보광대는 등장이 겹치지 않는다. 코딜리어가 프랑스로 떠나고 나서 바보광대가 등장하고, 후반부 코딜리어가 다시 무대에 등장한 이후로는 바보광대가 자취를 감춘다. 코딜리어가 떠난 자리에 그녀의 분신과도 같은 바보광대를 세움으로써 리어에게 진실을 깨우치는 역할이 연속되는 셈이다. 바보광대가 하는 이야기들은 정직하고 도덕적인 코딜리어의 생각과 닮아 있다. 물론 공주와 광대의 언행 자체에는 극명한 차이가 있지만 그 안에 들어 있는 사상은 일맥상통한다. 즉, 바보광대는 코딜리어의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과격하게 표현하는 코딜리어의 제2의 자아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셰익스피어의 의도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이런 해석에 설득력이 있기에 코딜리어와 바보광대를 한 명의 배우가 1인 2역으로 연기하는 경우가 많다. 등장이 겹치지 않는다는 점도 그런 해석에 설득력을 더한다.
바보광대와 코딜리어를 동일시하는 근거는 또 있다. 글로스터 백작에게 버림받은 에드거는 정신 나간 톰이라는 거지 연기를 하며 눈이 먼 그의 아버지 글로스터 백작을 보살핀다. 이 작품에서 리어왕과 글로스터 백작, 그리고 코딜리어와 에드거가 각기 자신의 자식을 믿지 못해 내친 아버지와 그럼에도 아버지를 사랑하여 행동하는 자식이라는 유사한 플롯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바보광대(코딜리어)와 미치광이 톰의 역할 역시 평행선 상에 있기 때문이다.
바보광대와 코딜리어를 동일시한다면 또 연상되는 작품이 있는데,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과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이다. 자신의 출생에 대한 비밀을 알고 스스로 눈을 멀게 한 뒤 모든 권력을 버리고 떠돌이가 되는 오이디푸스와 그런 그를 뒤따르며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안티고네의 관계가 리어와 코딜리어(바보광대)의 관계로 연결된다. 오이디푸스의 다른 자식인 두 아들 역시 고너릴과 리건처럼 서로를 대적해 싸우다 둘 다 죽어 버리는 것도 역시 비슷하다.
코딜리어를 그저 정직하고 착하며 입바른 말을 못 하는 어진 성격이라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뒤 나중에 나타나 허무하게 죽어가는 캐릭터로 볼 수도 있지만, 이렇게 바보광대와 코딜리어를 동일시한다면 이 작품은 코딜리어에 의해 시작되고 전개되며 끝이 나는 이야기로도 볼 수 있다.
이번에는 이렇게 코딜리어를 중심으로 작품을 보았지만, 다른 인물들 역시 매우 매력적이며 각각의 시각에서 작품을 보면 또 다른 감상을 느낄 수 있다. 『리어 왕』은 왕국 내부의 갈등과 왕국 간 전쟁 등 다른 셰익스피어 작품들과 비교했을 때 규모가 매우 크며 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군상극이다. 그래서 감정이입이나 공감 측면에서 거리감이 느껴질 법도 한데, 인물 하나하나에 빠져들 수 있는 이유는 이들의 어리석음이 남일 같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엔딩을 장식하는 선한 인간인 올버니, 켄트, 에드거 같은 인물들보다 어리석음 때문에 죽어간 인물들에 더욱 이입을 하게 되는 것은, 그들이 어떤 인간이나 가지고 있는 결함을 극적으로 드러냄으로써 파멸하기 때문일 것이다. 앞서 보았던 『햄릿』이나 『오셀로』와 마찬가지로, 『리어 왕』 역시 인간의 보편적인 결함들과 그로부터 펼쳐지는 비극을 그렸다는 점에서 시대를 불문하는 역작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