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인류의 가장 위대한 문학 작품을 논할 때 빠지지 않는 걸작이다. 노벨 연구소가 주최한 전 세계 유명 작가 100인이 뽑은 최고의 책 100선에서도 50% 이상이 『돈키호테』에 투표해 1위에 올랐다. 세계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작가들은 물론 수많은 지성인들이 이 작품을 사랑했다. 후세의 모든 작가들이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로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위상은 실로 압도적이다. 『돈키호테』 이후 쓰인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쓴 것이나, 그 일부를 쓴 것이라고 프랑스 철학자 르네 지라르는 말했다.
『돈키호테』를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는 많지만 가장 대중적이면서 강렬한 요소는 역시 주인공 돈키호테와 산초의 존재다. 주인공인 이달고 계급의 노인 키하노는 기사 소설에 심취해 스스로를 돈키호테라는 이름의 기사로 여기고 그의 시각으로 세상 만물을 본다. 그에게 풍차는 팔이 여럿 달린 거대 괴물이고, 허름한 여관은 거대한 성이며, 촌부 알돈자는 귀족 부인 둘시네아, 뛰어다니는 양 떼는 진군하는 군대다. 멀쩡한 주변인들은 우스꽝스럽고 한심하게 여기지만 돈키호테에게는 그 모든 것이 진실과 다름없다. 광기와 다름 없는 돈키호테의 이런 기행은 간혹 주변에 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유쾌하게 그려지며 때로는 감동과 경건함을 선사한다. 그 결과 돈키호테는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이상의 화신이자 낭만주의의 상징이 되었다.
인간의 내적 갈등은 언제나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부터 온다. 이는 인간이 가진 태생적인 결함이자 축복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부터 철학, 예술, 종교, 사상, 신념, 정치가 탄생하고 발전해 왔다. 특히 인간의 내면 묘사가 두드러지는 장르인 문학에서 이상과 현실의 갈등은 캐릭터와 스토리를 세우는 토대가 되며, 이는 문학의 근원인 셈이다. 쐐기문자로 쓰인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길가메시는 영생과 명예라는 이상과 죽음이라는 현실 사이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아킬레우스는 명예와 생존,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햄릿은 복수와 윤리,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에서 라스꼴리니코프는 비범인과 범인 사이에서 고뇌한다. 그런데 돈키호테는 그의 정신적 문제 때문에 이상만으로 가득 찬 인물이다.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니 이상과의 괴리가 없고, 그러니 돈키호테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망설임 없고 저돌적으로 행동하며 이는 ‘돈키호테형 인간’의 원형이 되었다.
돈키호테의 이상은 명예롭기 그지없는 기사도 정신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돈키호테의 기행은 그 의도가 순수하고 정의롭고 명예롭기에 말썽을 부리고 사고를 일으켜도 증오를 사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인물들과 독자는 그의 영혼에 점차 빠져들어간다. 이렇게 기사도 정신을 실천하기 위해 흔들리지 않고 행동하는 돈키호테의 모습은 정의와 명예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특별히 그 포인트를 강조한 것이 본 작품을 뮤지컬화 한 『맨 오브 라만차』이다.
홀로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돈키호테가 계속해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켜 나갈 수 있었던 데에는 그의 종자 산초의 역할도 크다. 돈키호테가 이상을 대변한다면 산초는 현실을 대변한다. 기사도 정신을 외치는 돈키호테가 주변 인물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산초는 그가 고립되지 않도록 돕는다. 돈키호테가 헛소리를 하거나 헛것을 볼 때마다 산초가 옆에서 현실을 일깨워 주지만 완전히 자신의 세상에 빠져 있는 돈키호테는 산초의 말을 듣지 않고, 산초는 체념하는 듯한 태도로 돈키호테의 장단에 맞춰주면서 현실 세상에 그의 기행을 해명하곤 한다. 이렇게 산초는 돈키호테의 이상과 현실 사이의 매개체 역할을 하며 돈키호테가 자신의 이상을 실현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준다. 반면 돈키호테의 저돌적이고 정의로운 성격은 소심하고 우유부단하며 속물적인 산초를 보완해 준다. 이렇게 상호보완적인 돈키호테와 산초는 오늘날까지도 각종 예술문화에서 대표적인 파트너쉽의 모티브가 되고 있다.
등장인물에서 작품 자체로 시선을 옮기자면, 『돈키호테』는 같은 대상이라도 해석에 따라 다르게 인식할 수 있다는 인식론적 관점을 다층적 서술을 통해 입체적으로 표현함으로써 근대소설의 효시가 된 작품이다. 2부에서 산초가 한 귀족의 장난에 넘어가 섬의 영주가 되는데, 이 에피소드는 권력의 허상을 풍자하면서도 해석에 따라 실재와 허구, 현실과 이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의 철학적 논점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산초에게 주어진 영주의 역할은 귀족이 놀잇감으로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지만 산초는 이를 현실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여 자신을 실제 영주라고 생각하고 여러 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해결책을 내놓으며 능력 있는 통치자의 모습을 보인다. 이는 이상을 대변하는 돈키호테가 현실에서 허구를 만들어낸 것과 반대로 현실을 대변하는 산초가 허구에서 현실을 만들어냄으로써 둘의 인식 차이를 확연히 보여 드러냄과 동시에 세상은 인식과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돈키호테가 보는 세상은 적어도 그에게는 착각이나 거짓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인식하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한다. 타인이 보기에는 괴상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돈키호테에게는 그것이 실제 세상이고 그로부터 경험하는 것들이 그의 자아를 구성한다. 이러한 모습은 현실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인식론적 의문을 던진다. 똑같은 상황에서도 돈키호테는 남들과 다른 자신만의 경험을 하면서 사고하고 학습하고 행동한다. 남들은 그를 현실에서 동떨어진 인물로 대할지라도, 돈키호테 자신의 우주에서 그는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자기 삶의 주체로서 살아간다. 이런 돈키호테의 모습은 세상에 대한 주체적인 인식과 해석이 자아를 형성하고 유지함을 극단적으로 보여 준다. 돈키호테를 현실로 끌어내려는 까라스코의 계획에 걸려들어 정신을 되찾은 키하노는 끝내 돈키호테를 부정하고 죽는다. 이상을 외치며 명예롭고 정의롭게 살아가던 돈키호테와 달리, 남에 의해 강제로 현실이라는 인식과 해석을 강요받은 키하노는 결국 스스로의 세상을 잃어버리고 무기력하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이는 세상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살아가지 않는다면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돈키호테』에 대한 이러한 해석은 비단 내용뿐만이 아니라 작품을 서술하는 방법과 구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일단 이 작품의 기본적인 화자는 세르반테스인데, 그는 『돈키호테』를 자신이 쓴 작품이 아닌, 우연히 발견한 필사본을 번역한 것이라 소개한다. 그리고 그 필사본은 한 아랍 역사학자의 글을 원본으로 하고 있으며, 그 원본 역시 아랍 역사학자가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이라 설명한다. 이런 연유로 작품 속 화자는 역사학자와 필사자, 그리고 세르반테스까지 뒤죽박죽이 된다. 그러니 독자는 이 이야기가 실화인지 아닌지, 정확히 누가 쓴 글인지, 돈키호테가 실존 인물이 맞는지, 이 글이 역사서인지 소설인지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 또한 돈키호테가 독자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심지어 2부에서는 1부를 읽은 인물이 등장해 돈키호테를 알아보고 말을 걸기도 하며 독자마저도 서술에 참여시킨다. 그리고 작품 속 인물이 다른 작품을 읽고, 그 작품의 인물이 본작품의 인물로 등장하기도 하는 등 극중극과 제4의 벽을 넘나드는 서술이 반복된다. 이런 다층적 서술은 작품 전반에 걸쳐 현실과 허구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고 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인식론적 문제와 해석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는 의미를 강조한다. 또한 등장인물의 성향, 신념, 가치관에 따라 이야기의 양상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다양한 해석을 가능케 한다는 점에서 과거의 서사시나 희곡을 벗어나 근현대 소설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더 메타적인 접근으로는 하나의 작품에는 그것을 보는 사람의 수만큼의 해석이 있다는 수용미학의 개념으로까지 확장할 수 있다.
『돈키호테』는 현실과 이상의 충돌이라는 주제, 다층적 서술, 해석의 확장, 풍자와 패러디, 메타적 서술 등 다양한 특징들을 통해 기존의 틀을 깨고 근대 소설의 시작을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인식론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에 부여하는 의미도 되새겨볼만하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허구이지만 여기서 언급한 요소들 외에도 『돈키호테』에는 수많은 철학적 논제와 다양한 해석을 이끌어내는 내용이 가득하며, 여전히 새로운 분석이 이어지고 있는 무한한 보고와도 같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