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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Sep 05. 2024

12년 차 직장인, (완전)퇴사를 선택하다.

02. 이를 악물고 버틴 시간들 

그때도 직장 내 괴롭힘 법이 있었다면 달라졌을까?

내가 이동하게 된 신생팀의 팀장님은 나의 본 소속팀에 차부장급으로 입사한 분이었다. 당연히 내가 팀 이동에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팀이 만들어질 때 팀의 메인 업무를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 나였기에 나를 거부하지도 못한 채 불편한 마음으로 함께 시작했을 것이다. 


물론 나의 입장에서 쓰이는 글이라 매우 주관적이겠지만, 그때 피눈물을 흘리며 작성했던 다이어리를 통해 조금이나마 기억의 왜곡을 잡아보려 했다. 


그 팀장님과 햇수로 3년을 같이했는데 그동안 크고 작은 괴롭힘을 당했던 것 같다. 팀이 처음 만들여졌을 때 이동을 거부하던 것에 대한 보복을 하듯  가장 먼저 내게서 소속감을 빼앗았다. 모든 팀원이 참석하는데 나 혼자만 빠진 팀 미팅이 대표적이었다. 물론 교묘히 미팅 아젠다를 그럴듯하게 설정해 내가 빠져도 되는 것임을 정당화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속으로는 상처를 받았지만 티를 내지 않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나가며 버텼다. 몇 개월을 묵묵히 일했을까 이런 식의 괴롭힘은 팀에 새로운 경력직 팀원1이 입사하며 그에게로 옮겨졌다. 자신에게 고분고분하지 않다며 기를 꺾겠노라 노력하는 게 보였지만 그 팀원1도 보통은 아니었다. 결국 입사한 지 반년도 안 되어 직원1의 퇴사로 갈등은 마무리되었고, 그 괴롭힘의 화살은 또 다른 팀원2에게 옮겨져 갔다. 이른바 MZ세대인 팀원2의 태도를 주로 문제 삼았다. 라떼를 시전 하며 본격적인 갑질을 하기 시작했다. 정말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는 어이없는 몇 가지 요구사항이 있었는데 


1. 팀장이 출근할 때 일어나서 인사할 것 - 라떼는 팀장님보다 늦게 출근하는 일은 상상도 못 했어! 

2. 팀장에게 무엇인가 말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서 이야기할 것 - 자리에 앉아 팀장에게 얘기하는 건 어디서 배워
    먹은 네가지인가? 

3. 퇴근할 때 자리에 키보드 외에 아무것도 올려두지 말 것 - (어느 날 퇴근한 팀원들의 책상 사진을 찍은 뒤 단톡
   방에 보내면서) 책상 정리 좀 하고 다니세요. 어떻게 하느냐고요? 바로 나처럼!

* 포인트는 본인의 말을 안 따르면 이제 그때부터 위에서 언급했던 방식의 따돌림 등의 괴롭힘이 시작된다.


다니던 회사는 IT기업으로 영문호칭을 사용하고 대표에게도 '대표님'이라는 직책호칭을 사용하지 않는 자율적 소통을 지향하는 회사였다. 물론 팀장이 전형적인 피라미드형 조직에서 근무하다 이직을 한 사람이라 본인의 경험과 조직문화와의 괴리감이 컸을 수 있겠다 생각한다. 그렇다 해도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하는 것 아닌가?  직장 내 괴롭힘 법이 시행되기 전이라 팀장님 스스로도 괴롭힘이라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 같긴 하다. 팀원들은 정말 힘들었는데 본인은 지금도 저게 왜 괴롭힘이냐 생각하겠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는데 1:1 면담 때 들었던 가장 최악의 멘트는 '내가 너 괴롭힐 줄 몰라서 안 하는 것 같아?'였다. 


'여적여 + 아는 놈들이 더한다'를 내 결혼에서 느낄 줄이야. 

야근으로 10시 이후 퇴근하는 날들이 이어지며 지쳐가던 해에 결혼이라는 빅이벤트까지 준비해야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나는 거의 투잡 수준으로 퇴근 후 밤 12시부터는 웨딩플래너로 제2의 삶을 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몇 개월을 살았더니 체력도 정신력도 바닥이 나버렸고 신행만 간절히 기다리게 되었는데, 문제는 팀장님이 신행을 위한 5일의 연차를  쓰는 나를 못마땅해했다는 것이다. 이유는 팀이 너무 바쁜데 연차를 너무 오래 써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단다. 그런데 팀이 생긴 이후로 바쁘지 않았던 적은 없었고 그 해의 여름휴가를 다녀온 팀원은 아무도 없었다. 오직 단 한 사람, 팀장인 본인만 5일의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팀원들은 하루 종일을 고생하는데 휴가지에서 바캉스룩을 입고 찍은 사진을 자랑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팀장님의 언행불일치, 내로남불에 예민하게 반응했던것 같다. 


나는 겨울에 결혼을 했는데 그 해에 연차를 거의 소진하지 못했고 마침 결혼이라는 빅이벤트가 있으니 신행에 사용해서 쉼을 보상받아야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해를 버텼다. 팀장님은 그런 나를 뒤에서 욕하고 다녔다. '팀이 너무 바쁜데 결혼이 무슨 대수라고 연차를 5일이나 쓰는지 모르겠다.' 이 말이 여러 사람을 통해 내 귀로 흘러들어왔다. 팀에서는 팀이 생긴 후 팀원의 결혼이었어서 그런지 연차를 5일이나 쓰는 선례를 만들고 싶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미 팀장님에게 미운오리 새끼였기 때문에 꿋꿋이 5일의 연차를 더해 신행을 다녀왔다. 


팀장님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라떼 중 '난 임신했을 때 막달까지 꽉 채우고 일주일 쉬고 우리 애 낳았어'였다. 결혼하고 출산까지 한 팀장님에게 아주 조금은 배려와 이해를 기대했었나 보다. 결혼을 하던 주 월요일 팀 주간미팅에서 결정타도 한 방 맞았다. 'OO님은 신혼여행 가기 전 야근을 해서라도 일 다 마쳐놓고 가세요' 몇 년이 지났어도 잊히지 않는 팀장님의 멘트다. 


뒷담화를 하는 팀장님의 의중을 알면서도 5일의 연차를 쓴 것에 대한  보복은 다음 해로 이어지며 생퇴사를 결정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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