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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내 Sep 06. 2024

12년 차 직장인, (완전)퇴사를 선택하다.

03. 쌩퇴사의 추억 


사람의 결  

유부녀가 된 후 나는 안정감을 느끼며 일에 매진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팀장님과 여전히 잘 맞지 않다는 것이었다. 사소한 것이어도 업무상 실수에 대한 피드백은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한 일들은  당연히' 루틴 한 것이니 잘해 내야 하는 일' 로만 여겨졌고 내가 안 하면 당장 스톱되거나 다른 사람이 힘들어지는 일인데도 크게 인정받지 못했던 것 같다. 

 

그 해에 새로 입사한 팀원3은 내게 요구된 '당연히 잘 해내야 하는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팀원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있었다. 이른바 '똥 싸는 놈 따로, 치우는 놈 따로'인 상황이 반복되고 있었는데 사소한 실수를 질타하던 팀장님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특히 입만 열만 거짓말을 해대는 통에 사람의 진실성까지 의심이 되는 사람으로 사회생활 하면서 처음 보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그는 팀장님이 원하는 '여왕님'을 모시는 센스를 갖추고 있었고, 팀원 3처럼 아부를 잘 떨지도 못하는 나 자신이 야속하기도 했다. 


내가 팀장님에게 날만 새웠던 건 당연히 아니다. 잘 지내기 위해 앞서 말한 꼰대가라사대 1~3도 일부러 더 잘 키려 했고, 두통으로 힘들어할 땐 두통약과 생수를 챙겨다 주기도 했으며, 차 사고가 났을 땐 제일 먼저 소식을 접하고 연락하기도 했다. 내가 눈치가 없는 편은 아니라 팀장님이 원하시는 게 무엇인지는 잘 캐치했고 한 때는 사이도 괜찮았다. 


여기에는 쓸 수 없는 큰 사건이 하나 있긴 했지만 그건 팀장의 오해였고 대화를 통해 오해를 풀었다고 들었기에 앞으로 내 직장생활에 그 영향은 없을 거라 생각했었는데 이야말로 '경기도 오산'이었다. 연간 평가결과와 승진이 이를 증명했다. 


팀원3이 승진을 했다

계약직으로 들어온 그는 사내전배를 통해 다른 팀으로 이동하게 되었고, 팀장님의 추천으로  승진을 한 상태로 정규직으로 전환되었다. 연차와 경력을 생각했을 때 나보다 높은 직급이 되긴 어려웠지만 언제나 예외사항은 있었고 그게 팀원3이었다. 오프더레코드로 들은 이야기였지만 팀장님이 꽤나 신경을 써 줬다고 했다.


나는 팀의 스타팅멤버로 햇수로 3년을 죽어라 일했다. 나보다는 회사가 먼저였으며 팀을 안정화시키고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순간은 한순간도 없었다. 팀의 성과를 깡그리 본인의 성과로 포장해 팀에서 유일하게 혼자만 승진을 했을 때도 그게 팀원들이 인정받고 빨리 승진할 수 있는 길이라 애써 위로했다. 팀장님이 나를 회의에서 배제시켰을 때도, 신행 가는 걸로 뒷담화를 하고 다녔을 때도, 오해를 받았을 때도 울지 않았다. 


팀원3의 송별회가 있던 날 그 의기양양 해 하던 표정을 잊을 수 없었고, 집에 오는 길에 분노와 서러움의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날 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던 퇴사를 처음 떠올렸다. 


모두 잘 할 수는 없다. 

내 히스토리를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남편이 힘들어하는 내게 정말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 


'팀장님을 이길 수 없다면 그냥 납작 엎드리던가, 그걸 못하겠으면 그냥 나와'


일을 잘하고 못 하고 와는 별개로 평가권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거면 그냥 일 못하는 거라는 남편의 말이 너무 잔인하게 들렸지만 부인하기도 어려웠다. 사실 내가 그걸 몰랐던 것도 아니었고, 무던히 노력했지만 팀장님과 나는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였다면 조금은 더 둥글게 살았을 텐데,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나 보다.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하나 고민을 할 정도로 나는 정말 힘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길에 사고가 났으면 좋겠다 생각했고, 내일 전쟁이라도 나서 모두가 회사에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은 적도 있었다. 병원에 가지 않았을 뿐이지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벚꽃이 흩날리던 봄에 나는 살기 위해 내 30대 초중반을 갈아 넣었던 그곳을 내 발로 나왔다. 이직할 곳을 정하지 않은 이른바 '쌩퇴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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