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주인

무너지지 않는 세계

by 이내

반장, 모범생, 학교 인싸인 동시에 연애가 가장 큰 관심사인 열여덟 ‘이주인’. 어느 날, 반 친구 ‘수호’가 제안한 서명운동에 전교생이 동참하던 중 오직 ‘주인’만이 내용에 동의할 수 없다며 나 홀로 서명을 거부한다. 어떻게든 설득하려는 ‘수호’와 단호한 ‘주인’의 실랑이가 결국 말싸움으로 번지고, 화가 난 ‘주인’이 아무렇게나 질러버린 한마디가 주변을 혼란에 빠뜨린다. 설상가상, ‘주인’을 추궁하는 익명의 쪽지가 배달되기 시작하는데……. 인싸? 관종? 허언증? 거짓말쟁이? “이주인, 뭐가 진짜 너야?”


영화 '세계의 주인'은 ‘피해자의 인생은 망하지 않았다. 그러니 타인은 피해자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으면 좋겠다’라고 끊임없이 말하고 있다.

이주인은 남자 친구를 자주 바꾸며, 쾌활한 성격을 지닌 주인공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계속해서 절에 와서 수련을 해야 불손한 생각이 안 든다’, ‘결핍이 있는 아이는 표시가 난다’, ‘어릴 때 충격적인 일이 생기면 뇌가 바뀐다’ 등을 통해 주인의 과거에 대해 언급한다. 결정적 장면은 성폭력 가해자의 출소반대 동의서에 싸인을 원하는 장수호와의 싸움에서 ‘이거는 틀린 말이니, 사인해 줄 수 없다’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과거에 이주인이 성폭행을 당했음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후반부에 주인은 이 사실을 반학급에 말하게 되지만, 전에 한 번 농담이라며 넘긴 일로 인해 주인을 이상하게 보게 된다. 그러면서 예전 엄마가 자신의 편을 서주지 않던 것처럼 ‘너를 이해할 수 없다’는 평가를 듣게 된다. 그로 인해 이주인의 세계가 흔들리게 된다.

이주인이 봉사활동으로 가는 단체 역시 피해자의 모임이며, 한미도라는 인물이 있다. 사실을 밝힌 후 친구들의 뒷담화 장면과 한미도의 재판 장면에서 ‘피해자의 자격’을 논하는 아이러니함을 보여준다. 그러한 상황에 위로가 되는 것은 같은 피해자였던 이주인과 한미도가 좁은 주방에서 나눈 대화이다. 또는 청소를 하는 것이다. 이주인은 강에 버려진 쓰레기를 치우며, 마음의 정리를 했다. 각자의 방식이 있는 것이다.

이주인의 집은 아빠와 별거 중인 가정으로 엄마인 강태선과 동생인 이해인이 있다. 강태선은 딸에 대한 죄책감으로 술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인다. 자동차에서 통화를 하는 중에도 텀블러에 술을 담으며, 딸 몰래 계속해서 마신다. 이 통화장면에서 ‘왜 이렇게 늙었어?’라는 말과 함께 폰이 꺼지며, 쓸쓸한 엄마의 모습이 나온다. 사건 이후의 시간 동안 자신을 돌보지 못할 만큼 상처가 곪아버린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이해인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 같지만, 그 누구보다 누나인 이주인을 생각하고 마술을 통해 가족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싶어 하는 속 깊은 인물로 영화 ‘우리들’이 떠올랐다.

세차장에서 이주인이 강태선에게 울부짖는 장면은 폭풍을 지나는 듯한 느낌과 그들의 상처를 씻어주고 회복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연장선으로 장수호의 동생인 장누리에게 이주인은 조용히 있지 말고, 아프다고 말하라는 장면이 CCTV로 보여준 후 장누리가 강태선에게 똑같이 한다. 그때 강태선은 아프다는 말을 입 밖에 뱉고 입원을 하게 된다. 곪았던 상처가 터진 것이다.

이주인의 친구인 공유라는 이주인보다 더 분노하고 끝까지 지지해 주는 인물로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지 않더라고 자신의 그림을 지우면서 자신의 방식으로 마음을 정리한다. 어쩌면 우리가 가져야 하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캠코더와 핸드폰에 찍힌 영상이 잠깐 나오는 장면을 통해 우리가 추억하고 기억하는 것은 그러한 것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즉, 시간이 지나 타인은 이주인을 피해자가 아닌 같이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로 기억한다는 것이다.

이주인을 불편하게 하는 사과와 쪽지는 ‘지극히 평범한 것’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과의 주인인 양보아선생님과 익명의 고백이 적힌 쪽지로 인해 위로받는다. 마지막에 이주인의 세계가 돌아옴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이 영화의 제목인 세계의 주인은 주인공의 이주인을 넣어 ‘세계의 나’로 볼 수도 있고, 사전적 의미의 주인을 넣어 ‘세계의 주인은 각 개인의 것이다’로 볼 수 있다.


누구나 목에 걸린 가시처럼 불편한 것이 있지만, 우리 세계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이 영화를 통해 잠깐이라도 염려와 걱정이 마법처럼 사라지는 경험을 하면 좋겠다.

오랜만에 좋은 한국영화를 보았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챌린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