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여행에서 찾은 평온
“이렇게 즐거웠던 건 오랜만이에요” 슬럼프에 빠진 각본가 ‘이’는 어쩌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말로부터 도망치듯 설국의 작은 마을로 떠난다. 지도에도 없는 깊은 산속 여관을 찾은 ‘이’는 수상할 만큼 무심한 주인 ‘벤조’와 머물게 되고 이윽고 폭설이 쏟아지는 밤, 어쩌다 ‘벤조’를 따라나선 ‘이’에게 긴 꿈같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평범한 여행이 특별한 나날이 되는 <여행과 나날>
영화 '여행과 나날'은 투박함을 가지고 있다. 초반에 액자식 구성으로 시작하는데, 그 구성이 이의 세상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가 숙소를 예약하지 못해 산골짜기 숙소로 가게 되는 사건처럼, 현대적이고 화려한 공간을 벗어나 아날로그적인 느린 공간으로 주인공을 이동시키는 것은 의도적인 연출이다.
초반에 이가 "말에 갇혔다. 여행은 거기서 도망치는 것이다."라는 대사를 하는데, 말은 익숙함과 새로움을 공존하지만, 이는 그 익숙함에 슬럼프가 온다. 그래서 여행을 떠났지만, 그로 인해 환기가 되고 새로운 힘을 얻게 된다. 즉, 여행은 도망이라고 할 수 없다. 일상에 벗어나 비일상을 경험하는 것이다. 비록 황금 잉어가 다 타버려 평범한 물고기 된 거 같이 꿈같은 일이라도 해도 말이다. 영화는 "인간은 고독하다.", "좋은 작품이란 인간의 슬픔을 얼마큼 담아내는가이다"라면 이와 벤조의 일상을 담아낸다. 그 일상을 대사와 내레이션을 최대한 절제하여, 주변 소리로만 채워 아트 비디오 보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고독한 둘이가 만났지만, 결국 이는 벤조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하고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영화 '퍼펙트데이즈'가 떠올랐다. 두 영화 모두 평범한 일상 속 익숙함과 고독함에 슬럼프가 찾아와도 결국 그것이 괜찮은 날이라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 장면에서 걸어가는 이의 뒷모습이 나오는데, '퍼펙트데이즈의 히라야마처럼 평범한 일상에 대한 감사를 느끼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벤조를 기다리고 있는 이의 모습이 그 어떤 때보다 평온해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