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육교사의 길은 접어야겠다.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나는 사회복지 실습을 하기도 전에 보육교사 실습을 먼저 하게 되었다. 실습을 시작하기 전에 나누어주는 실습일지를 들고 어린이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나는 우리 집 코 앞에 걸어서 5분 거리 아파트 관리동 어린이집에서 실습을 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다.
나름 대학교를 다니면서 롯데리아 햄버거도 만들고 계산도 해보았고, 학교 앞 식당에서 점심시간에 아르바이트도 하며 세상 열심히 사는 학생이었다. 사회경험은 아르바이트가 전부였지만 어린이집 문 앞에서는 두려움 보다 새로움에 대한 흥미로운 일들을 기대하였다.
문을 열어.
첫 주는 분위기 파악을 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7살 반 교실 뒤에서 교사와 아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는 시간이 대부분 이었다 어느날 점심식사 배식을 하고 급하게 먹은 점심식사 후에 원장님이 실습생을 불러서 현관 앞에 있는 화분을 원장실 문 앞으로 옮겨달라고 하셨다. 꽤 많은 화분이고 크기도 커 그 무게에 손이 아플 정도 였는데 조금 후에 화분이 놓인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다시 원래 자리로 가져다 놓으라고 하셨다.
그뿐이 아니었다. 어린이집 안에서 만들기를 해야 한다고 실습생들을 모아 놓고 크리스마스 행사 준비로 인형을 만들기를 하는데 글루건은 처음 사용해보는 터라 꾹 눌러서 구슬을 붙이다가 손이 데어 뜨거운 맛도 봐야 했다. 손을 몇 번이나 데었는지 셀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어린이집 실습이라고 해서 귀여운 아이들과 신나게 놀 생각만 했던 나에게는 첫 번째 시련이었다. 겨우 알을 깨고 세상에 갓 나온 병아리가 엄마 닭을 쫓아가다 넘어져 울고 있는 모습이 딱 나의 상황이었다.
마음의 결심이 서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한 달이 빨리 지나가길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올 것이 왔다.
" 선생님 이거 치워주세요."
갑자기 다른 교실에서 선생님이 아이 한 명을 교실 밖으로 내밀며 복도를 지나가고 있는 나에게 아이를 맡기고 다시 교실로 들어가셨다. 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무슨 일 인지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이의 얼굴에는 곧 울음보가 터져나 올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을 아래로 향하며 아이의 상태를 파악하려는 순간 나는 알게 되었다. 5살 아이가 팬티에 응가를 했다는 것을... 나는...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응가를 보지도 못했고 손으로 만져본 적도 치워본 경험은 더더욱 없었다. 너무나 당황해서 얼른 아이의 바지를 내렸는데 아뿔사 응가가 내 손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을 생각해보지 못한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는 이 상황이 나에게는 끔찍한 일로 남고 말았다.
‘어린이집 선생님은 절대로 못하겠다.'
마음속으로 수없이 다짐을 하고, 마음에 빗장도 꽁꽁 닫아걸었다.
꼭꼭 숨어라
눈이 오는 날이면 기분이 너무 좋아져 아이들과 마당에서 신나게 눈썰매를 즐기며 놀이하였다. 즐거움도 잠시 실습 마지막 주를 바라보며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처럼 앉아서 이야기하고 수업을 이끌어야 하는 수업실연이 남아있었다. 실습일지에 끊임없이 적었던 T , C 안을 떠올리며 선생님이 말할 수 있는 문장들을 적으면서 연습하고 또 연습했다. 수업에 필요한 교구도 집에서 재료들을 쌓아두며 인터넷을 찾아가면서 밤새 만들었는데 수업실연의 날이 점점 다가오면서 왠지 모르게 모든 게 부족하게만 보였다. 처음 가졌던 자신감은 어느새 반토막이 나있었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던 일들이 생각나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두려운 마음만 커져갔다.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숨을 수 있다면 숨고 싶었다.
떨리는 수업실연의 날이었다. 초롱초롱 빛나는 눈동자의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데 내가 하는 말을 아이들은 듣고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아이들은 내가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 다른데 관심을 가지면서 자기네들끼리 웃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꿋꿋하게 아이들과 함께 씨앗을 화분에 심어주고 겨울이 지나 봄이 오면 꽃이 필테니 물을 주자고 이야기하며 과학탐구 활동을 마쳤다. 그렇게 긴장의 연속이었던 어린이집 실습을 끝내는가 싶었는데 숨어있는 나를 찾아내어 두 손 가득 무게를 실어주며 희미한 미소를 띠는 원장님의 모습이란…
어린이집 홍보 전단지 붙이기.
이건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파트에 전단지 붙이는 알바가 한창 유행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물론 여전히 홍보수단으로 효과를 보고 있지만 내가 실습하던 당시 대학생들이 많이 하는 아르바이트 이기도 했다. 계단을 수도 없이 오르락내리락해야 하고 한 장 붙이면 몇 십원 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수고에 비해 돈이 안되고 시간이 새벽이며 날씨도 무시 못하는 여건이라 도전해볼 생각도 않고 오히려 피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그걸 내가 실습에서 하게 될지는 몰랐다. 지금이야 생각해보면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생각해보겠지만 굳이 경험해보고 싶지 않은 것을 스스로 선택도 없이 해야 한다는 건 사회에 발도 내밀지 않은 대학생에게는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한겨울 1월 말... 복도에 창문도 없는 복도식 아파트에서 어린이집 전단지를 문 앞에 하나씩 붙이는데 손이 빨갛게 트고 발은 꽁꽁 얼어붙으면서 다리는 아팠다. 세상 고생 혼자 다 한 사람처럼 너무 힘들었던 순간이었다.
마지막 날.
교수님이 어린이집에 오셔서 원장님과 실습생들과 다 같이 자리에 앉아 실습이 어땠는지 이야기를 나누는데 눈물이 핑 돌면서 그저 아빠 같은 교수님이 왜 이렇게 반가운 건지… 부모님 없이 고생을 신나게 하다가 드디어 나를 구해줄 아빠가 나타나신 것처럼 말이다.
# 에필로그.
경기도 시립 어린이집에서 일할 때의 일이다.
"선생님, 선생님 반에 실습 선생님 오실 거예요.
준비하세요."
원장님의 말씀에 선생님이 오시면 무조건 잘해드려야지. 다짐하고 다짐했다. 나보다 나이도 많고 자녀들도 학생이라고 하시는 선생님께 오히려 나는 배울 것이 많았다.
한 달 동안 나의 모든 면을 보고 평가를 내린 선생님께서 마지막 날 나에게 한 말씀을 남겨주셨다. 선생님의 따뜻한 말씀이 현장에서 일하는 나에게 초심을 잃지 않게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 선생님은 아이들을 많이 안아주시네요.
저도 그런 선생님이 될 거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