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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잉오렌지 Jun 29. 2024

강남 길거리엔 수많은 지원자의 이력서쓰레기로 가득하니

 나라고 상황이 달라질 건 없지 아미타파



면접, 비즈니스. 사람과 사람과의 만남이지만 철저하게 이득에 의해 움직이는 관계.


나라고 이를 몰랐던 건 아니다. 애초에 나는 사적인 얘기를 하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 일적으로 대화를 하는 게 사적으로 대화를 하는 것보다 편하다. 그래서 면접에서도 크게 떨지 않고 내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었다. 나는 사업 아이템일 뿐이며 역할을 수행하는 도구다. 소모품.




그런 마음가짐을 계속 되뇌고 있더라도 역시, 막상 진짜 그런 취급을 받으면 상처받는 건 어쩔 수가 없나보다.






나는 언제나 면접을 볼 때는 1시간은 일찍 간다.



아, 그 회사에 1시간 일찍 간다는 소리는 전혀 아니고.. 버스가 밀리거나 내가 낯선 곳에서 길을 잃을 걸 대비해서 1시간 정도 일찍 가서 역에 앉아있는다는 소리다. 그후 한 15분 전에 회사에 도착한다.


나는 처음 만난 자리는 당연히 일찍 가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오히려 민폐라고 생각하는 곳도 많은가보다. 사람과 사람이 처음 만나는 자리이니 회사측이든 면접자측이든 준비를 미리미리 해두는 게 당연한 예의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하자 내가 도리어 꼰대취급을 받으니 조금 당혹스러웠다.


일을 해야하는데 면접자가 쓸데없이 일찍 오면 시간이 꼬인다? 그럼 그냥 시간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고 하면 되지. 애초에 15분이면 면접관들도 슬슬 일 그만두고 준비 시작하는 타이밍 아닌가? 뭐 집앞 편의점 가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그때는 이 사실을 모른 채 면접을 보러 갔다. 그렇다, 나의 인생 두번째 정식 면접날이다. 


나는 나에게 쓸데없이 여지를 줘놓고 시원하게도 뻥 차버린 대기업을 잊어버리고 남은 두 회사, 두 개의 에이전시에 면접을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무경력 무스펙 비전공자 백수인 내가 신입사원이라도 되고 싶어 면접을 본격적으로 보러 다니며 피똥을 싼 얘기로 브런치북을 채워나갈 예정이다.



이번에 보러 가는 면접은 직원이 30명 남짓한 중소 에이전시의 면접이었다. 나름 짬밥 있는 에이전시로 대기업 프로젝트 위주로 진행하며 사옥도 따로 있다. 잡플래닛 평가가 그리 좋진 않고 야근과 박봉 문제도 심히 많다고 들었지만 일단 나는 잡플래닛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는 사람이라 내가 직접 가보고 판단하기로 했다.


위에 써놨듯이 나는 면접 1시간 전에 가까운 역에 도착했고, 역에 좀 앉아있다가 혹시라도 미리 앉아있을만한 대기실이 있을까봐 회사에 문자를 넣어서 물어봤다. 



답장이 없다. 조금 기분이 나쁘다. 그냥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란 문자 하나도 못 보내줄까.


하지만 어쨌든 난 을 입장이니 답장을 기다리며 역에서 면접 준비를 했다. 문자는 끝까지 보지 않으셨다. 원래 그런건가 보다. 원래 일할 때 핸드폰 문자는 신경을 안 쓰시는지, 아니면 면접자에게 꼭 성실히 답장할 필요는 없다고 방침이 내려졌는지, 그것도 아니면 면접자 연락은 원래 신경 쓸 필요성이 없는지.


하긴 면접이 중요한건 면접을 보는 당사자인 나뿐이지, 면접관 알 바는 아니지.



아무튼 어쩔수 없이 나는 회사 건물 앞에서 10분 전에 전화를 했고, 2층으로 올라오라는 소리를 듣고 들어가서 2층으로 올라갔다.




면접관에 대한 첫인상은.. 사무적이었다.


사무적인건 상관없는데 인상이 조금 신경질적이라(말투까지 신경질적인 건 아니었다) 나도 초반엔 좀 긴장했다. 다른 사람들은 약간 기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면접관은 세 분이었고, 내 바로 앞에 앉으셨던 날카롭고 예민한 인상이었던 분이 내게 주로 질문을 해왔고, 나머지 두 분은 그냥 일하다가 끌려온 듯한 인상을 받았다(실제로 그럴 것 같다).


그 면접관 셋은 나중에 내가 따로 질문한 후에 알았지만 딱 나의 선임들, 실무진 셋이다. 면접을 한번만 보는데 대표나 임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대충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갔는진 알 것 같다.


그 어거지로 끌려오신 두 분은 주면접관이 질문할 거 있냐고 물어보자, 그제서야 포트폴리오에 관해 겨우 하나 물어보거나, 아니면 "아니, 딱히 없는데."라며 끝까지 그냥 자리만 지키고 계셨다. 참 바쁘신 것 같다. 대표가 시켜서 억지로 불려나온 모양이다.



불려나왔다고 해도 어쨌든 그건 그쪽 사정이고 나는 기분이 좀 그런 건 어쩔 수 없다. 


나는 최대한 착한 말투로 사근사근 분위기를 풀려고 노력해보았고, 면접 후반부에 세 분이 그제서야 작게 웃는 걸 보고 조금 긴장이 풀리는 걸 느꼈다.


어차피 떨어진 거 그냥 예의상으로 웃어준걸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난 처음부터 끝까지 그 회사에 애매한 감정만을 가지고 있었기에 별로 큰 타격은 없었다.




맞다. 떨어졌다. 그 떨어졌다는 결과는 현재까지도 연락이 오지 않았지만, 면접 결과를 알려주지 않는 회사도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긴 했지만, 내가 떨어졌다는 사실은 이미 면접 중반부서부터 깨달을 수 있었다.




자기소개와 몇몇 형식적인 질문 후 나는 포트폴리오 발표를 요청받았다. 갑작스럽게.


포트폴리오 발표가 뭐냐? 마치 조별과제에서 파워포인트 발표하듯이 나의 프로젝트 결과물을 한장 한장 넘겨가며 요약설명을 하면 된다. 그렇게 어려울 것 없다. 포트폴리오에 있는 글씨 그대로 읽지만 않으면 된다.


문제는 내 포트폴리오는 당시 pdf나 ppt 형식이 아닌 노션의 형태였다. 이게 무슨 문제가 있냐, 쉽게 말해서 정리된 발표자료를 발표하는 것과 쌩으로 책 한권을 발표하는 것의 차이다. 포폴 템플릿 예쁘게 만든다고 고생하지 말고 그냥 pdf로 만들자.


한장한장 엔터로 딱딱 넘기는 것 대신, 마우스로 줄줄 스크롤하면서 내가 원하는 내용을 찾아야했고, 발표에 어울리지 않는 플랫폼에 풀어서 쓴 설명을 두세줄로 압축하느라 두세배로 머리를 써야했으며, 면접관의 주의를 환기시켜줄만한 이미지는 별로 없는데다 보통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긴 글 읽기' 활동을 강제로 시켜줘야 했다. 하품이라도 안 나오면 다행인 셈이다.



나는 갑작스러운 발표에 하나도 대비가 안되어있었고 발표를 할 거란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간부턴 반쯤 포기한 상태로 그냥 썰이나 풀듯이 대충 말을 씨부리며 '면접'이라는 것에 익숙해지는 연습만 반복했다. 게다가 어차피 면접관들도 내게 하나도 관심이 없어보였고 그냥 이 지루한 시간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 보였으니, 나의 이 외로운 말하기 연습에 방해될만한 요소는 아무것도 없었다.



발표가 끝나고 주면접관에게 질문을 받기는 했다. 고맙기도 하지. 


어떤 질문이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으나 이런 느낌이다. 포트폴리오와 관련된 질문은 이 프로젝트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컨셉), 프로젝트를 하며 갈등이 있았던 것 정도. 


그리고 몇몇 쎄한 질문도 받았다. 내용 자체가 날카롭다거나 비난조라는 건 아니지만, 실력 있는 회사가 궁금해할 거라곤 생각이 들진 않는 그런 질문들. 그리 많진 않지만 꽤 다양한 종류의 면접관을 만나본 탓에 면접관 데이터가 조금 생겼고, 이와 관련된 내용을 나중에 매거진에 따로 쓸 예정이니 개봉박두.


나는 어쨌든 제대로 답변을 하기는 했으나, 발표를 완수하고 쎄한 질의응답을 완료한 걸 넘어 면접에 있어 가장 거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나는 내 포폴 발표를 통해 내 면접 준비를 하나도 하지 않은 면접관에게 내 프로젝트를 이해시키는 것에 실패했고,


나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었던 면접관에게 나라는 사람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도 실패했다.



불합격한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결국은 내 실력이 부족했고, 내 준비가 부족했다. 왜냐하면 면접관은 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니까.



나는 내가 드디어 합리라는 우물 속에서 빠져나왔음을 깨달았고, 환희했다.







이곳에 나처럼 우물 안에서 벗어나야 할 필요가 있는 '철부지'들을 위해 우리가 사회에 나가기 위해 알아두어야 할 사실들을 기록해둔다.



1. 내 서류를 읽어줄 기대 자체를 하지 말자. 그 대신 내 서류를 읽고 준비해주는 회사에게 감사하자.


2. 합리적이라는 말은 이상주의라는 말과 유사하다. 

    현실적이라는 말은 순종적이라는 말과 유사하다. 비관주의의 동의어이기도 하다.    

    이상을 추구할지 현실을 추구할지는 본인 마음이다.


3. 기본적인 예의, 당연한 사실, 약속, 인과관계.. 이런 것들은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다. 


4.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실력 대신 합리화하는 실력을 키워 자존감을 스스로 올리자. 

    주변 사람에게 괜히 털어놔서 네가 철이 없어서 그런 거라는 얘기나 들을 바에는.


5. 우리가 힘든 이유를 외부가 아닌 우리 자신 내부에서 찾아야 우리 세상이 변한다. 

    잘못이 없다면 잘못을 만들어내서 고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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