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면접, 기획자로서 나의 두번째 면접의 이야기는...
우물속에서 빠져나와 현실과 마주하기 직전이었던 나를 다시 우물에 밀어넣으려 했던 회사와의 이야기.
쉽게 말하면 정말 좋은 회사와의 면접.
떨어졌지만.
OO 님의 포트폴리오에서 문제를 정의내린 부분이 인상깊어서
면접 자리에 모시게 되었습니다.
어떤 느낌인가?
일단 내 포트폴리오를 읽으셨다. 훑어보는 게 아니라 읽으셨다. 난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심지어 내 포트폴리오 중 특정 부분이 마음에 들어 면접에 불렀다는 확실한 동기가 있다.
어차피 채용담당자용 서류합격 이메일 템플릿인 건 다 알고 있다. 하지만 어쨌든 지원자 심정을 고려했다는 점, 그 템플릿을 찾을 필요성을 느꼈다는 점 자체가 이미 다른 회사보다 현격히 좋은 회사라는 증거다.
그리고 이 당시까지는 아직 나에게 pdf 요약버전 포트폴리오가 없었다. 그러니 길고 긴 노션 포트폴리오(=소설)만 가진 채 지원했다는 소리다. 하지만 나의 그 정성 듬뿍 담긴 논문 덩어리를 보고 나를 면접 자리에 부르겠다는 마음을 먹었단 것 자체가 감격스러웠다.
확실히 노션 포트폴리오가 기업 선별효과가 어느정도는 있는 것 같다. 대기업 및 네카라쿠배당토 등에 합격한 사람들의 사례를 들어보니 노션 포트폴리오라고 안 읽지는 않고 모든 서류를 꼼꼼히 읽어보신다고 들었다. 오히려 흔한 틀에서 벗어나 pdf보다 좋게 평가했다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지원하는 곳은 대부분 스타트업 혹은 중소기업이었다. 확실히 작고 오래된 회사일수록 노션 포트폴리오가 통하지 않기는 하다. 그리고 노션 포폴이 통하는 곳은 내 기준으로 지원자에 대한 존중과, 깊게 고민하고 탐구하는 습관이 몸에 자연스레 배어 있는 트렌디하고 실력 있는 강소기업들이었다. 그러니 취업이 너무너무 간절하고 어디라도 당장 해야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노션 포트폴리오로 승부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물론 트렌디하지 않다고 이상한 기업이라는 소리는 아니다. 오해하지 말자. 이전 글에 써놓았듯이 노션 포폴이 있다 하더라도 pdf 요약 버전을 만드는 것이 무조건 좋다. 실력 있는 회사도 면접자 뽑는 일은 피곤하고 귀찮다.
내가 지원서를 꼬라박은 수십개의 회사 중 내 노션 포트폴리오를 읽고 나를 면접 자리에 부른 회사가 총 네 개 있었다. 그 중 두개는 좀 애매하긴 하지만.
이전 글에 쓴 내 포폴을 사전에 검토하지도 않은 에이전시(내 포폴이 노션인지 pdf인지도 모르셨다)와 면접 제안이 왔었으나 취소된 대기업을 제외하고 사실상 둘이다. 내 인생 첫 면접을 봤었던 series A 9년차 스타트업과, 이번 글에서 소개할 에이전시.
다만 그 스타트업의 경우 현재 기업 데이터를 확인해보니 퇴사율이 엄청 높아서 회사가 약간 기울어지고 있었다(결과적으로는 잘 피한 셈인가?). 그에 반면 이번에 면접을 보는 에이전시의 경우, 세워진지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기업으로 독자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어 활발하게 트렌드 연구를 하고 있는, 미래가 있는 곳이었다.
아, 훌륭하다. 스타트업의 자유로움과 에이전시의 전문성을 동시에 누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겼다. 그렇게 생각하고 룰루랄라 면접에 갔다.
그리고 내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금융 도메인이었고, 단순히 주어진 일만 하는 수동적인 에이전시가 아니었다. 소속 연구원에게 확실한 대우를 해주고, 하고 있는 사업 또한 트렌드를 앞서가는 선두주자격의 서비스였다. 신생 기업인데도 연구용 사용자 풀이 확실하게 확보되어 있었다. 내 포트폴리오에 있던 금융 프로젝트에서 이루고자 했던 방향성과 핏이 매우 잘 맞아떨어졌다.
좋은 기업이었다.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 진행하는 프로젝트, 나를 부른 이유, 내 프로젝트와 회사 프로젝트의 유사성, 현재 회사 내부 재정 상황 등 관심 없는 지원자에게는 굳이 말해줄 필요가 없는 알짜배기 질문들을 던졌다. 좋은 기업이었다.
떨어졌고.
솔직히 말하면, 나는 무조건 붙을 줄 알았다.
그야 회사 민감한 내부 사정을 꼴랑 지나가는 면접 지원자 따위에게 알려줬을 리가 없지 않나.
그래서 면접을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 동안 채용공고 플랫폼에 들어가지조차 않았다. 그 회사에서 알려준 연구조사 참고용 사이트에 들어가서 공부까지 했다. 심지어 금융권 일을 하려면 당연히 증권사에 가입해야 하는데, 한달에 한번밖에 가입할 수 없으므로(예를 들어 내가 2월에 한국투자증권 계좌를 개설했다면 토스증권이나 KB증권도 3월이 될 때까지 계좌를 만들 수 없다) 미리 지금부터 하나씩 가입해두라는 뉘앙스를 넌지시 던지기까지 하셨다.
너무 노골적인 사인 아닌가? 내가 또 착각한 건가? 그냥 모든 지원자에게 그런 소릴 하시는 건가? 내가 또 마냥 순진해빠진 온실 속 화초라 그걸 믿은 건가?
이번 면접의 불합격 소식은 나에게 비교적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나는 그 이후로 그 어떤 좋은 회사도 믿지 않게 되었다.
서류 탈락 이메일 템플릿 같은 것도 검색해서 사용해주면 좋겠는데. "oo 님의 면접에서 이런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떨어뜨렸습니다" 같은.
하긴 그렇게 합리적으로 평가를 하는 회사는 많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