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잉오렌지 Jul 20. 2024

나는 발표가 싫어

포트폴리오 면접의 늪

발표. 면접. 듣기만 해도 심장 떨리는 단어들.


'잘 말하고 싶다'라는 욕구가 그 누구보다도 큰 나에게 있어 너무나도 부담이면서도, 너무나도 붙잡고 싶은 성장의 기회들이다.


근데 발표와 면접, 그 두 가지가 합쳐진다면 어떨까?




PT면접. 이번 화는 포트폴리오 발표 면접을 앞둔 나의 이야기다.






근데 그 얘기에 앞서, 뜬금없긴 하지만 심리학과에서의 "발표" 얘기를 잠깐 풀어보고자 한다. 면접 얘기를 보고 싶다면 밑으로 스크롤하셔도 좋다.


나는 대학 생활 동안 발표 연습을 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심리학과의 커리큘럼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통계. 현장실습. 논박. 발표. 철학. 암기. 개발. 글쓰기. 뇌과학. 법. 물리. 등등. 



하나의 틀 안에 묶이지 않을 것만 같은 것들이 심리학이라는 하나의 틀에 묶여있다. 다만 한가지 공통점은 있다. 뭘 하던 간에 어떤 수업을 듣던 간에 입을 씨부려야 할 일이 정말정말정말 많다는 것이다. 교수님들은 무슨 수업이던 간에 우리에게 말을 시키셔 토론을 유도한다. 수업 듣다 조는 사람이 나올 수가 없는 구조다.


원래 심리학과는 커리큘럼상 혼자 공부할 일이 그리 많지 않다. 다 같이 공부해야 한다. 또한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 부딪혀 연구를 해야 하기에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안 오를 수가 없다. 


프리라이더가 나오기도 어려운 구조다. 그냥 혼자 프로젝트해서 혼자 발표할 일도 많다. 수업 하나에서 수업을 듣는 전원 50명이 각자 발표를 하느라 50번의 발표를 하는데 이걸 그래서 몇주에 걸쳐서 어떻게든 꾸역꾸역 All 발표를 시키시는 것까지 봤다. 심리학과 교수님들은 대부분 집착이 계신다.



그런데도 코로나 때문에 발표할 일이 많이 줄었다.


그래서 우리들은 비대면으로 대본을 그냥 읽는 맘 편한 발표를 하는 시기를 보냈다. 실전에 강한 타입이지만 여전히 발표 울렁증이 있는 나에겐 운이 좋았던 게 될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 덕분에 나는 제대로 된 발표 경험이 전무한 어버버 햇병아리가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면접 얘기로 돌아와볼까?


IT, 특히 그 중에서도 기획 파트는 다른 직원과 협업할 일이 많아 소리를 내서 자기 의견과 아이디어에 대해 얘기하고 어필하고 발표해야 할 일이 상당히 많다. 


사실 협업 얘기를 하기 이전에 이미 수많은 디자인 회사가 면접을 볼 때 발표를 시킨다. 그러니 약 세 번 정도 면접을 볼 때까지 포트폴리오 발표에 대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고 안일한 나날을 보냈던 나에게 지금부터라도 처벌을 내려야 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래서 앞으로 나에게 닥칠 수많은 발표에 익숙해지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빡세게 나 자신을 굴려야 할 필요가 있다는 소리다.



 





5분. 



단 5분. 포트폴리오를 발표하는 데 들이는 시간.


단 5분의 발표를 하는 데도 미칠 듯한 강박에 시달리는 나. 잘해야 한다는 강박과 하기 싫다는 무기력이 동시에 나를 자극하는 상태. 



서두가 길었지만 네번째, 다섯번째, 여섯번째 면접의 얘기를 시작하겠다. 그렇다. 세번째 면접에서 떨어져서 의기소침해 있었던 나에게, 약 1달 동안의 공백기가 지나고 또다시 세개의 면접이 동시에 잡혀버렸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준비를 철저히 해서 붙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지고 면접 준비를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내 멘탈이 버틸 수 있는 시기였었다.



내가 지금까지 면접을 봤던 각각 회사에 대한 내용을 여기 정리해보았다. 현재 준비해야 하는 면접은 4번, 5번이다.


1번: 컬쳐핏 면접, 50명 규모 series A 스타트업 https://brunch.co.kr/@blueingorange/42

2번: 실무 + 인성 면접, 30명 규모 10년차 에이전시 https://brunch.co.kr/@blueingorange/67

3번: 인성 면접, 3년차 에이전시(면접을 한번만 봤는데 실무 관련 질문은 없었다. 실력이 포트폴리오로 충분히 검증되었다 하셔서 인성 위주로 면접을 보았다) https://brunch.co.kr/@blueingorange/68

4번: 면접 방식 설명 X, 올드한 느낌의 작은 에이전시

5번: PT 면접, 70명 규모의 트렌디한 에이전시

6번: 실무 면접, 20명 규모 대기업 계열 AI 스타트업, 화상면접



나는 4번은 가고 싶다기보다는 그냥 면접 연습하는 느낌이라 생각하고 처음부터 3순위로 제쳐두고 있었고, 5번은 계약직 면접이긴 했으나 괜찮아보이는 기업이었기에 2순위, 그리고 6번이 1순위로 목숨을 걸기로 마음먹었다. 


이렇게 세 개의 면접 사이에 우선순위를 정했으나, 어차피 발표 연습은 해야 한다. 언제 갑자기 불쑥 포트폴리오 브리핑을 시킬지도 모르니까. 6번 면접은 조금 준비할 수 있는 기간이 있었지만, 4번과 5번은 두 면접 사이에 시간 간격이 짧기도 해서 나는 서둘러서 PT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웹에이전시는 포트폴리오 발표를 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두 번째 면접에서부터 깨닫고, 나는 다시는 그때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로 했다.




포트폴리오 발표. 왜 시키느냐? 어차피 이력서 검토하면서 다 읽어봤을 거 아니냐? 


두 가지 경우가 있다. 내 포트폴리오를 확인하기 귀찮아서. 아니면 내 실력을 보기 위해서. 둘 다일수도 있고. 


실력 검증 용도의 면접일 경우 크게 세 가지 정도를 평가할 수 있다. 


1. 본인의 프로젝트 이해도 - 내가 진행한 프로젝트의 세부 과정 등 포트폴리오에 보이지 않는 깊은 부분

2. 타인을 이해시키는 실력 - 논리적으로 흐름에 맞게 발표하는 정도 

3. 그냥 발표 실력 - 떨지 않고 말을 잘 이어가는 정도



그리고 포트폴리오 발표를 시키지 않고 인성면접 위주로 보는 곳은 내 이력서, 포트폴리오 하나하나 정말 꼼꼼히 체크해 내용을 숙지한 후에 면접에 들어오신다. 1번과 3번에서 경우가 그랬다. 애초에 회사 다니면서 PT 같은 수직적인 보고를 할 일이 별로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PT 면접을 안 시킨다는 게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 위주로 하는 기업이라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단, 나는 수평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하긴 하지만 이게 수직적 커뮤니케이션보다 무조건적으로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PT 면접을 봤었던 2번의 경우는 이전 글에 썼다시피 면접 자리에서 내 이력서를 읽기 시작하고, 포트폴리오는 나의 발표를 통해서 그제서야 이해를 하기 시작했다. 면접을 보는 당시에는 좀 짜증났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평균인 것 같다. 평균이 개같이 낮다는 건 차치하고.




아무튼 중요한 사실은, 언제라도 발표를 할 수 있도록 미리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사실. 특히 기획자라면. 


필사적으로 대본을 짜서 암기했다. 이런 오리지널 솔로 발표는 4년 전에 한 것 이후로 정말 거의 처음이다. 침이 마르는 것을 느낀다. 아무리 어른이 되어서 좀 이성적으로 변했다고 해도 역시 발표에 대한 선천적인 불안까지는 전부 이겨내지는 못하나보다.


어버버 어버버 말을 더듬다가 육성으로 욕을 내뱉고 타이머를 초기화하고를 반복했다. 연습하기 싫어. 귀찮아. 내 머리는 이런 대본 암기 쪽으로는 전혀 발달돼있지 않다. 나는 그래서 연습을 안하고 마치 내 다른 인격에게 할 일을 떠넘기듯이 실전에서 때우는 것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래서 발표를 하고 있지 않을 때의 나는 여전히 발표가 너무나도 두렵다. 발표에 적응한 건 지금의 내가 아니라 발표를 하고 있을 때의 나니까.



연습을 하다가 목이 너무 아파서 잠깐 쉴 때, 나는 잡힌 3개의 면접(4,5,6) 중에서 가장 먼저 볼 4번 면접에 대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렇게 회사 및 면접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이 무작정 면접 준비를 하는 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실무 면접인지, 인성 면접인지 어떤 질문을 하는지 어떤 회사인지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그래서 무작정 전부 다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JD가 괜찮아서 공고를 넣었고, 며칠 후 서류합격 연락을 받았었다. 다만 다른 회사와 다르게 이메일/유선으로 연락을 주지 않고 특이하게 채용 플랫폼 내에 있는 메시지로 연락을 주셨다. 그 메시지를 보고 느낀 건, 연락 내용에 '나'와 관련된 내용이 전혀 없고 복붙한 게 티가 났다는 점. 최소한의 성의로 메시지 맨앞에 내 이름 정도는 붙여줄만 한데, 내 이름도 면접관 이름도 없이 그냥 "되는 일정에 체크해라"라는 내용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조금 쎄했다. 잡플래닛에 검색해도 나오지 않았다. 거의 15년 정도 된 회사인데 구글링으로 정보가 아무것도 안 나올 리가 있나? 수상했지만, 기업 홈페이지에 보란 듯이 게시된 활기찬 직원 워크샵 이미지를 보고 일단은 판단을 유보하기로 했다. 그렇게 나는 4번 면접을 보러 향했다.



 




결론을 얘기하면 이렇게 밤을 새서 발표고 꼬리질문이고 준비했지만 써먹을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면접관이 딱히 면접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전 13화 그렇게 데려갈 것처럼 굴더니 날 떨어뜨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