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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파 Sep 01. 2016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황금시대를 꿈꾸나요?


삶이 지루하고 의미 없이 느껴질 때면 누구나 한번쯤은 여행을 꿈꾼다.

그 여행의 목적은 제각각 다르지만, 여행을 통해 찾게 되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이 여행을 통해서 나 자신을 찾게 도와주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를 찾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현재라는 시간은 늘 불만족스럽고 불안한 시간으로 정의된다. 현재라는 것은 아련한 옛날을 꿈꾸게 하는 ‘과거’와 더 나은 삶을 찾고 싶은 ‘미래’라는 사이에 존재하며,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들의 연속이기도 하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통해 ‘현재’라는 시간, 그리고 그 현재 속에 존재하는 ‘나’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1) ‘미드나잇 인 파리’- 시공간의 의미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을 꼽자면, 아름다운 미쟝센이라 할 수 있다. 파리의 명소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공간까지 아름다운 영상들로 담아냈다.  그리고 주인공 ‘길 펜더’는 이 아름다운 도시 파리의 새벽에 시간 여행을 떠난다. 왜 파리의 새벽인가? 이 영화의 시간과 공간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주인공 ‘길 펜더’는 종이 12번 울리는 자정이 되면 엔틱하고도 멋진 자동차를 타고 시간 여행을 떠난다.

주인공에게 자정이라는 시간은 오늘인지 어제인지 그 경계를 알 수 없는 시간 즉, 환상의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주인공은 이 시간에 매력을 느낀다. 예술가들이 살아 숨 쉬고, 꿈으로 가둬둔 욕망을 펼쳐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새벽녘 ‘미드나잇’은 환상을 현실로 만드는 마법같은 시간이자, 주인공이 자신의 삶의 방향을 선택하게 되는 성장의 시간이다.


 그렇다면, 파리라는 공간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길 펜더’는 1920년대의 파리로 간다.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달리, 피카소 등 시대를 막론하고 최고로 칭송받는 예술가들을 만난다. 그 예술가들을 모두 만나는 공간이 파리이다. 더 자세하게는 비가 내리는 파리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비 오는 날을 매우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고하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같다.

  영화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파리의 날씨는 늘 비가 온다. 비가 내림으로 공간 안으로 모이게 되고, 그 공간 안에서 뜨거운 열정을 뿜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파리는 진정한 예술의 공간이 된다.

 이 영화에서 말하는 예술이라는 것은 절대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어느 기준을 놓고 그 예술에 대해 ‘옳다, 그르다’ 라고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파리’라는 공간이 갖는 의미는 주인공이 미국이 아닌 파리를 선택하게 되는 이유에서 알 수 있다. 그 곳은 예술이라는 열정을 한 곳에 불러 모으는 곳이면서도, 세상의 잣대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이 영화의 제목인 ‘미드나잇 인 파리’는 결국 현실의 연장인 환상이라는 시간 속에서 자유로워지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면서 영화를 보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는 의미를 갖는다.     



2)시간 여행과 예술가들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쓰는 영화는 많다. 대부분 이것은 판타지나 공상 영화로 분류되는데, 이 영화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연장선처럼 느껴진다.

 주인공은 <현실-1920년대-1890년대-현실>의 순서로 시간 여행을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예술가들을 만난다. 이 예술가들은 주인공의 욕망을 투영한 피사체라고 할 수 있다.


 

 시간 여행을 통해 주인공 ‘길 펜더’가 보는 것은 예술가 그들 자체라기 보다는, 자신의 욕망이다.

 현실에서는 약혼녀인 ‘이네즈’와 할리우드로 돌아가 명성에 맞게 드라마나 영화 작가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시간 여행을 떠난 그 곳에서는 소설을 쓰는 소설가가 될 수 있다. ‘헤밍웨이’의 소개로 만난 ‘걸트루트 스타인’에게 주인공은 자신이 쓴 소설을 평가받는다. 그 시간만큼은 예술가들을 통해서 진짜 자신을 보는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현실의 연장선으로 느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들의 모습이 늘 그렇듯, 나만의 우상과 나를 한 곳에 그려보는 상상을 통해, 그렇게 되고 싶은 막연한 욕망과 동시에 정말 현실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함께 그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 나오는 수많은 예술가들은 또 어떤 의미를 갖는가? 영화에서 나오는 예술가들은 친근하다. 사랑에 목말라하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열띤 토론을 벌인다. 그리고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것 없이 죽음을 두려워하고 누군가를 동경한다.

 특히, 주인공 ‘길 펜더’가 사랑하게 되는 ‘아드리아나’는 이 영화에서 말하는 주제를 가장 잘 드러내는 인물이면서, 이 영화에 나온 예술가들의 총집합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당대 최고의 예술가들과 살아가는 ‘아드리아나’는 많은 예술가들의 뮤즈로 사랑을 받는다.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과 그녀를 통해서 보는 예술 또한 환상처럼 그려진다. 하지만, 이 최고의 황금시대를 사는 ‘아드리아나’마저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한다. 결국 예술가들은 우리들과 똑같은 존재인 것이다. 다만, 그들이 갖고 있는 열정이 다를 뿐. 이 영화는 예술가들의 모습을 통해 보는 이로 하여금 선택을 하게 한다. 하지만 그 선택이 어려운 것은 아니다. 열정을 품을 것인가? 현실에 안주할 것인가?


3) 황금시대-유토피아의 시간

 주인공 ‘길 펜더’는 자신의 소설에 ‘노스텔지어’라는 향수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공을 그린다. 그만큼 주인공은 과거에 대한 애정을 보인다. 단순한 시간들이 아니라, 그 시간들 속에 존재했던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애정인 것이다. 주인공만큼이나 과거에 대한 동경을 보이는 또 한 사람이 바로 ‘아드리아나’이다. 주인공 ‘길 펜더’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결국 ‘길 펜더’가 과거로 돌아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 여자 또한 과거를 꿈꾼다. 그리고 이 여자는 자신이 원하던 바를 따라 더 먼 과거로 여행을 떠나고 그 곳에 머무르길 원한다. 이 여자의 선택으로 주인공은 깨닫는다. 진짜 황금시대는 언제일까? 그것은 존재하는 것인가?

 주인공 ‘길 펜더’와 ‘아드리아나’는 1890년대로 떠나게 된다. 그곳에서 고갱, 드가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영광으로 끝나지 않는다. 고갱과 드가는 다시 르네상스 시대를 황금시대라 칭하며 더 먼 과거로 돌아가길 원한다. 유토피아는 현실에는 없지만, 아니 없기 때문에 동경 받는 공간이다. 이 영화에서 그려지는 ‘황금시대’라는 것도 결국 유토피아적 시간이다. 현실에는 없는 시간 즉, 닿을 수 없는 시간일 때에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주인공 ‘길 펜더’는 이것을 깨닫게 되지만, ‘아드리아나’는 결국 그 과거에 머무르게 된다.


 

뒷이야기는 어떻게 될까? ‘아드리아나’는 그 황금시대에 계속 머무르게 될까? 내 대답은 ‘그렇지 않다’ 이다. 결국 ‘아드리아나’는 또 다른 황금시대를 찾아 떠나고, 결국 그렇게 과거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될 것이다. 주인공 ‘길 펜더’는 약혼녀 ‘이네즈’와 파혼하고 결국 파리에 남는다. 

하지만 종이 열두 번 울리는 자정이 되어도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가지 않는다. 현실 속에서의 새로운 여행을 꿈꾼다.

 ‘노스텔지어’라는 ‘향수’는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더 큰 미래를 그리게 되는 것이다. ‘향수’라는 것은 오로지 ‘향수’로만 남을 때에 온전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영화에서는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비오는 파리를 사랑한 주인공 ‘길 펜더’는 1920년대의 비오는 파리가 아니라, 지금의  비오는 파리를 선택한다. 결국 황금시대라는 것은 절대 닿을 수 없는 시간이며,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선택은 나의 몫인 것이다. 영화는 마지막에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황금시대는 언제인가? 그것은 과거인가, 현실인가, 미래인가? 당신은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영화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나에게 자신을 찾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준 영화이다. 주인공이 가장 사랑하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았듯이, 나 또한 진정한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의 진짜 모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믿게 된 영화였다. 

 

생각해보면, 우리 또한 황금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시간이 그리운 과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꿈꾸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없다. 황금시대로 향하는 발걸음이 있어야만 그것을 찾을 수 있다.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삶은 한 방향으로만 흐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내 미래는 어제가 될 수도, 또 다른 오늘이 될 수도, 전혀 다른 내일이 될 수도 있다.


'미드나잇 인 파리'를 통해, 나는 어떠한 시공간을 선택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았다.




주인공 ‘길 펜더’가 바로 지금 비오는 파리를 선택한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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