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조건
최근 재개봉으로 다시 주목받은 영화 '굿 윌 헌팅'은 행복의 모든 것에 대해 물음을 던진다.
우리의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오늘 무엇을 먹을까? 어떤 옷을 입을까? 이 사람에게 연락을 해볼까? 말을 걸어볼까?
이러한 작은 선택들이 모여 하루를 이루고, 이 하루를 모아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가슴 아픈 이별 후, 내가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물었던 질문이 있다.
나 지금 행복한 걸까?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나는 왜 언제나 후회가 남는 선택을 하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나는 아직도 답을 찾지 못했다.
자신이 천재임을 알지만 여전히 폭력과 가난, 어두움, 슬픔을 자신의 일부로 여기며 살아가는 주인공 윌이 있다. 대학 강의실을 청소하고, 친구들과 담배를 피우며 맥주를 마시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그는 이 현실을 벗어날 의지가 전혀 없다.
그런 윌을 구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살면서, 우리에게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넌 잘 될 거야. 넌 훌륭하다. 슬퍼하지 마. 곧 너에게도 행운이 올 거야.
이런 진부한 이야기 말고.
사실 어느 누구에게도 상대방에게 이런 깨우침을 주어야 하는 의무는 없다. 그저 위로할 뿐이다.
양부모의 폭력과 반복된 파양에 사랑의 문을 닫아버린 주인공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들.
그들이 윌에게 공통적으로 준 것은 관심과 사랑이다.
자기 자신의 상처를 똑바로 볼 수 있게 일으켜 세우고, 타인의 사랑을 거부하지 않도록 돕는다.
나만 봐도 그렇다.
친구들에겐 위로를 아주 잘한다. 상대방을 똑바로 보는 것은 쉬운데, 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은 어렵다.
차라리 외면해버린다. 내 슬픔과 고통을 마주하는 순간 어둠의 저 밑바닥, 그 바닥의 바닥까지 뚫고 내려가버릴까 두렵다.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느니 덮어두고 외면하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직도 그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을까. 나에 대한 인정과 위로가 부족한 탓일까.
영화는 이 한 마디로 모든 것을 말해준다. 너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니, 너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말아라, 괴롭히지 말아라, 그건 너의 잘못이 아니다, 넌 행복할 권리가 있다.
윌이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많은 고통이 따랐다.
자신을 일으켜 세워준 선생님을 붙잡고 눈물을 쏟는 윌은 이때야 비로소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보내고, 현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 친구는 말한다.
어느 날 너의 집 문을 두드렸을 때, 네가 없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 거라고.
정말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된 윌은 떠난다.
당장의 부와 명예가 아닌 사랑을 찾아.
모든 행복의 조건은 사랑이다.
언젠가, 나도 이 슬픔이 다 끝나고 나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작은 희망을 여기서 찾았다.
그가 떠나고 난 뒤, 모든 것이 타버리고 남은 것이라고는 마르고 갈라져버린 마음뿐이지만
이 슬픔을 이겨내고 나를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그 순간이 온다면
그땐 나도 나를 위로하고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행복이 오지 않을까.
도저히 행복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한 절망의 길 앞에서, 희미한 불빛을 찾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