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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n 12. 2019

당신은 얼마입니까?

호주 직장 생활: 연봉 협상

“HR이랑 말했어?” 

“아니, 아직…”

“빨리 말하라니까. 그거 그대로 승인 나면 못 바꿔!” 


새로운 포지션으로 옮기는 페이를 다그쳤다. 그녀는 북경 출신으로 뉴질랜드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한 뒤 취업을 위해 호주로 왔다. 오랜 시간 뉴질랜드와 호주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전히 중국인이었다. 그저 5년 동안 힘겹게 버텨왔던 지겨운 업무에서 벗어나 커미션 분석가로 직책을 옮긴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돈은 세속적이고 이야기하기 꺼려지는 주제라고 여기는 유교의 영향인지, 착한 사람 콤플렉스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아시아에서 이민 온 직원들은 대부분 자신을 저평가하고 연봉협상에서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을 꺼려했다. 안타까웠다. 그런 그녀의 weak point를 파고드는 일방적인 연봉 결정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연봉 협상과 관련된 어떤 말도 인사팀에서 듣지 못했으며 그녀의 매니저는 연봉은 이미 결정 난 상황이며 예산 때문에 변경이 불가능하다고 들었단다. 예외적인 일이었다. 일반적으로 직속 매니저는 연봉에 대해 직접 의논하지 않으며 모두 인사팀이 직원과 협상하여 결정하기 때문에. 




연말 평가에서 레벨 1 Exceptional을 받더라도 연봉 증가율은 겨우 5%, 즉 2-3% 증가율이 일반적이다. 연초에 매니저랑 함께 작성한 KPI (Key Performance Index)를 토대로 스스로 평가를 내리고 매니저와 평가에 대한 리뷰를 한다. 각 매니저들은 부서장과 함께 팀을 막론하고 각 직원들에게 어떤 레벨이 적절한지 다시 회의를 한다. 레벨 1부터 3까지의 쿼터는 정해져 있고 매니저들은 각자 자기 팀원들을 위해 열심히 싸운다. 결과적으로 매니저와의 회의에서 레벨 1이라고 서로 동의하였다 하더라도 팀장이 이 싸움에서 지면 그 팀원은 5%의 연봉 증가는 기대할 수 없다.  


그래서 승진하거나 포지션을 바꾸는 시기야말로 연봉 앞 자릿수를 바꿀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미국에 본사가 있어서 직원 연봉이 10% 이상 증가할 때 본사 승인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연봉 협상 테이블에서 현실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연봉보다 더 높게 부르는 게 정석이었다. 그래야 인사팀과의 협상 과정을 통해 새롭게 옮기는 직책의 예산 최대치를 가져갈 수 있을 테니까. 처음에는 동양인의 피가 흐르는 나도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넙죽 주는 대로 연봉을 받아들였다. 어느덧 그들의 연봉협상 문화를 알고, 하는 일 없이 회삿돈을 훔쳐가는 월급도둑들을 보고, 억울했다. 결국 그들 중 하나가 되어 배정된 예산 최대치를 가져가기 시작했다. 이 시작점에 따라 5%든 3%든 다음 해 받는 월급봉투 금액이 급격하게 달라지니까*




이 회사에 나보다 더 오래 적을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사에 휘둘리는 페이. 

요새 일 많지라는 나의 안부인사에 ‘무한대에 하나 더해봤자 어차피 무한대라서 괜찮아’라고 웃으며 말하면서도 미간에 주름을 세우고 굳은 어깨에 매주 한의원을 찾으며 매일 모니터를 노려보며.


그녀는 새로운 곳에서 또 스스로를 태워갈 것이다. 

그녀는 과연 타버릴 그녀의 몸과 마음의 값을 제대로 받았을까? 

혹여 너무 싸게 팔아버린 것은 아닐까 후회하지 않을까? 


*이때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은 소득세율이다. 소득 수준에 따라 세율이 변화하기 때문에 호주 국세청 (ATO, Australia Tax Office) 웹사이트에 있는 소득세율을 고려하여 내가 제시할 연봉을 계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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