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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n 06. 2019

권리의 획득이 권리 행사를 의미하진 않는다

호주 직장 생활: 취업전쟁

호주에서 대학 이상의 교육을 받으면 학업이 끝난 뒤 학업기간과 같은 기간 동안 일을 할 수 있는 비자를 받을 수 있다. 즉, 1년 6개월의 대학원 과정을 수료하면 1년 6개월 동안 호주에 거주하며 풀타임으로 일할 수 있다. 


그런데 권리를 획득하였다는 게 곧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한국과 다르게 호주에서 취업 활동하면서 성별이나 나이로 차별받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대부분의 구인 조건 중에 필수적으로 들어가는 항목이 있는데 그게 바로 ‘영주권 비자나 시민권 소유'다. 


그렇다면 영주권을 갖고 있으면 취업은 수월할 것인가?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영주권을 소유했을 때 비로소 취업경쟁에 참가할 최소 자격을 갖춘 것이다. 그다음 넘어야 할 장애물은 현지 경력. 경력은 경력이되 ‘현지’ 경력이다. 즉, 다른 나라에서 같은 업무를 한 경력은 인정해주지 않는 경우가 다수다. 물론 이력서에서 쉽게 걸러낼 수 있는 이 ‘현지 경력’ 사항은 구인란에 드러나지 않지만 그들도 알고 우리도 아는 사실이다.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한 친구는 한국 대기업 (모두 호주에 진출한 회사라서 호주 고용주들도 쉽게 알 수 있는 회사들이었다)에서 회계업무 경력 5년 이상의 경력을 가졌고 미국 공인회계사와 미국 공인 재무분석사 자격증을 갖고 있었지만 취업하는데 1년이 걸렸다. 그것도 한 한국은행의 호주법인이란 사실! 

호주 시민권을 갖고 있지만 스페인에서 자란 엔지니어 친구는 스페인에서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계약직으로 전혀 다른 업무를 하다가 스페인에서 일했던 회사의 호주지사에 겨우 입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현지’ 경력을 강조하는 걸까? 우선 ‘영어’다. 현지 경력이 있다는 것은 업무수행에 필요한 언어능력을 갖췄다는 의미니까. 이민자와 유학생이 많다 보니 이런 ‘드러나지 않는’ 조건으로 지원자들을 걸러내는 것이다. 즉, 영미권 국가의 경력자는 ‘현지’ 조건에서 프리패스할 수 있는 셈. 


그다음은 조직 적응력. 각 나라마다 문화 차이가 있다 보니 조직문화 역시 다를 수밖에 없다. 호주 조직문화에 쉽게 적응할 수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위험을 감수하기보다는 시작부터 적응력이 어느 정도 검증된 지원자들만 2차 단계로 보내겠다는 속셈이다. 


게다가 대졸자를 구한다고 “Graduate”이란 타이틀을 구인란에 붙여놓고 1-2년의 경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구인광고가 가장 황당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런 구인광고를 내는 기업들은 대부분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들이었던 사실. 

올해 졸업생을 구하지만 직장경력은 있어서 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었으면 하는 이기적인 고용주들. 

대학시절 생활비만 벌지 말고 관련 업종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인턴쉽 하면서 경력을 쌓아라, 그래야 우리들하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관련 업종 회사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게 쉬울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내 주변에도 열정 페이 받고 무료로 일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대기업이나 글로벌 기업에서 하는 인턴쉽은 말 그대로 하늘에 별따기 수준이고. 대학원 시절 피지에서 유학 온 영어는 원어민 수준에 성적도 최상위였던 친구가 유일하게 대기업의 싱가포르 지사 인턴쉽을 거머쥐었다. 


졸업 당시 영주권이 없었던 나는 첫 번째 허들에서 이미 넘어지고 말았다. 6개월여의 구직활동에 지쳐갈 때쯤 한 달 동안 일할 계약직 데이터 관리자 (Data Administrator)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았다. 그렇게 첫 번째 허들을 돌아서 지나치고 두 번째 허들을 겨우 넘었다. 


운 좋게도 한 달은 두 달이 되고 포지션이 바뀌고 다시 팀과 포지션이 바뀌고 계약직 계약서는 정규직 계약서로 바뀌고 (물론 이 시기에 이미 영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회사와의 인연은 이어졌다. 


대학이나 대학원에서 인턴쉽이나 직장경력을 쌓지 못했다면, 영주권이 없더라도 이처럼 단기 계약직에 지원할 것을 권한다. 나의 경우와 같이 이런 기회가 취업의 물꼬를 열어주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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