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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오 Jun 07. 2019

Not Acceptable!

호주 직장 생활: 직장상사와 부하직원

한참 공감과 연민을 느끼며 ‘미생’을 재미있게 봤다. 사수가 부사수에게 혹은 직장상사가 부하직원에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장면들이 꽤 많이 나오지만, ‘한국 직장문화는 저런 거야?’라고 하며 그런 장면에 충격을 먹었냐고?

전혀! 내가 호주에서 태어나 어릴 적부터 자란 이민 1.5세, 2세도 아니고.

나 역시 드라마에서, 한국의 직장에서 볼만큼 보고 경험했던지라.


호주는 어떨까?

다른 직원들이 다 있는 곳에서 부하직원을 깐다?

아마 그 직장상사는 인사과와 미팅을 하게 될 확률이 매우 높다.

회사 건물 내 종종 붙어있는 만화 포스터에는 다른 직원들이 있는 사무실에서 부하직원에게 화를 내는 매니저의 모습과 1:1 미팅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직원의 태도나 성과에 대한 평가는 반드시 1:1 미팅으로 의논해야 한다는 지침을 보여주었다.


콘텐츠 개발 부서에 남아공에서 온 소문을 듣기로는 능력자 팀장이 새로 왔다. 그 팀장은 유일한 한국인 직장동료의 매니저이기도 했다. 내 책상에서 한국인 동료와 미팅 중이었다. 4시 50분쯤, 그녀의 노트북을 함께 보면서 의논 중이었는데 그녀의 팀장으로부터 메시지가 왔다. 요청했던 보고서는 준비가 됐는지. 하필이면 그 날 오후, 그가 필요한 보고서에 필요한 데이터가 저장된 시스템이 유지보수로 인해 셧다운 상태였다.


“So sorry. I can’t. The system is down and will be back tomorrow morning.”

(미안한데 할 수 없을 것 같아. 시스템이 다운되었는데 내일 아침에나 다시 작동할 것 같아.)

3초 후, 딱 한 단어가 메신저에 떴다. 그 어떤 매니저로부터 들어본 적 없는...


“Not acceptable!”

(용납할 수 없음!)


나는 너무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며 어떻게 이런 말을 하냐고 물었는데 오히려 그녀는 차분한 모습으로 짧은 한숨을 쉬었다.

“원래 그래요.”

이후 종종 만날 때면 그녀는 점점 말라 가는 얼굴로 옆팀으로 옮기고 싶다고 말했다.


몇 달이 지나고 그녀에게 술 한잔 하자는 메시지가 왔다. 가끔 저녁과 함께 반주를 먹었던지라 술이 당기는 날인가 보다 하고 회사 근처 펍으로 향했다.


곪았던 일이 터졌다.

3주 전쯤 그 팀장은 다른 직원이 모두 있는 사무실에서 한국인 동료에게 일을 이딴 식으로 하냐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단다. 며칠 후 이 사건을 눈앞에서 목격한 직원 중 한 명이 그만두며 미국 본사 인사과에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가 알고 듣고 목격한 모든 일들을.

‘저는 이런 팀에서 이런 매니저와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인사팀은 부랴부랴 급하게 퇴직한 사원과 그녀를 만났다.


그녀는 결국 그녀가 원한대로 옆팀으로 옮겨갔다. 퇴직한 사원은 퇴직금으로 1년의 연봉을 받았다 (해고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퇴사한 경우라서 사실 그녀는 퇴직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 팀장의 행동은 Not Acceptable!이라서 결국 회사에서 해고당하고 말았다...

라고 마무리하고 싶지만.

그 팀장은 여전히 같은 위치에서 감봉 없이 일한다. 적어도 내가 작년 10월 퇴사할 때까지 그녀에게 어떤 식의 처벌도 내려지지 않았다.


슬프게도 현실은 원칙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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