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서울숲 n 가을의 잠실
한국에서 거의 10년 만에 맞은 5월이었다. 호주의 5월은 곧 다가오는 겨울 때문인지 조금 쌀쌀맞았고 그래서 그리 좋아하지 않은 달이었다. 2019년 5월 서울은 참 포근했다. 아니, 포근하기보다는 뜨거웠다는 게 더 적절하지 않을까? 그런 5월 초 유치원이 사정상 문을 닫은 어느 하루, 하루 종일 유튜브 속으로 숨어버릴 것 같은 막내 조카를 꼬드겨 서울숲으로 소풍 가기로 했다. 운 좋게도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길래 대중교통이 아직 낯선 조카의 손을 잡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었다.
작은 뒷산 앞에 위치한 버스정류장은 바람에 흩날리는 민들레 씨로 가득했다.
그래, 4월의 벚꽃이 모두 흩어져 날아가버린 서울... 5월도 이렇게 낭만적이었다. 잊고 있었다.
흩날리는 민들레 씨를 처음 본 조카는 민들레 씨를 잡으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그런 조카를 보며 혹여나 찻길로 뛰어들까 봐 조마조마하며 조카를 지켜보았다.
서울숲 정원들도 민들레 씨앗 눈이 내렸다.
조카는 또 달렸다, 손에 잡히지 않는 민들레 씨앗을 향해.
오랜만에 예전 직장동료한테 연락이 왔다. 장지역 근처에 사는 그녀의 퇴근길엔 매일 잠실역이 있다. 우리 동네에 잠실역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는지라 지난번처럼 잠실에서 만나 송리단길에 가기로 약속을 정했다. 버스에서 내려 11번 출구로 향했는데 길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하늘을 향해 휴대폰을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플라밍고 빛 분홍색 하늘에 희미하게 무지개가 떴다.
무지개다, 무지개!
내가 마지막으로 본 무지개가 언제였더라?
그래, 2012년 크리스마스 때 즈음 태즈매니아에서 부모님과 함께 본 쌍무지개였다. 7년 만에 무지개가 돌아왔다.
저 무지개의 끝에 아무도 모르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상상들을 하고 있으려니 들키고 싶지 않다는 듯이 무지개는 어느새 사라져 버렸다.
직장동료에게 고마웠다. 덕분에 7년 만에 무지개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