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랑하라
속절없이 사랑에 빠졌던 여름, 처음으로 이별 여행을 떠났다.
그게 마지막이 될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거절할 수 없었다. 여행을 안 가도 이별은 왔을 테니까. 어차피 올 마지막이라면, 일상보다는 여행이 나았다. 매일 보는 곳에서의 끝맺음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바다는 아무것도 모르고 맑았다.
햇빛은 아무것도 모르고 밝았다.
사람은 다 알면서도 잔인했다.
시작을 하지 않았다면 나았을까
(그건 아니다)
너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았을까
(...)
수많은 경우의 수를 그려보았다.
이별의 순간까지 오게 된 많은 이유들을 찾아보았다
끝없는 자문자답이 이어졌다
생각해 보면 만남부터 잘못됐다. 내가 더 많이 좋아하는 건 상관없지만, 나만 좋아하면 안 됐다. 그건 시작부터 끝을 안고 가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들고 안달복달하다가 끝나버릴게 자명한 거니까.
(아니 날 사랑하지 않은 네 탓이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날 받아준 네 탓이다
살다 보면, 그런 날이 온다
다 알면서도 폭탄을 들고 싶어지는 날
그런, 사람을 만난다
터져 죽는 한이 있더라도
상처 입어 눈물 흘리는 밤을 맞이하더라도
한순간이라도 손잡고 같이 걷고 싶은 사람
아닌 건 아닌 거다
그 사람이 객관적으로 나쁜 남자라면 더 위험하다
태평양 같은 어장 속에서 헤엄치다가 애정결핍으로 아사할 수도 있다.
사랑은 한순간에 끝나버리고
아픔은 지긋지긋하게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말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사랑은 속절없는 것
다 알면서도 끝을 향해 걸어가는 것
겪어봐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는 것
한 번은 그래도 된다.
지난 여름날의 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