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양지에서 혼여를?

마요르카 여행 좋네

by 빨간 머리 앤

벨기에에서 와플로 마지막 아침 식사를 마치고 향한 5월의 마지막 여행지는 유럽의 대표적인 휴양지, 마요르카였다.

브뤼셀 와플도 먹어봤다!

벨기에에서 갑자기 마요르카행을 선택한 이유를 말하라면… 일주일 만에 집 가기에는 아쉬운데 가장 저렴한 항공편이 마요르카행 항공편이었고, 마요르카가 한국에서 가기는 어려운 곳이라는 말에 매료되었다. 그렇게 라이언에어의 세계 변두리 공항 찾기 능력에 감탄하며, 마요르카로 향했다.

마요르카에서 처음으로 향한 곳은 아주 멀고 외딴곳에 있는 고요한 해변가였다. 내로라하는 마요르카의 유명 해변들을 두고 멀리 간 이유는 첫째로 그냥 조용히 쉬고 싶었고 둘째로는 좀 좋은 숙소에 묵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관광지에서 멀수록 저렴한 법이다) 도시에 있으면 성격상 무조건 관광을 할 것 같아서 아예 먹고 눕기밖에 할 수 없는 외딴 해변으로 첫 행선지를 정했다.

꿈에서도 생각나던 스페인의 하몽! 다만 저녁 먹기 전이라 가볍게 마트 하몽으로 대신했다

그런 연유로 나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picafort 해변에 도착하게 되었다. 막상 와보니 구글 지도를 펼쳐놓고 대중교통 이동이 가능한지와 영어로 적힌 리뷰만 보고 결정했던 곳 치고는 정말 만족스러웠는데, 딱 내가 원했던 정도의 소란스러움과 자연경관을 갖춘 곳이었다.

그림자놀이..

하몽 샌드위치를 한 개 다 먹은 직후라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해변에서의 밤을 맥주 없이 보내기는 아쉬웠다. 그래서 근처에 보이는 식당 중 제일 덜 관광지스러워 보이는 곳으로 찾아 들어갔다. 주문하려고 보니 구글 리뷰에서 본 메뉴가 메뉴판에 없어서 당황했는데, 물어보니 특별히 해주겠다고 하셔서 야무진 한상이 완성되었다. 슈바인 학센 같던 저 메뉴는 아직도 왕왕 생각나는 메뉴다.

여름 유럽은 야경을 보긴 어렵지만 일출을 보기는 나쁘지 않다.

그라데이션 신체

4월 한 달간 지중해 자외선에 노출된 자의 최후

츄로스는 최고의 조식 메뉴

그렇게 일출을 보고 혼자 조식을 먹으러 왔다. 조식이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햇살이 들어오는 테라스 좌석에, 끼니가 될만한 음식들이 많아서 혼자 세 그릇 정도 먹어줬다.

하루 종일 휴식을 취하고 나니 갑자기 다시 관광이 하고 싶어 져서 갑자기 마요르카 시내로 향했다.

이곳은 마요르카의 모든 여행이 시작되는 마요르카 버스 터미널이다. 마요르카의 뚜벅이 여행자라면 어김없이 이곳에서 관광을 시작하게 된다. 이 버스 터미널만 있다면 웬만한 유명 관광지는 차 없이도 다 갈 수 있고 캐리어 및 짐 보관소도 있으니 뚜벅이 여행객에게 최고의 장소가 아닐 수 없다. (다만 다른 곳으로 떠나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나의 첫 행선지는 Port de Valldemossa

한 시간 남짓 달려가면 절벽의 도시라는 발데모사의 전경이 보이기 시작한다.

쇼팽이 머물며 작곡을 했던 도시로도 유명한 터라, 도시 곳곳에서 쇼팽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발데모사의 어느 골목

발데모사는 유럽 소도시의 향취가 물씬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여유롭게 노래를 들으며 거리를 즐길 수 있었다.

발데모사 구경을 마치고 소예르 항구로 가는 길. 이날 이동하는 내내 막 발매되었던 뉴진스의 Bubble Gum을 반복해서 들었는데, 그래서인지 한국에 온 지금도 bubble gum을 들으면 5월 중순의 마요르카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휴양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곳은 소예르 항구다.

지중해의 여름

소예르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내가 상상했던 여름 유럽의 풍경이 펼쳐졌다.

소예르를 상징하는 붉은 트램은 도시 어디에든 있다.

다만 나는 인파를 싫어하는 지라 사람들을 피해 조용한 골목길로 올라갔다.

소예르는 골목 구석구석이 다 아름답다.
골목에서 내려다보이는 소예르의 전경

소란스럽던 해안가와 달리 골목 위의 전망대는 고요했다. 그러나 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은 격정적이었다.

혼여러가 흔적을 남기는 방식 jpg

고요한 전망대는 마요르카에서의 생각을 정리하기에 적절했다. 그리고 충분히 시간이 지났을 때즈음, 다시 도시 중심부로 돌아가기 위해 광장으로 내려갔다.

버스를 타고 소예르 항구와 발데모사로 여행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다만 한 가지 어려움을 꼽자면 배차 간격이 좋지 못하다는 점이다. 팔마로 향하는 버스의 배차 간격은 약 1시간 10분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도착할 때부터 언제쯤 이 도시를 떠날지 정해두고 움직이는 편이 좋다.

버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그렇게 한참을 돌아 다시 내가 출발했던 도시, 팔마로 돌아왔다.

팔마 시내는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래서 팔마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전 주어진 반나절의 시간 동안 팔마 시내를 구경하기로 했다. 처음으로 방문한 곳은 팔마 대성당이었다. 너무 많은 성당을 봐서 질린 시점이었음에도 웅장한 성당의 전경이 인상적이었다. "대성당"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규모였달까.

보카디요와 함께하는 팔마 마지막 일정

대성당을 구경하고 난 뒤에도 여전히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다. 새벽 비행이라 이 밤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마지막으로 제대로 된 보카디요를 한 번 더 먹으며 팔마에서의 밤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천천히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며 이번 여행에서 느꼈던 점들을 정리했다. 이 여행을 시작하기 전, 휴양지에서의 혼여는 무서움의 대상이었다. 특히 마요르카는 렌터카가 없으면 이동이 어려운 여행지라기에 더욱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예상했던 것과 달리 마요르카에서의 이동과 휴양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

혼자였기에 마요르카의 유명 해변을 보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여유를 즐길 수 있었고 그때그때 이끌리는 곳으로 발걸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마요르카의 어느 외딴 해변에서의 하루는 그 어떤 유명한 해변에서의 하루보다도 기억에 남는다.

동남아시아같은 야자수 나무

정말 아름다웠던 팔마 대성당의 야경. 휴양지라서 조심스럽게 야경 감상을 도전해 봤는데, 대성당은 괜찮았지만 역시 귀갓길은 좋지 못했다. (혼여를 할 때에는 야경 욕심을 좀 내려놓는 편이 좋다)

벨기에 여행을 마칠 때즈음 나는 혼자서 하는 여행에 약간 지쳐있었다. 그래서 몇 번이나 계획했던 스페인이 아닌 리즈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막상 도착한 마요르카는 내 예상보다도 훨씬 매력적이었고, 혼자만의 휴양 여행 역시 그랬다.

여행을 마치며 세상에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만약 내가 지레짐작으로 벨기에에서 여행을 끝마쳤더라면, 나는 결코 마요르카의 아름다움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많은 것들을 사고 실험에서 그쳤던 지난 날의 회고함과 동시에 결국 이 공간에 있게 했던 것도 나임을 상기하며 5월의 여행기를 끝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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