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에서
크로아티아는 유럽 생활을 시작한 이후에 새롭게 알게 된 여행지였다. 목표했던 여행지가 아닌 새로운 여행지였던 만큼, 크로아티아에 대한 내 기대는 상당했다.
크로아티아 여행이 시작된 시점은 참 적절했다. 2주 넘게 이어진 동행들과의 여행이 슬슬 질리고 혼자만의 시간이 그리워지던 시점에 크로아티아 행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밀라노로 돌아간다는 일행과 아쉬우면서도 즐거운 이별을 한 뒤, 마침내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로 향했다.
늘 그렇듯 언질도 없이 연착한 Flixbus 덕분에 자그레브에는 예상보다 2시간 늦어진 오후 3시에 도착하게 되었다. 자그레브는 적당히 쉬어가기 위해 고른 여행지였다. 원래는 자그레브에 더 오래 머무르면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까지 방문하고자 하였으나 두브로브니크에서 일정을 여유롭게 즐기고 싶어 자그레브에는 하루만 머무르고 이동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자그레브에서의 일정이 여유로웠으므로 오랜만에 카페에서 밀린 다이어리를 작성하기로 마음먹었다. 혼자서 여행을 다닐 때 의식적으로 하는 행위 중 하나는 다이어리 작성인데, 내가 느끼는 그 순간의 감정들을 포착해서 기록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동행이 있는 여행지에서는 그만큼 오랜 기간 다이어리 작성에 시간을 할애할 수 없기에 동행이 없을 때 더 열심히 작성하려고 노력하곤 한다. 이날 내가 들러서 일기를 썼던 카페는 chiacups shops & cafe 인데,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방문을 추천한다.
짧게나마 자그레브에 머무는 동안 크로아티아의 국민빵이라는 부렉에 도전했다. 국민빵집 두브라비차에서 판매하는 부렉은 짭짤한 치즈와 바삭한 페이스트리가 꽤 인상적인 빵이었다. (돌이켜보니 이런 걸 맨날 간식으로 먹어서 유럽 여행 후 포동포동해졌구나 싶다)
그렇게 수백 번 즈음 본 듯한 성당과 광장을 지나 마침내 스카이스캐너에서만 보던 성 마르코 성당의 실물을 마주했다.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가, 성 마르코 성당의 전경은 꽤나 평범했다. 실물로 보니 소원은 풀었다 싶은 정도였다고나 할까.
관광을 마치고 난 뒤, 자그레브에서의 남은 시간은 공원에 누워서 보내기로 했다. 누워있는 동안 나는 자그레브에서의 여행을 곱씹었다. 오늘의 나는 자그레브에서 무엇을 했던가. 나는 왜 자그레브까지 와서 폴리트비체 국립공원에 가고 싶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그레브를 오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크로아티아 여행을 할 때 즈음, 나는 ‘여행지’보다 삶의 공간으로서의 도시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여행객들이 방문하는 완벽하게 조성된 관광도시에서의 하루보다는 생활감이 느껴지는 수도에서의 하루가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자그레브를 선택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조성되지 않은 날 것의 크로아티아가 보고 싶어서. 그리고 그곳에서의 '삶'은 어떤 형태인지를 알고 싶었기에.
물론 여행 초반의 나였다면 결코 이런 감정들을 즐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유럽 여행을 시작했던 시기에 나는 일종의 성장 강박증에 빠져있었다. 이 여행을 통해 반드시 많은 것을 배우고 성장해야만 한다고 느꼈다고나 할까. 원체 새로운 것을 알아가기를 즐기는 성격이었기에 문제가 될까 싶었으나 알아가기를 즐기는 것과 알아가야만 한다는 감정은 완전히 달랐다. 여행의 원동력이었던 호기심이 압박감으로 다가온 순간 여행은 일종의 과업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그러나 누적된 여행을 통해서 여행의 의미가 반드시 무언가를 '알아감'에 있는 것은 아님을 차츰 깨닫기 시작했다.
관광을 위해 조성된 두브로브니크가 아닌 수도 자그레브에서의 여행은 그래서 재미있었다. 여행객과 현지인 사이의 애매한 마음가짐으로 자그레브를 여행하며, 두브로브니크만 여행했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생활공간으로서의 크로아티아를 볼 수 있었다. 자그레브는 어떤 도시냐고 묻느냐면 여전히 대답하기 어렵지만,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그 공원에서의 시간들이 즐거웠냐고 묻는다면 기꺼이 그러했다고 대답할 것이다. 이는 이름이 명명된 건축물들을 하나라도 더 감상하고, 최대한 많은 전통 음식을 먹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지난 여행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었다만 한편으로 그렇게 열심히 여행한 시간들이 없었다면 알지 못했을 감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