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브로브니크가 아드리아해의 보석이라고?
자그레브에서 타고 온 새벽 버스가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한 것은 오전 7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두브로브니크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까지 걸어서 30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았기에 시내까지는 걸어서 가기로 결정했다.
예상보다 일찍 두브로브니크에 도착한 터라 식사부터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다만 내가 가려고 했던 식당들은 문을 열지 않아서 근처 마트에서 끼니를 때우기로 했다.
두브로브니크 여행을 시작했을 때, 나는 한 가지 대단한 착각에 빠져있었다. 그 착각이란 나의 여행이 어떤 상황에서든 지금까지처럼 즐겁게만 흘러갈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그러나 두브로브니크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많은 여행지였다. 첫 번째는 찌는 듯한 날씨였다.
두브로브니크 여행을 시작한 시점은 이미 40도의 아테네를 거친 뒤였던지라 날씨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간과했던 것은 아테네에 있는 시간보다 두브로브니크에 머무는 시간이 훨씬 길다는 점이었다.
게다가 두브로브니크의 관광지들은 대부분 (사실 전부 다) 야외에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성벽투어인데, 성벽 투어는 야외에서 진행될 뿐만 아니라 약 2km 정도의 길이를 중도 하차 없이 완주해야 하는 시스템이다. 아침에 출발하면 덜하지 않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오전 8시의 두브로브니크 기온은 이미 33도였다.
크로아티아를 방문했던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원래 이렇게까지 날씨가 덥지는 않았다고 하는데,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 더운 날씨에 차라도 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두브로브니크는 대중교통 인프라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일단 버스밖에 없고 구글맵에 버스 노선에 대산 정보가 전무하다. 정류장에 커다랗게 붙어 있는 시간표와 노선도를 보고 대충 알아서(?) 다녀야 하는 시스템. 여행이 끝나갈 때 즈음 두브로브니크만의 버스 애플리케이션이 있다는 말도 들었는데, 정확히 모르겠어서 그냥 몇 개 노선을 외운 뒤 그것만 이용했다.
체계 없는 버스 시스템 덕분에 힘들었던 일화를 하나 남겨보려 한다.
그날은 일몰을 보기 위해 스르지 산 전망대에 가는 날이었다. 그날 일몰이 예정 시각은 8시 20분이었기에 7시 정도까지 스르지 산에 도착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6시에 스르지 산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로 했다. 6시로 적혀있었지만 실시간 현황을 알 수 없어 불안한 마음에 일찍부터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고 40분이 훌쩍 지나, 이제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 같이 의문을 가지기 시작할 때 즈음 마침내 버스가 도착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예정 시간보다 1시간가량 늦게 정류장에 도착하게 되었고, 스르지산에 도착하고 나니 이미 8시가 다 되어갔다.
일이 꼬인 건 이때부터였다.
스르지산 아래의 정류장에서 시내로 가는 마지막 버스는 8시 20분 정도에 있었는데, 전망대가 있는 위치에서 정류장까지는 걸어서 2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미뤄진 버스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정류장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시내로 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여러 고민 끝에 귀가는 버스 대신 도보로 하기로 결정했다. 여기까지 오자마자 내려가는 것이 너무 아쉽기도 하고, 구글맵 상 시내까지 50분이면 내려갈 수 있다고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산을 시작한 것은 8시 30분 정도가 되었을 시점이었다. 슬슬 해가 넘어가고 있었으므로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을 서둘렀다. 문제는 구글 맵 상의 길이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길이었다는 데 있었다. 구글맵 상으로 분명 나는 20분 만에 산이 아닌 지상에 있었어야 했는데, 30분이 훌쩍 지나도록 나는 여전히 산 위에 있었다. 시작한 이상 중간에 택시를 부를 수도 없고, 또 매몰비용에 대한 오기가 생겨서 그렇게 한참을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던 중 갑자기 차를 태워주겠다는 한 남자를 만났다.
내가 혼자만의 여행기를 쓰고 있으니 대범한 사람이라고 오해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사실 혼자만의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지 용기가 많은 사람은 아니다. 용기와 무모함이 한 끝 차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래서 만약 평소였다면 절대 그 차에 올라타지 않았을 것이다. 도로 한가운데에서 네가 너무 위험해 보여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남자는 너무 수상하지 않은가. 다행히 그 사람은 친절하고 유쾌한 친구였고, 덕분에 크로아티아 소개를 받으며 편하게 두브로브니크 시내로 내려올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도대체 무슨 정신으로 그 길을 걸어내려 가겠다는 결정을 내렸는지 궁금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10시를 향해 가는 시간에 동양인 여자 혼자, 그것도 산골짜기의 차도를 걸어가는 것은 그리 합리적인 선택은 아니었는데. 거기서 차를 타는 것 역시. 그때는 여차하면 그냥 문 열고 뛰어내리자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친구한테 말해보니 그 사람이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어차피 뛰어내리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두브로브니크 여행이 힘들었던 두 번째 이유는 예상을 훨씬 웃도는 물가였다. 물론 영국이나 스위스 같은 국가들에 비하면 절대 비싸지 않지만, 크로아티아 여행 예산을 동유럽 물가 기준으로 집행했던지라 두브로브니크에서의 삶은 자연스레 궁핍해질 수밖에 없었다. (크로아티아 동유럽이자나.. 왜 다른 거야)
덕분에 두브로브니크에서의 주식이 된 샌드위치. 가격도 저렴한데 토스트처럼 겉을 구워줘서 맛도 상당하다.
사실 샌드위치만 먹었던 데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바로 두브로브니크에는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크게 없었다는 사실이다. 블랙 리조또나 해산물 음식이 유명하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미각으로는) 관광지 음식 수준이었다.
음식만큼이나 음료 가격 역시 비싸다.
여름의 두브로브니크는 워낙 덥기 때문에 조금만 여행해도 쉽게 갈증이 나곤 한다. 특히 성벽투어를 하던 날은 정말 쓰러질 것 같았던지라 나는 가격이 얼마든지 반드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굳센 다짐에도 불구하고 8유로라는 가격을 보고는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관광지를 조금만 벗어나면 가격대가 확 낮아진다. 특히 물과 음료는 절반 수준인데, 다만 그 시간을 인내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도 그 골목들과 화려한 해안의 매력 때문에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는 것이겠지.
두브로브니크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날의 밤 풍경을 끝으로, 두브로브니크 여행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가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