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애도의 시간을 건너기
<<H마트에서 울다>>을 읽고
여름에 오이지를 보면 엄마가 떠오른다. 오이지를 유난히 좋아하셨던 엄마는 여름마다 배불뚝기 항아리에 오이지를 담갔다. 한 접씩 두어 번은 담그시는 것 같았다. 꼬옥 짜야 아삭거린다고 망에 오이지를 넣고 돌로 누르던 모습까지 절로 떠오른다. 내가 엄마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방식이 오이지뿐인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H마트에서 울다>>에 미셀도 엄마를 음식으로 떠올리고 그리워했다. 미국 뮤지션인 그녀는 한인 가게인 H마트에 가면 엄마를 떠올리고 울었다. 링으로 된 짱구 과자를 열 손가락에 끼고 흔들며 웃던 모습, 냉동 만두피, 김치, 김 등 그 모든 음식이 엄마를 소환하는 물건이 된다.
미셀의 엄마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랐다. 미국인 아버지와 결혼으로 한국을 떠나 미국에 정착하고,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미셀은 “엄마 없이는 잠도 못 자던 아이를 손끝이 닿는 것조차 못 견뎌하는 10대”(p66)가 된다. 외모와 문화가 달라서 겪는 정체성 혼란, 음악을 향해 가는 순타하지 않은 과정, 서로 다른 성향의 기질로 갈등으로 모녀는 힘든 시간을 보낸다.
엄마와 갈등으로 집에서 가장 먼 곳으로 미셀은 떠났지만 엄마는 늘 딸을 챙겼다. 매달 햇반이나 김을 보내고, 딸이 집에 온다면 이틀 전부터 갈비를 재우고, ‘먹을 때 적당히 알싸한 맛이 나도록” (p122) 총각김치의 숙성해서 준비해주었다. 딸도 엄마 음식을 먹으면 “밥 자체로도 경이로운 재회”(p123)가 되었다. 서로를 이해와 화해의 시간 보다 엄마의 죽음이 먼저 찾아왔다.
엄마 죽음 이후, 미셀은 자신을 돌보는 방식으로 ‘한국 음식을 만들기’를 택했다. 외가 식구들과 먹던 음식, 투병 생활 동안 음식이 받지 않아 힘든 엄마가 먹을 수 있었던 죽 등 엄마와 만들거나 사 먹었던 음식을 만들었다. 엄마와 다시 연결을 꿈꾸며 음식을 만들고, 사람들과 나누어 먹으며 스스로 위로와 치유가 되었다.
나도 그랬다. 우리 엄마도 사람이 모인다고 하면 ‘무슨 음식을 할까’라는 생각부터 고민하던 분이다. 나 역시 가족이 모인다면 뭘 해줄지 생각한다. 나와 엄마는 살갑게 대화하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음식 이야기만큼은 자연스러웠다. 어리석게도 나는 엄마를 위한다고, 또 엄마와 너무 다른 기질 탓에 내 삶에 힘듦을 꺼내놓지 못했다. 그래서 말보다 음식이 우리 모녀의 언어였는지도 모르겠다.
미셀과 그녀의 엄마는 문화도, 기질도 달랐다. 그 간극이 커서 더 힘들었다. 음식은 그들 모녀가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다리였다. 나에게도 미셀에게도 음식은 엄마를 떠올리고, 수용하면서 그리움과 화해를 건너는 방식이 된 셈이다.
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 음식을 그녀가 아주 다르게 묘사하는 부분이다. 탕수육 소스를 “반들반들하고 끈적끈적한 불투명 오렌지 빛”, 치킨 무를 “큐브 모양의 시원한 무 피클”, 물김치는’장미 빛 소금물‘, 누룽지 끓인 죽을 “규리 죽” 같다고 서술한다. 낯선 언어로 익숙한 풍경을 읽는 사이 상실과 애도의 기억은 더 밀도 있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