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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하는 콧날 Dec 13. 2017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의 기록 #3

동행을 만나다.

네팔에서의 또 새 아침이 밝았다. k 대생은 아침 일찍 abc로 떠났다. 아 나와 주따거 k대생은 같은 도미토리룸을 썼다. 

그때는 참 오늘은 무엇을 해야 하나 하고 잠에서 깨어난 듯. 나는 여행이 장기화되면서 조금은 게을러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게으름 또한 여행의 묘미인 듯하다. 여기서 여담으로 여행과 계획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처음 세계여행 원래 여행 떠날 때 생각은 아시아를 넘어 다른 대륙까지 여행하는 것이었다. 음.. 그러진 못했네 계획은 계획일 뿐.... 여행을 준비하면서 이 "계획"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다녔던 블로거들은 너무 철저한 계획을 세웠고, 나도 이렇게 많은 준비와 계획을 해야 하만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따라다녔다. 그러한 고민이 따랐는데 지금은 좀 더 확고하게 "여행에 있어 너무 많은 계획과 준비는 필요 없다."가 여행 후 내가 내린 결론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여행조차 조금 과장하면 회사 프로젝트하듯이 계획을 하고 실행해 옮긴다. 나도 여행 초기에는 정말 바쁘게 다녔다. 새로운 도시에서 1박만 하고 다음날 나이트 버스로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베트남에서 만난 칠레 누님은 내가 이렇게 다녔다고 하니 "CRAZY BOY"라고 나에게 말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항상 바쁘다. 여유가 없다. 짧은 시간, 들인 돈만큼 많은 것을 보고 많을 일정을 끼워놓고, 그리고 자랑하는 것 그것이 지금의 많은 한국인들의 여행 스타일인 것 같다. 나 또한 배낭여행 전에 그랬고 안타까웠다.  그 뒤로 천천히 여행했다. 게으름을 피웠고 조바심을 내지 않았다. 크게 이동할 국가 정도만 생각하고 움직였다. 돌아보니 유럽 친구들 다른 나라 친구들은 여행하며 별거하지 않더라. 조용한 카페에서 하루 종일 책을 읽기도 하고 여유로이 낮잠을 청하기도 했다.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과 그들은 달랐다. 나는 여행을 하며 대한민국 사람들은 여행조차 "치열"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느끼게 되었다. 하루에 하나라도 더 많은 곳을 봐야 하고 더 많고 예쁜 곳에서 셀카를 찍어서 SNS에 업로드하는 것, 이게 과연 여행일까? 물론 계획도 중요하다. 하지만 너무 열심히 짤 필요는 없다. 어차피 그곳에 가면 다음 행선지가 눈에 들어오고 다음 곳에 가면 실타래처럼 얽혀있던 것들이 어느새 정리된다.


계획보다 그곳에 간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곳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되어 내가 좋아하는 김어준 님의 말을 인용하고 싶다."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하면 된다. 그런데 대다수의 사람들은 계획부터 세운다. 그리고 나선 주변 사람들에게 이 계획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 가를 설명한다. 그리고 결국 그 계획을 포기하게 된다."


일어나서 빈 둥 거리다 주따거 형님과 브런치, 아점을 먹기로하였다. 네팔짱 말고 다른 식당을 가기로 하였는데 그곳이 축제였다. 축제는 네팔인 사장님이신 걸리안 사장님이 운영하는 한식당인데, 사장님은 외국인 근로자로 서울 가락시장에서 14년 동안 일하셨다고 했다. 한국에서 고생 고생하여 모은 돈으로 네팔 카트만두에 축제를 차리셨다.

축제는 카트만두를 찾는 한국인들에게 굉장히 유명한 식당이다. 간단한 트레킹 장비 대여부터 버스 예약, 환전(후하게 환전해주심) 포터 소개 등은 한국인들에게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신다.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사장님이 한국어에 능통하다는 것 또한 큰 장점이다. 무엇보다 굉장히 친절하시다. 그리고 몇 년 전 네팔 대지진 때 불안해하는 한국인 관광객들은 최선을 다해 도왔다고 들었다. 네팔 카트만두를 찾는 한국인이라면 꼭 한 번 거쳐가는 명소이다. 


<네팔 카트만두 가실 분은 축제에 꼭 이용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축제에 대해 잘 설명해주신 블로거님의 글을 링크한다.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arado1218&logNo=220507841036


주따거와 두루치기와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던 중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분은 나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까지 동행한 진 감독님이었다. 남자들끼리 운명이라 표현하긴 그렇지만 아무튼 운명처럼 만났다. 왜냐면 전혀 생각도 안 했던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ebc코스를 가게 되었으니까. 나는 진 감독님을 만나기 전까지 안나푸르나 서킷을 할 생각이었으니까.


진 감독님은 네팔을 정말 정말 사랑하는 분 이셨다. 네팔에 와서 트레킹 한 횟수만 30번이 넘고 거의 매년 와서 트레킹을 하고 가신다고 하셨다. 네팔 대지진 후 관광객이 끊기자 네팔이 트레킹 하기 안전한 나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몇 년 전에 안나푸르나 5000m 이상 고지에서 그랜드 피아노를 갔다 놓고 피아노 공연을 하셨다고 했다. 대단한 분이셨다. 역시 넓은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 


한참 진 감도님에게 히말라야 고지에서 했던 공연에 대해 설명 듣던 중 진 감독님도 다음 공연 답사를 위해 트레킹을 할 거라고 했다. 안나푸르나 서킷을 할지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갈지 생각 중이라고 하셨다. 나도 트레킹을 목적으로 네팔에 왔다고 하니 자연스레 동행 이야기가 나왔다. 그리고 나에게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하셨다. 역시 나는 운이 좋다. 그때 나는 네팔을 잘 아시고 네팔에서 트레킹을 30회 이상 하셨고, 네팔에서 공연감독을 하셨던 한국 분에게 동행을 제안받고 있는 것이었다. 과연 네팔에 처음 온 트레커가 그런 큰 행운을 잡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니 어떻게 보면 행운이 아닐 수도 있지만 지금 과거를 돌이켜보니 행운이었다. 


내가 가려했던 안나푸르나 서킷이 아니라 30초 정도 생각했지만 가겠다고 했다. 원래 가려던 곳과 달랐지만 이 기회를 놓치긴 아까웠다. 진 감독님은 포터도 한 명 고용할 거라고 하셨는데 저도 비용을 내겠다고 했지만 괜찮다고 포터가 비용은 감독님이 내신다고 나는 내 짐만 짊어지면 괜찮다고 하셨다. 잘만 따라오면 된다고 하셨다.  나는 이렇게 베테랑 트레킹 경력자 분과 동행을 하게 되었다. 운이 좋았다. 여행 떠나기 전 한국에서는 항상 운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여행에서는 운이 분에 넘치게 흘렀다. 좋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 그래서일까 희망을 다시 찾은 느낌이었다.  

트레킹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식당 밖 거리에서 시끌벅쩍한 소리가 들려왔다. 결혼식 퍼레이드 같은 것이 열리고 있었다. 이곳 네팔에서도 결혼은 아주 성대한 행사인가 보다. 한국의 문화와 조금씩은 다르겠지만 라오스에서도 결혼식을 보았는데 한국의 결혼식보다 다들 흥이 넘쳐 보였다. 그렇게 삶과 삶이 합쳐 세상은 계속 이어지고 한걸은 한걸음 나아가게 된다.   

왕의 요구르트 주주더히 !! 축제에 주문하면 직원이 오토바이 타고 가서 사다 준다. 관광객들에게는 요금을 더 받기 때문에 그렇게 주문을 받는 것 같기도 아무튼 맛이었다. 그냥 한국에 파는 요구르트아줌마 표 요구르트라고 생각했는데 양이 엄청 많았다. 주따거와 두루치기에 된장찌개 배터지게 먹고 후식으로 시킨 거였는데 메인 요리만큼의 양을 자랑한다. 

맛있었지만 배가 불러 꾸역꾸역 먹었다. 하지만 주주더히는  맛있었다. 새로운 맛이 었지. 네팔 가면 꼭 먹어 보시길.!!


트레킹 이야기를 나누던 중 새로운 인물 왕사장님이 등장했다. 왕사장님은 주로 한국에서 에베레스트 등정팀을 위해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현지 업체 사장님이셨다. 진 감독님이 안나푸르나 높은 고지에서 피아노 공연을 할 때 인연을 다앟다고 설명했다. 두 분이서 이런저런 일 이야기를 나누고 계시다 진 감독님이 작년 피아노 공연에 사용되었던 그랜드 피아노를 확인하러 간다고 하셨고 나도 왕사장님 사무실에 퍼밋(입산 허가증) 등을 신청을 위한 서류를 작성하러 동행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내가 직장 다니다 그만두고 아시아를 여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국의 사정이나 젊은이들의 문제에 대해 걱정해주셨다. 나는 여행을 다니면서 나보다 10살 이상 차이나는 한국 어른들과 많이 동행을 했었다. 아무래도 어른들께서는 한참 나이에 유랑하는 나에게 조금은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셨다. 물론 대부분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나를 응원해주셨고 따뜻하게 대해 주셨다. 지금도 그 온기가 고맙고 정이 고마웠다. 우리 문화의 장점 중 하나가 후배들 동생들에게 밥 사주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앞서서 세상에 많은 고난을 겪어본 선배로서 앞으로 후배들이 겪어갈 고생스러운 길에 따뜻한 밥 한 끼 사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물론 미친놈들, 나이를 똥꾸멍으로 처먹은 놈들이 아들 같아서 그랬네 딸 같아서 그랬네 미친놈들도 있지만....  


나도 여행길 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그렇게 받은 도움과 온정은 길 위에서 저도 후배들에게 갚겠습니다. " 여행을 하면서 이런 것들이 길바닥 에티켓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 나는 참 길바닥 위에서 참 많은 것들을 배웠다.

왕사장님 회사에 보관되어있던 안나푸르나 5000미터 고지까지 올라갔던 귀한 피아노!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었다. 오랜만에 작년 내 모습을 보게 되니 좋구나!


회사에서 차 한잔 얻어먹고 내 여권 사본 등 기본 서류를 냈다. 원래는 네팔 관공서에 가서 신청을 해야 하는데 왕사장님 회사에서 하니 아주 편했다. 어제까지 동행을 구하지 못해 기약하지 못했던 네팔 트레킹은 이렇게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역시 사람일은 모를 일이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위해 대부분 카트만두 공항에서 국제선을 타고 루크라에 간다. 우리도 비행기를 이용하기로 했는데 내일 여행사 직원들이 숙소로 찾아아와 카드결제를 하기로 했다. 진 감독님이 루크라 공항은 아주 악명 높은 공항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왜 그런지는 후에 설명!


이런저런 일을 끝내고 왕사장님 회사에서 타멜 거리로 돌아왔다. 저녁은 네팔 짱에 머무르는 한국분들과 진 감독님과 저녁식사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웬걸 나에게도 그분이 오시고 있었다. 여행을 하며 참 아픈 적이 없었는데 물갈이인지 배가 너무 아팠다. 나의 장과 엉덩 에이는 폭풍 이치고 있었다. 천둥번개 돌풍을 동반했다. 네팔과 인도에 가면 다들 겪는 통과의례라고 듣긴 들었지만 나에게도 올지 몰랐다. 그렇게 몸은 으슬 을슬 추웠고 저녁은 어떻게 입에 들어갔는지도 모르게 되었고 화장실은 계속 가게 되었다. 


나는 과연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 트레킹에 성공할 수 있으려나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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