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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같은, 여자 아닌

나 이제 여자 아니야!

by 블루랜턴

아침 식전에 컥! 하고 헛기침이 나왔다. 남편이 대뜸 '뭔 기침소리가 그래, 남자같이 걸걸하니.'


-아침이라 그렇지. 그리고 나 이제 여자 아니야.


나이 60이 넘고 나서는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작정한 것은 아니다. 몸이 노화되면서 오랫동안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굳어져 내려온 여성성을 지키는 것이 부담스럽게 다가오고, 그것이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닌 거 같고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몸의 변화는 생리적인 것에서부터 흐트러졌다.

항문 괄약근이 노화되면서 방귀가 술술 나온다. 순식간이다. 내 의지 하나로 막아내던 것이 언제부턴가 의자의 힘에 기대야 했고, 남편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참는 것도 점점 힘겨워졌다. 의식도 하기 전에 방귀가 먼저 알아서 나와버린다. 처음엔 -어머! 실수야, 죄라도 지은 듯 애쓰며 넘겼지만 이젠 어쩔 수 없다는 심정으로 놔버렸다.


나 이제 여자 아니야! 그냥 사람이야, 선언하며 나의 늙은 몸에게 노화에 대한 면책을 주었고, 나이 먹는 남편도 이해하는 듯 별 말이 없었다. 불과 한 달 전이다. 그렇게 대놓고 여성성을 놓은 것은.


외형적인 변화는 더 드러났다.

얼굴과 목에 주름이 늘고, 근육도 탄력을 잃어 예전의 형태는 간데없다. 짧은 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바지라도 입으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아무리 꽃무늬 밝은 색 옷을 입어도 여성의 부드러움은 찾기 어렵다.


생각의 변화는, 결혼에 대한 의무를 다 했다는 각성으로부터였다.

여성으로서 남성과 결혼해 자녀를 낳았으니, 종족보존의 본능적 의무는 벌써 마쳤고, 모성으로 키웠으니 어미로서의 의무도 다한 셈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여전히 쓸데없는 여성성의 끄나풀을 움켜쥐고 있는 것에 의미를 잃었다.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진다.


페미 위키에 의하면 여성성이란,

여성의 특성으로 간주되어 온 소위 '여성다움'을 말한다. 이는 여자로서의 선천적 본성이 아니라, 사회와 문화적 기제들에 의해 규정된 것이며, 생물학적 여성의 정의와 전혀 다르다.


가부장제에서 만들어진 '여성성'은 수동성, 연약함, 상냥함, 친절함, 내성적, 포용적, 모성적, 유혹적, 성적 등이다. 이와 달리 현대적 개념에서 규정된 '여성성'의 의미는 상냥함, 공감 능력, 예민함이라 한다.


나는 수동성, 연약함, 모성적, 유혹적, 성적, 순종적인, 만들어진 여성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나의 타고난 본성의 인간으로 살고자 한다. 남자 같은, 여자 아닌, '사람'으로. 남자냐 여자냐 하는 것이 내겐 더 이상 의미롭지 않다. 나는 선천적으로 예민하고, 여전히 상냥하며, 공감력이 뛰어나다. 이것은 나의 여성성이 아니라 인간성이다.


연로한 노부부를 보면 어느 쪽이 남자고, 어느 쪽이 여자인지 모를 정도로 얼굴과 목소리가 닮아 있다. 그들에게서 여성성과 남성성은 드러나지 않으며, 보인다 해도 무의미하다. 그래서일까? 둘은 그냥 같이 사는, 사람 친구 같다.


우리 부부도 이렇게 늙으면서 그렇게 되나 보다.





Photo by Danie Franc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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