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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Aug 09. 2024

열대야 때문에 모텔에서 잔 이야기

참을 수 없었던 그날의 열대야


열대야의 기준은 밤중에도 최저기온이 25도가 넘을 때라고 한다. 

 

섭씨 34~5도를 넘나들며 무지막지하게 더운 지금과 달리 20년 전 여름은 견딜만했었다. 그러나 그날은 몇십 년 만의 더위라며 그간의 기록을 갈아치웠고, 낮의 후끈한 열기가 밤까지 이어졌던 날이었다.


하필이면 그날, 오랜만에 아이 셋을 데리고 남편과 함께 친정 나들이를 했었나 보다. 속초에서 올라왔으니 에어컨 바람 시원한 차 안에서 낮동안을 보냈으므로 밤이 그렇게까지 더울 줄은 미처 몰랐다. 찜통 속 같은 집 안에서 자는 둥 마는 둥 늦게까지 잠을 설치다가 결국 아이들 둘러업고 한밤중에 모텔로 내뺀, 그야말로 후덥지근한 이야기다.


친정집은 화장실이 밖에 있는, 지금은 민속촌에나 있을 만한 재래식 주택이었다. 2층과 문간방이 있고 규모를 갖춘 단독주택이지만, 집 안에 화장실과 목욕탕이 없는 것이 흠이었다. 볼 일 보는 일과 씻는 일이 영 번거로울 수밖에 없었을 텐데 그래도 결혼 전까지는 주욱 익숙한 채로 그러려니 지냈던 곳이다. 그 시절의 주택들은 대개 화장실이 밖에 있는 형식이었는데 점차 시대에 맞게 개조하여 화장실과 욕실을 집 안으로 들여놓았다. 불운하게도 나의 친정은 단 한 번의 개조 없이 시대를 넘기고 있었다.


열대야를 말하는데 화장실 얘기가 왜 나올까?


그만큼 오래된 집이고, 오래된 집답게 여름에 덥고 겨울에는 웃풍 때문에 추웠다. 방마다 창문이 있고 마루에도 커다란 창문이 마당을 향해 있었지만, 평소 피해의식이 심했던 엄마는 아무리 더워도 창문을 절대 열어놓지 않았다. 오로지 선풍기 하나에 의지한 채 무더운 여름을 지냈던 집이었는데 글쎄, 결혼 후 집을 나와 살면서 나의 뇌는 그 기다란 기억을 고 짧은 몇 년 사이에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한 낮을 지나 늦은 오후에 친정에 도착했고 어찌어찌 그럭저럭 나머지 낮시간을 보내고 밤이 되었다. 이제 자야 하는데 가만히 있어도 숨이 막히고 땀이 송송 나는 것이 낮보다 더 더웠다. 하루 종일 돌아가던 선풍기에서는 더운 바람만 나오고, 창문은 막아놨으니 열 수도 없는 좁은 방에서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잠이 들었다. 남편은 덥다는 말도 못 하고 끙끙거리며 애써 자는 척하고 있지만, 나는 누워 자기는커녕 앉은 상태에서도 숨을 못 쉴 지경이었다. 그때가 아마 밤 열한 시쯤이었을까. 내 입에서 결국 초라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우리 모텔에 가서 자자. 


남편이 아무 말 없이 일어나더니 옷을 입기 시작했다. 나도 말없이 물건을 챙겨 가방에 담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밖에 나가서 자야겠어. 집이 너무 더워.'


엄마는 단번에 서운한 표정을 지었으나, 나를 말리지 않았다. 자는 아이들을 안아서 차에 태운 후 가까운 모텔을 찾아 나섰다.


에어컨이 있는 모텔에서 우리는 시원하고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나로 하여금 한밤중에 친정을 뛰쳐나오는 만행을 저지르게 한 열대야는 엄마에게, 그리고 남편을 대하는 나의 마음에 쓰라린 수치심을 안겨주고 아침이 되어 물러났다.


그 후로도 20여 년 동안 엄마는 그 집에서 여름과 겨울을 지내셨다. 여자에게는 더없이 불편하고, 주부에게는 옹색했으며, 내 엄마에게는 한없이 잔인했던 나의 친정집, 그토록 팔기를 애원했지만 집은 아버지 명의로 되어있었다.


팔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던 아버지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1년도 채 안 되어 그 집을 팔고 현대식 빌라를 사서 이사했다. 꼭 그래야 했을까?


이렇게 무더운 여름날 밤이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고, 그깟 더위 하나 못 참고 엄마에게 수치심과 미안함을 안겨준 나의 철없음을 탓하게 된다.



** 유럽에서는 열대야를 tropical night이라고 하며 밤의 기온이 20도 이상일 경우를 뜻하고,

미국에서는 hot night이라는 용어로, 밤 기온이

섭씨 27도 이상일 때를 말한다고 합니다(위키피디아 참조).




대문사진 출처; 연합뉴스, 한국경제 2024. 0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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