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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Nov 02. 2024

말라가를 말라갔을꼬!

대도시의 재수 없는 웃음

그날 나는 말라가에 있었다.


말라가(Malaga)는 론다와 비교가 안될 정도로 큰 도시다. 대도시답게 인위적인 건물과 차량들, 매연과 소음으로 거리는 복잡했다.

 

고속버스 터미널을 나오자 심카드를 살 수 있는 가게가 보였다. 아! 이제야 전화기를 제대로 쓸 수 있겠구나 기대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휴대폰을 건네주고 심카드 하나를 주문하니 여권을 보여달라며 20유로를 지불하란다. 그동안 전화기 때문에 고생한 걸 떠올리면서 기다리는 중 만감을 교차하고 있는데, 가게주인이 전화기를 도로 내밀며 하는 말, 폰이 잠겨 있어서 심카드를 넣어도 사용할 수 없단다. 왓???


그래서 어떻게 해야 되니? 물었더니,

통신서비스회사에 전화해서 잠금을 풀어야 하며 비용이 들 거란다. 엥???

'그럼 심카드 나 안 살란다. 취소하고 내 돈 돌려줘' 했더니,

'너의 여권번호가 들어가서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없는데 어떻게 환불해 주냐, 못해!' 하는 거다.

(그럼 처음부터 전화기 상태를 확인하고 심카드를 팔았어야지!)는 내 속으로 중얼거린 말.

내 전화기를 다 열어보고, 내 여권번호도 가져가고, 내 돈도 챙기고 나서 안된다니.....


뭔가 당한 느낌이다. 게다가 주인 놈이 실실 재수 없게 웃는다. 분하다. 


심카드를 쓸 수 없는 휴대폰은 다시 카메라 전용이 될 것이다. 이제는 추가 요금을 내더라도 로밍을 쓰는 것 외엔 별도리가 없다. 심카드를 넣어도 쓸 수 없는 전화기가 원망스러웠고, 전화기 상태도 모르고 심카드 쓸 날을 기다리며 여태껏 버텨온 미련한 나 자신도 싫었고, 전화기 속을 보여준 것이 나의 무지한 속을 보여준 것 같아 수치스러웠다. 그래도 그렇게 웃으면 안 되지....  


조롱하는 듯 비아냥대는 웃음, 상대의 존재를 하찮아 보이게 하는 품격 없는 웃음은 목구멍 안으로 그냥 삼켰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실실 웃던지...


아무튼 그런 웃음에 나는 쉽게 상처받는다. 내 자존감의 문제인가? 사랑받지 못한 아이의 낮은 자존감은 어른이 되어서도 쉽게 회복되지 못한다. 놈의 재수 없는 웃음이 북적이는 거리 밖에까지 따라 나와 길게 여운을 남기고 사라졌다.


30여 분을 걸어서 숙소가 있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숙소 주인은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늦게 나타나서는 미안하다며 희미하게 웃는다. 오늘 얘네들 웃음, 정말 마음에 안 든다.




그녀를 따라 들어선 숙소는 누추했다.

긴 복도에 가림막 천으로 나뉜 한쪽 끝에는 그녀의 살림이 있었고, 작고 초라한 주방과, 손님과 같이 사용하는 욕실 하나가 전부인 듯하다. 내가 묵을 방은 문도 달려 있고, 그나마 비교적 밝고 넓은 편이지만 누추하긴 마찬가지다. 15일 여행하는 동안 이용했던 에어비앤비 중 요금이 가장 저렴했던 곳으로 기억한다.


그녀는 집 열쇠 하나를 내게 주며, 자신은 개를 산책시킬 겸 친구를 만나러 나갈 것이니 날더러 편하게 사용하란다. 나도 말라가 해변과 근처 공원을 다녀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말라가 시내 도심공원 말라가 파크(Malaga Park) 끝에 다다르면 옛날 무어족의 왕궁이었던 알카자바(Alcazaba)가 저 멀리 언덕 위에 서있는 것이 보인다. 거기에서 내려다보는 말라가 해변이 장관이라는데...... 언덕은 높아 보이고,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그냥 해변가로 내뺀다.


맨발로 해변가를 거닐다가, 그늘에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다가, 요트장식도 구경하고, 낚싯배도 보다가, 시원한 음료 한 잔 마시려고 큰 길가로 나왔다. 모퉁이 상점에 진열된 디톡스 주스와 달달한 타르트를 보고는 털썩 자리 잡고 앉아 음료를 주문한다.


'어... 저기 조거 조거하고... 어.... 요기 요고 요고하고... 음... 섞어서.... 맛있게?'


즉석에서 과일과 야채를 갈아 신선한 주스를 만들어준다.

캬~~ 씨원~하다, 더위와 피로가 싹 날아가는 느낌!

그동안 몸에 쌓인 여독과 함께 오늘의 불쾌함까지 모두 사라지고 단번에 상큼한 기분이 쓰르륵~ 채워졌다.


과일과 야채를 섞어 만든 디톡스 주스와 달달한 타르트


들어오면서 저녁으로 먹을 음식과 과일을 사 왔는데, 나는 갑자기 집주인 그녀와 나눠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음식의 양도 많았지만, 돈을 버느라 방을 내주고 돈을 아끼느라 애를 쓰는 그녀가 주제넘게 안쓰러웠다. 접시를 꺼내 그녀의 것을 나누어 담고, 'Enjoy Yourself' 메모와 함께 주방 식탁 위에 올려놓았다.


손님을 배려하는 숙소 주인의 마음씀인지 모르겠으나, 그날 밤 그녀는 한참을 지나서 내가 잠든 후에야 돌아왔다.




말라가는 재미없었다.

개운치 않은 심카드도 그렇고, 허름한 숙소도 그렇고, 도로는 지저분하고, 덥고....

해변가에서 주워온 납작한 돌멩이를 볼 때마다 전화가게 주인 놈의 재수 없는 웃음과, 숱 많은 머리를 땋아 내린 집주인 그녀의 희미한 미소가 떠오른다. 말라가를 말라갔을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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