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남기고 온 수많은 내 발자국들
투우 경기장을 나와 천천히 길을 걸으며 스페인의 평화로운 오후를 음미한다. 가끔 기분 좋게 바람이 불어와 얼굴에 달큼한 꽃냄새를 묻혀놓고 지나갔다.
걷는 동안 심카드를 살 수 있는 먼도(Mundo)와 오렌지폰 매장을 봤지만 일요일이라 문이 닫혀있었다. 도대체 언제 휴대폰을 제대로 쓸 수 있을지. 여행을 시작한 지 벌써 5일 째인데 아직도 휴대폰 와이파이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전 날 저녁, 숙소에서 미리 찍어둔 네비에 의존하여 길을 찾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관광객 티를 내면서라도 공항에서 심카드를 미리 사둘 걸 그랬다.
구아달레빈 강을 끼고 형성된 도시 론다는 깎아지른 절벽 위의 하얀 집들로 유명하다. 또한, 강물 위를 가로질러 협곡을 이어주는 세 개의 다리가 있었으니 이름하여,
푸엔테 누에보(also called the New Bridge)
푸엔테 베호(also called the Roman Bridge)
푸엔테 산 미구엘(also called the Arab Bridge)이다.
세 개의 다리를 다 보려면 1시간은 족히 걸린다. 협곡 밑에 펼쳐진 오솔길까지 거닐고 올라오면 시간은 두 배로 길어진다. 게다가 론다에 볼거리가 어디 푸엔테뿐일까!
누에보 다리를 건너자마자 협곡 밑으로 내려가는 좁은 길이 나타났다. 밑으로 내려간다. 다시 올라오려면 한참 시간이 걸리겠지만 혼자 하는 자유여행이니 그런 건 염두에 두지 않는다. 다만, 세 다리를 보기 위해 바삐 걸어야 하는 나의 두 다리가 걱정이다.
허나, 자고로 여행은 걸어야 제 맛 아니던가! 비행기 타고 이 먼 나라까지 온 마당에 다리 아픈 것쯤은 견뎌야 한다. 론다가 저렇게 예쁜데 안 보고 그냥 돌아갈 수는 없다.
밑에서 올려다보는 협곡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켜켜이 쌓인 바위층과 흙더미와 석회암이 만들어낸 주름이 협곡의 나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시에라(Sierra) 산에서부터 시작하는 구아달레빈 강은 수량이 적어 계곡물줄기처럼 가늘어 보이지만 세라니아와 론다 두 도시의 구릉지역에 수분을 공급해 주는 명실상부한 젖줄이다.
숭고한 자연의 아름다움과,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인간의 건축물 앞에서 낯선 여행객들은 마치 오래 알고 지내온 일행처럼 마음의 경계를 풀고 웃음을 주고받는다.
와~~
Wow~~
Hurra~~
Gorgeous~~
Magnifique~~
남미 사람으로 보이는 중년의 부부가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 요청하고, 폭포 앞에서 한껏 다정하게 포즈를 취한다. 부부의 얼굴은 둘 다 행복한 웃음으로 충만하다.
행복하기 위해 떠나온 나는 혼자일 때 비로소 행복으로 충만하다. 나는 잘못된 걸까?
의무와 책임이 전부였던 결혼생활은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내 사고에 한계를 긋고 나를 구속했다. 성격도 살아있는 물성인지라 일정한 틀에 오래 갇혀있으면 변하는 법이다.
결혼이라는 틀 안에서 자기중심적인 남자와 30여 년을 사는 동안 나의 감성은 건조해졌고, 주저함이 많아졌으며, 자주 답답했다. 나의 의견이 거부되고 외면당하는 많은 순간들을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고 살았고, 언젠가는 나를 알아주리라 기다리며 참고 살았다. 내가 없는 삶이 결코 행복할 리가 없다.
나는 행복하고 싶다. 단 하루를 산다 해도 가슴 뜨겁도록 행복하고 싶다.
다리 위로 올라와서 다시 길을 걷고 언덕을 오르내리며 골목과 골목을 누비는 사이 어느덧 날이 저물고 있었다. 이 날 아마도 점심을 거른 것 같다. 끼니도 거른 채 무엇이 그리 좋아 열심히 걷고 또 걸었는지. 론다를 구석구석 훑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레스토랑에 전등불이 하나 둘 켜지고 협곡에도 어둠이 내려앉았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지만, 보고 싶은 대로 다 보고, 머물고 싶은 만큼 머물다가, 떠나고 싶을 때 떠나며 맘껏 자유로웠던 론다의 하루는 진실로 행복했다. 구석구석에 남기고 온 수많은 내 발자국들은 또 왜 그리 뿌듯하던지! 오히려 혼자여서 나에게 충만한 행복을 줄 수 있었으니, 혼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숙소에는 아침에 먹다만 달달한 타르트가 반이나 남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