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 집시 할머니
그라나다 사크로몬테 숙소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집시의 플라멩코 쇼를 공연하는 동굴이 있다.
70년 전, 바르셀로나의 아티스트였던 메디나(Medina)는 사크로몬테에 있는 자신의 동굴을 잠브라의 장소로 꾸몄다. 잠브라(Zambra)는 전통적인 집시 춤을 말하며, 결혼식에서 축하의 의미로 행해지기도 한다. 동굴은 여러 해를 거치면서 변형되어 지금의 모습으로 이어졌고, 여전히 전통 집시춤 플라멩코의 장소로 유명하다.
크기가 다른 동굴무대가 두 개 있고, 약 2시간 여 동안 집시들의 한 판 춤이 벌어진다. 원하는 사람에게는 음료와 음식을 판매하므로 말하자면 플라멩코 디너쇼라고나 할까! 예약은 당일도 가능하다.
집시라는 단어도 몰랐던 어린 시절,
동네 사거리 쌀집 벽에는 유랑극단의 포스터가 늘 붙어있었다. 포스터에는 언제나 검정 아이라인을 두껍게 그려 넣은 남녀배우가 등장했고, 그들의 극적인 표정은 어린 나의 눈과 마음을 잡아끌었다. 그러나, 유랑극단의 극은 관람료와 나이 제한이 있었기 때문에 열 살 쯤의 나는 그저 학교를 오며 가며 포스터를 바라만 볼 뿐 호기심을 풀 수는 없었다.
그리고 유랑극단과 비슷하게 약장수가 있었다. 천막을 치고 시장바닥이나 동네 공터에서 벌어지는 약장수의 극은 무료였고, 나와 같은 국민학생 어린아이도 보호자 없이 볼 수 있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짙은 화장을 하고 슬픈 연기를 하며 극이 끝날 때마다 약을 팔았었다. 극의 내용은 주로 고부 갈등과 바람둥이 남편이 소재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들 중에는 실제 부부도 있었고, 어린아이가 함께인 부부도 있었다.
그들은 아마 한국판 집시였을지도 모른다.
'집시'라는 단어에는 자유분방한 삶의 냄새가 묻어있다. 자유는 곧 고독과 연결되며 불안정을 내포한다.
딱히 한 곳에 소속되는 것을 싫어하고, 9 to 5의 쳇바퀴를 못 견뎌하는 나의 성미는, 연관성을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내 아버지의 방랑의 피를 이어받은 탓이다. 부모는 있으나 나의 어린 시절은 고독했고, 무책임한 아버지 덕에 생활은 불안정했다. 결혼을 해도 외롭긴 마찬가지였고, 자유로운 기질의 남편 덕에 내 생활은 불안정했다. 그런 연유로 인한 친근함인가? 나는 집시에 관심이 많다.
사실 플라멩코보다 그들의 사는 모습이 더 궁금해서 극장 무대가 아닌 집시마을의 동굴쇼를 보기로 했던 것이다.
동굴은 생각보다 넓지 않았다. 중앙에 무대가 있고, 무대를 감싸고 관람석이 있는 단순한 구조였다. 하얀 회벽에는 그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과 관련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관람석이 사람들로 가득 찰 즈음 의상을 갖춘 남녀 무희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남자 가수도 기타를 들고 와서 앉는다. 집시가 춤을 추는 동안 그는 애절하고 구성지게 창가를 불러줄 것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 집시는 춤을 전수하는 대장님인 모양이다. 눈빛에서 뿜어져 나오는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다. 그런데 나랑 자꾸 눈이 마주치고, 심지어 나를 한참 뚫어지게 쳐다본다.
뭐지? 저 할머니가 관상을 보나? 내 얼굴에서 뭐가 보이기라도 하나?
할머니를 보며 나는 괜히 미소도 지었다가, 쏘는 듯한 눈빛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주변을 쳐다보기도 했다. 다시 정면으로 얼굴을 돌리면, 여전히 할머니가 나를 보고 있다. 그녀의 눈길은 마치 나를 혼내는 듯하다. 내가 뭐를 잘못했나? 금방이라도 나를 불러낼 것만 같다.
이번엔 나도 눈에 힘을 주고 빤히 쳐다본다. 다행히 할머니가 얼굴을 돌린다.
할머니의 노련한 지휘로 드디어 공연이 시작됐다. 남자 집시의 애절한 창이 울려 퍼지고, 가락에 맞춰 가장 앳된 여자 무희가 의자에서 일어서며 힘차게 스텝을 밟는다.
이어서 남자 집시의 간드러진 잠브라.
중년 아줌마 집시의 묵직한 잠브라.
세 명의 집시가 함께 추는 플라멩코.
가장 노련한 무희의 부드러운 잠브라 한 판.
세대를 이어서 전수되어 온 구슬픈 노랫가락이 격렬한 춤과 구둣발 소리에 섞여 동굴을 울리고, 무희는 신들린 듯 한을 풀어내고 있다.
마침내 카리스마 할머니의 차례,
할머니는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과 달리 귀엽게 춤을 춘다. 관절 때문인가.... 요란하지 않다. 그래도 플라멩코인데.... 뭔가 노련할 줄 알았던 나의 기대를 저버리고 할머니의 귀여운 춤이 다시 한 곡 이어진다.
끓어오르는 피의 열기로 젊은 한 때를 불사르고, 중년의 무거운 삶을 헤쳐 나와, 사그라지는 노년을 보내고 있는 할머니의 플라멩코는, 간결하면서도 굵직하고 날렵하면서도 안정적으로 보였다.
할머니의 피날레로 공연이 끝났다.
플라멩코를 몇 번 봤다는 것으로 집시를 안다고 할 수 없지만, 그들의 몸짓과 구성진 창가 가락에서 한국인이 갖는 한의 정서를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지식이나 활자보다 느낌으로 전달되는 것이었다.
밖은 벌써 어두웠고, 숙소에 돌아온 나는 원인 모를 약간의 흥분으로 그날 밤늦게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