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울 수 없는 아쉬움
친정집 대문 앞에는 늘 분꽃이 피어있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엄마와 그 집에 살았을 때는 없던 것이다.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러 갔을 때, 여름이 끝나가는 8월 말이었는데도 분꽃은 씨 하나를 맺지 못했고, 꽃씨를 받아오고 싶었던 나는 쓸쓸히 꽃만 쳐다보다가 떠나와야 했다. 그것이 마지막 친정 방문이었다.
그라나다를 떠나는 날 아침, 체크아웃을 하고 숙소 맞은편에 있는 사크로몬테(Barrio Sacromont) 언덕을 둘러보기로 했다. 예전부터 집시가 모여 살았던 동네이며, 언덕 어디에서나 알람브라 궁전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배낭을 메고 언덕길을 올라갔다.
마을은 한국의 산동네처럼 많이 낙후되어 보였고, 그들의 집은 누추한 나의 친정집과 닮아 있었다.
헤네랄리페 정원의 곱고 우아한 장미 대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는 선인장과 자잘한 꽃덤불이 제멋대로 무성한 것이, 코 앞에 위치한 알람브라 궁전의 잘 다듬어진 화려함과 지극한 대조를 이룬다. 곳곳에 동굴인지 움막인지, 집이라고 할 수 없는 거처에는 자그마한 대문이 달려있다. 집시가 사는 곳이다.
골목을 돌고, 남의 집 마당을 기웃거리다가 어느 집 대문춤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분꽃을 보았다. 분꽃은 한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서 보다니! 내 눈을 의심했지만 틀림없는 분꽃이었다.
엄마집 대문간에도 있던 꽃이다. 돌아가신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공허함으로 의욕 없이 지내다가 이제 그만 죽어도 좋다는 심정으로 떠나온 여행이었다. 엄마 돌아가신 후로는 한 번도 가지 않았던 내 친정집에 피어있던 엄마의 꽃을, 전혀 동떨어진 이역만리 허름한 집시마을에서 조우할 줄이야.
낯선 나라 낯선 집 대문에 피어있는 친근한 분꽃은, 엄마가 전하는 따스한 위로 같았고, 꿈에 단 한 번도 오지 않아 야속했던 엄마의 혼령 같아서, 반가웠다.
유품을 정리하던 날, 엄마가 생전에 들고 다녔다는 낡은 손가방에서 젊은 시절의 내 얼굴이 박혀있는 작은 증명사진을 보았다. 먼 나라로 이민 간 딸이 언젠가 돌아올 수도 있을 거라며 엄마는 나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꽃씨를 심고 그리움을 달랬을 외로운 엄마가 불쌍하고 미안해서, 분꽃을 보며 한동안 그 집 대문 앞에서 떠나지 못했다. 혹시라도 씨앗이 맺혔을까 찾아보았지만 거기에도 까맣게 영근 분꽃씨는 없었다. 엄마와, 분꽃에는 영영 채울 수 없는 절망 같은 아쉬움이 담겨있다.
터덜터덜 언덕길을 내려와 공항버스 탑승지로 향한다. 바르셀로나행 비행기 출발시간은 저녁 7시였다.
자그마한 국내선 비행기 좌석, 창 밖으로 멀리 시에라 네바다 산맥의 눈 쌓인 봉우리가 보인다.
서서히 구르던 부엘링 비행기는 마침내 활주로를 박차고 올라가고, 내 사랑 그라나다는 점점 시야에서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