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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Nov 23. 2024

몬주익 매직분수와 프러포즈

Would you merry me?

이제 바르셀로나 해변으로 가야 했다.

바르셀로네타에서 곤돌라를 타고 짧게나마 지중해 위를 거쳐 몬주익성에 내린다. 오래된 옛 성의 내부를 관람하고 나서 언덕을 걸어 내려오면 분수쇼가 펼쳐지는 몬주익광장에 다다를 수 있다. 조금 기다리면 환상의 분수쇼가 시작될 것이고, 좋은 자리에 앉아서 오색찬란한 매직분수쇼를 보는 것, 이것이 내가 계획한 그날 오후의 여정이었다.


항구에는 여러 가지 유흥 오락시설이 있었는데 이미 파장인지 이용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러고 보니 바닷가도 한적하다. 곤돌라 타는 곳으로 갈수록 인적은 더 뜸해졌다. 뭐지, 이 싸한 느낌은......


뛰다시피 걷다가 숨이 턱에 닿을 즈음 곤돌라 매표소에 도착했으나 방금 마감을 끝낸 직원은 책상을 정리하는 중이다. 급하게 표를 한 장 달라고 하자, 오늘의 마지막 곤돌라는 이미 출발했다며 손가락으로 '6시 마지막' 팻말을 가리킨다. 6시에서 5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자그마한 곤돌라가 저만치 줄에 매달려 가고 있다. 불과 한 발의 차이로 놓친 나의 병맛 표정을 들키고 싶지 않아 재빠르게 몸을 돌린다. 살면서 놓친 것이 어디 곤돌라 밖에 없을까!

'바이 곤돌라, 바이~'

곤돌라를 타고 몬주익 캐슬에 내리려던 나의 아름다운 계획도 바이......

할 수 없다. 곤돌라만큼 운치는 없지만 땅 속 전철을 타고 그냥 몬주익 분수로 가는 수밖에.


몬주익광장 지하철역에 내려 언덕길을 올라간다. 주변을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는 사이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람들이 분수 근처로 모여들었고, 나도 그들 사이에 섞여 계단 한 춤에 자리 잡고 앉았다.


남성 아마추어 힙합댄서 그룹의 요란한 버스킹이 끝나고, 드디어 분수 쇼가 시작되었다.


노랑, 분홍, 파랑, 보라의 화려한 색을 품은 분수가 하늘 높이 솟구친다. 사람들의 환호성도 물줄기를 타고 솟구쳐 올랐다. 눈앞의 황홀경에 취해 매직에 걸린 듯 환상의 나라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아~ 행복하다!

아름다운 물기둥이 스러졌다 올라오고 또 스러졌다 올라오는 몽환적인 시간, 진흙탕 같은 삶의 주인공은 잠시 잊기로 하자.

  



누군가 'Would you marry me?' 큰 소리로 말했고, 곧바로 '와~' 함성이 터졌다. 여자의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마술에서 깨어나듯, 남편이 내게 프러포즈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그때는 결혼 전 프러포즈 의식이 지금처럼 당연하지 않았고, 나 또한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던 그때, 나는 도대체 뭣이 중했을까? 결정적인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책임도 지지 않으려는 남편의 비겁함은 정작 놓쳤으면서.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결혼을 할 것인가?

다음 생을 기다리며 몇 겁을 도는 사이 혹여라도 잊을까 봐 내 영혼에 새겨둔다. 나는 다시 태어나도 결혼하지 않겠다.


이생에 이미 결혼한 나는 어쩔 것인가?

살아오는 동안 내가 놓친 것들에는 또 무엇이 있을까?

 

행복한 순간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나의 일부를 폐쇄하고 얻은 모두의 행복이었고, 그 속에 내가 있었을 뿐이다. 나 자신을 외면하는 것이 점점 힘겨웠지만, 달디 단 열매처럼 주어질 무엇인가를 확신하며 쓴 시간을 지나왔다. 남편은 최소한 나를 아낀다는 마음을 내게 보였어야 했다.  


이제와 쭉정이 열매라도 어설프게 맺을 것인가, 과감하게 털어낼 것인가. 어느 쪽이든 더 이상 나를 놓칠 수는 없다.




쇼가 길어지면서 매직분수의 황홀함은 시들해졌고, 사람들도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쇼는 이어졌지만 어두운 밤 길이 두려운 나는 환상적인 물줄기를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컴컴한 언덕길을 걸어 내려왔다.  


역 주변 거리의 모습은 마치 라스베이거스의 찬란한 밤과 삭막한 낮의 차이만큼이나 확연하게 달라진다. 화려한 매직분수도 현실이고, 인적 없는 어두운 밤거리도 내가 속한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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