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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Nov 26. 2024

디어 블랙 마돈나

몬세라트 수도원 검은 마리아상 앞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 여행을 준비하면서, 검은 마리아상(몬세라트 성모상 Virgin of Montserrat)과 산상 십자가가 있다는 몬세라트 수도원(Abbey of Montserrat)은 꼭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소원을 이루어주는 영험함이 있다고 알려진 검은 마리아에게 빌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웅장한 바위로 이루어진 몬세라트 산에 있는 수도원은 세계 4대 기독교성지에 속하며, 가우디가 성가족성당을 건축하기 전 영감을 받은 곳으로 유명하다. 미사가 있는 일요일에는 소년성가대의 찬송을 들을 수 있는데, 변성기 이전 소년들의 맑은 음색으로 울리는 찬송은 음반으로도 나와있어서 구매가 가능하다.


가는 방법: 

바르셀로나 시내 에스파냐역에서 산악열차환승이 포함된 기차표를 구매한 후, 기차를 타고 Monistrol de Montserrat 역에서 내려 산악열차로 갈아타면 몬세라트 산 정거장에 도착한다. 음식점 및 기념품가게를 지나 몇 분 걸으면 수도원 입구가 나타난다.


몬세라트 산악열차로 갈아탈 수 있는 환승티켓


현지 여행사나 가이드의 도움을 받으면 투어버스를 타고 쉽게 직행으로 갈 수 있지만, 그들의 일정은 대부분 빠듯하게 움직이는 것이어서 시간에 자유롭지 못하다. 내 맘대로, 발 길 가는 대로의 동선을 원하기도 하거니와, 가파른 산비탈을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산악열차를 타 보고도 싶었고, 무엇보다 미안한 마음을 사죄하며 엄마의 명복을 기원하는 내 나름의 의식을 치르기 위한 날이었으니 잠깐 들렀다 가는 것으로는 택도 없다는 생각에 하루를 온전히 보내기로 했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검은 마리아 목조상(블랙 마돈나)은 보존관리를 위해 유리벽으로 차단되어 있다. 우주를 의미하는 동그란 모양의 구체를 들고 있는 손 부분만 유리벽 밖으로 나와 있고 만지는 것이 가능했다.


검은 성모상 앞에서 각자에게 허락된 시간은 30초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긴 행렬에 서서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내 차례가 되었고, 나는 성모상의 구체에 손을 올려놓고 간절하게 머리 숙여 빌었다.


주여!
외로이 돌아가신
가여운 엄마의 영혼을
보듬어 주시옵소서.

그리고,
우리 부부의 살아온 날이 헛되지 않기를
우리 아이들의 가정이 함께 화목하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2019. 09.21.


산 꼭대기에 있는 수도원에 올라와 검은 마리아상을 찾은 이유는, 외롭게 돌아가신 엄마의 명복을 빌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힘없는 엄마를 따뜻하게 살피지 못한 나의 죄스러운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다. 그게 전부였는데, 어렵게 얻은 귀한 자리여서 가족에 대한 기도까지 욕심을 냈다.


갑자기 벌어진 엄마의 죽음 앞에서 나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었다. 딸 노릇을 제대로 못했다는 죄스러움에, 눈물조차 흘리지 않은 것에 대한 자책이 더해지고, 이제는 어찌해 볼 수도 없다는 회한으로 2년을 보냈다. 이렇게라도 해야지만 깊은 죄에서 조금 헤어 나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나름의 의식을 치르며 엄마를 떠나보내고 싶었는데, 그 대상이 영험하다면 마음이 더 편해질 것이었다.


검은 마리아상 뒤편에는 기도실이 있다. 숙연한 마음으로 생각에 잠겨 앉아 있다가 성당 밖으로 나왔다.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날의 간절함과 진실한 고백, 비록 때를 놓친 소용없는 짓이긴 하나 엄마를 위해 뭔가를 했다는 작은 뿌듯함, 그리고 산악열차를 타고 내려가면서 보았던 하얀 운무까지, 그중 무의미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음 날 바르셀로나를 떠나 여행의 시작점이었던 마드리드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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