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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Mar 01. 2024

손자의 표정관리

사회 적응력은 타고 난 듯하다.

딸은 요즘 일주일에 이틀을 일하는데 딸이 일하고 온 다음 날이면 작은 손자 놈은 나랑 눈도 안 마주치려 한다. 혹시라도 나랑 눈이 마주치면 제 엄마로부터 저를 데려갈까 봐 얼굴을 아예 내 쪽으로 돌리지 않는 거다. 어쩌다 실수로 나와 눈이 마주치면 안 본 듯 얼른 다른 곳을 향한다. 돌도 안 지난 어린것이 속이 말짱하다. 전 날 제 엄마랑 떨어져 하루 종일 내 손에 매달려 있었으니, 늙은 할미가 물릴 만도 하다. 딸의 품에 찰싹 달라붙어서 제 엄마만 보고 방긋방긋 웃는다.


나도 아쉬운 것 없다. 


잡아주지 않아도 되니 손이 편하고, 안고 다니지 않아도 되니 허리도 편하다. 혹시라도 손자가 불편한 맘이 생길까 봐 나도 의식적으로 무심한 듯 눈을 피해 준다.


장난기 있는 나는 그런 손자가 귀여워 데려가려는 시늉을 해본다. 그러면 제 엄마 손을 잡고 빙그르~ 발걸음을 돌려 다른 곳으로 향한다. 얼굴은 웃는 표정이지만, 작은 몸에서는, 이크! 하는 서두름이 보인다.

 

제 아들의 인기를 독차지한 딸이 깔깔 만족한 웃음을 터뜨리며, '또 해봐, 엄마!' 한다. 나는 다시 손자 놈 얼굴을 마주 보고, '이리 와~'하며 손을 내민다. 거듭되는 할미의 장난기에 손자의 얼굴에 위기감이 번진다. 방긋 웃던 얼굴은 사라지고, 굳어진 표정이 딴에는 심각해지더니 급기야 제 팔을 휘두르며 내게 화를 낸다. 할미는 저리 가 ~



제 엄마가 일하지 않고 집에 있는 며칠을 보내고 나면, 손자는 다시 일말의 주저함 없이 내게 덥석 안긴다. 제 엄마의 온기와 사랑을 듬뿍 받은 탓에, 이제는 누구라도 다 받아들일 수 있나 보다. 얼굴 표정도 아주 편안하고 안정돼 보인다. 표정관리를 목적으로 굳이 눈 돌리려 하지 않고, 내빼기 위해 굳이 서두르지 않는다. 어린것의 마음을 불안정에서 평온함으로 바꾸는, 엄마의 막강한 힘이다.


그러나 이제 곧 딸은 일하는 날이 더 많아질 것이고, 손자는 나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늘어나는 딸의 근무일수에 맞추어 손자도 놀이방을 다닐 계획이고 적응하는 정도에 따라 시간을 늘려나갈 거라 하는데, 모쪼록 손자의 사회 적응력이 원만하기를 빌어본다. 이미 표정관리할 줄 아는 것을 보면 뭐, 걱정 안 해도 될 듯은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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