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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Feb 26. 2024

호기로운 외출 허락

너희들이 좋았으면 됐다. 

딸은 우리 부부에게 살던 집을 내어주고 다음 달에 새 집으로 이사할 예정이다. 한 집에서 딸과 사위랑 같이 살며 손자육아하는 것을 나는 강력하게 반대했고, 공간분리는 황혼육아를 하기 위해 전제되어야 하는 필수조건이었다. 생활방식이 전혀 다른 두 세대가 한 집에서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아는가! 게다가 아이 둘을 돌봐야 한다면, 이건 출근도 퇴근도 없는 하루 24시간, 주 7일 육아환경이 될 것이 뻔했다. 


손자육아를 위해서 내가 그렇게까지 할 이유는 없다. 희생은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며, 헌신은 더더구나 원하지 않는다. 다행히 딸은 제가 살던 집을 내게 숙소로 제공해 줄 수 있다 했고, 그것은 육아를 돕는 것에 대한 보수의 일부라고 여긴다. 



오늘은 새로 이사 갈 주택의 입주 전 하자 점검(Inspection) 때문에 딸과 사위가 함께 외출을 해야 하는 날이다. 나는 인심 쓰듯 오랜만에 둘이서 외식도 하고 놀다가 오라며 호기를 부렸다.

'그러면 좋지만 엄마가 너무 힘들 텐데 정말 괜찮겠어?'


방학이라 집에 있는 큰 손자까지 해서 둘을 다 보려면 당연히 힘이 들겠지만, 뭐 못할 것도 없지.

-괜찮아, 둘이서 맛있는 것도 먹고 데이트도 하고 천천히 와.


둘은 좋아라 웃으며 나갔고 나의 고통의 시간은 시작되었다.


4시간 동안 손자 두 놈들과 씨름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10개월 된 둘째 손자의 몸무게는 13킬로그램, 아직은 저 혼자 완전히 중심을 잡지 못하기 때문에 눈도 손도 뗄 수 없다. 여차하다간 넘어지고, 그러면 다치고, 그러면 애 본 공이 다 날아가 새 본 공이 되고 만다. 어린것이 얼마나 뛰고 몸을 흔들어대는지, 팔목과 허리는 시큰거리고 양쪽 팔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팠다. 미운 네 살 큰 손자는 잘 놀다가도 제 맘에 들지 않으면 'No! noooo~~'라며 소리를 지르고, 어느 한 놈이라도 잤으면 좋겠는데 잠을 재운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드디어 외출했던 딸과 사위가 돌아왔다. 휴~


딸과 사위를 보자마자 힘들어했던 나의 표정은 간데없고 어느새 감쪽같이 웃는 낯이 되었다. 자동이다.

딸은 내게 미안하다며 어쩔 줄 모르지만 표정은 아주 밝다. 사위도 싱글벙글, 몇 년 만에 핫팟(Hot Pot)을 먹으며 둘이 옛날 데이트할 때처럼 너무 좋았다나. 잠시 잠깐 육아로부터의 해방이 생명수였던 듯 둘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불과 4시간 만에 1년 치를 다 늙어버린 듯한 나는 

-그래, 니들 좋았으면 됐다. 

말은 그렇게 나왔지만 마음속에서는, 앞으로는 절대 호기 부리지 말아야지라고 뇌까리며 인심 단속을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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