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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Feb 21. 2024

고생문이 열리던 날 2

잘 되겠지... 잘 되기를...

아침 7시, 두 손자 놈들은 벌써 거실에 나와서 제 아비와 할아버지랑 놀고 있다. 이앓이 하느라 칭얼대는 둘째 때문에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한 딸은, 아침이 되어서야 아이들을 내맡기고 조각난 잠을 이으러 다시 방에 들어갔다.


내가 나오자 남편은 마당일하느라 나가고, 사위는 커피를 한 잔 내리더니 내게 가져다준다. 

'어머님, 한국생활 정리하고 오시는 게 정말 쉽지 않으셨을 텐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드려요. 저희도 잘할게요.'

 

그간 애 키우며 직장 다니느라 딸 못지않게 고생했을 사위가 애잔해지면서, 일부러 이렇게 마음을 표현해 주는 것이 오히려 고마웠다.

-애보랴 일하랴... 힘들었지?

'예, 하나 있는 거하고 둘 있는 거하고는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허허.'




심심해진 큰 손자가 제 엄마를 찾으며 안방으로 들어갔다. 막 잠들었던 딸은 부스스한 얼굴로 손자 놈 손에 끌려 나와 혼이 나간 듯 소파에 멍하니 앉는다. 에그! 뭐라도 해서 먹여야지 안 되겠다. 

그 광경을 보고 나는 아침을 만들러 주방으로 갔다. 과일과 야채를 접시 가득 썰고, 빵을 굽고, 스크램블드 에그를 잔뜩 해서 식탁에 올렸다. 많이 먹어라~


사위는 오랜만에 아침을 먹고 나갔다.


오늘은 어린이집이 쉬는 날이라 아이들은 하루 종일 집에 있을 것이다. 마당 일을 거의 마친 남편은 집 안으로 들어와 창문틀을 닦아내고, 환풍기의 먼지를 제거하고, 여기저기 치울 곳을 찾는다. 틈틈이 큰 손자와 병원놀이도 한다. 나도 내 남편이 이렇게 잘할 줄 몰랐다.




딸이 칭얼거리는 둘째 아이를 재우고 나서 큰 손자와 놀고 있는 사이, 나는 점심을 준비했다. 소고기 뭇국을 끓이고, 고등어를 굽고, 시금치를 무치고, 컬리플라워를 볶고....


'오랜만에 엄마 밥 먹으니까 맛있다.'


육아휴직 중인 딸이 앞으로의 일에 대해 운을 뗐다.

'9월부터는 일주일에 하루만 일하기로 했어, 그리고 10월부터 하루씩 더 늘릴 거고, 내년에는 풀타임으로 일할 거 같아. 원래는 지난 1월부터 복직하기로 한 건데 지금 늦어진 거야. 둘째도 돌 지나고 나면 어린이집에 보낼 거니까, 엄마 아빠가 몇 시간만 봐주면 돼.'


그래 걱정하지 말고, 돈 벌 수 있을 때 열심히 벌어라. 나의 시대는 갔고, 이제 너의 시대이니 한창일 때 열심히 해서 얼른 일어서라. 내가 도와줄게. 돈도 벌리는 때가 있더라. 젊었을 때는 계속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나 보니 아니더라.


저녁을 밖에서 먹고 들어온 사위는 오자마자 큰 아이를 씻겨 재우고, 거실에서 작은놈을 놀아주며 제 아내와 두런두런 얘기를 나눈다.


어제 하루 겪었다고 그새 적응이 됐는지 오늘은 나도 덜 힘들었다. 고생문은 이제 열렸고, 다음 달부터는 길고 긴 육아의 여정이 시작된다. 잘 되겠지..... 잘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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