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랜턴 Mar 03. 2024

남편과 아비

나의 남편은 어디 가고

두 손자가 감기에 걸려 고열로 시달리고 딸까지 덩달아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며칠이 지났다. 학교도, 놀이방도, 직장에도 못 가고 셋이 고열로 나자빠지니 해열제 먹이고 물수건 축여주고 아래위층 오르내리며 간호하랴 끼니 챙기랴 바쁘게 지내는 요즘, 내 몸도 축나는지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손가락 관절까지 아릿하니 아프다. 아프지만 내 몸 아프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늘은 그래도 많이들 회복이 돼서 밥도 먹고, 놀기도 하고, 설거지도 거들어 주어 한결 수월했다. 딸과 사위는 내일과 모레 모두 출근하지만, 손자 두 놈은 이번 주말까지 집에 있어야 하니 나는 또 꼼짝없이 내일도 모레도 아픈 두 놈을 돌봐야 한다.


생각만으로도 이미 지치고 힘이 드는데, 아무 생각 없는 남편은 시키지도 않는 것을 한술 더 떠서, 딸이 편하게 출근 준비할 수 있도록 아침에 더 일찍 오자고 한다. 나 힘든 건 안중에도 없는 남편에게 서운함이 올라오며 순간 화가 났다. 다른 집 남편들은 마누라 힘들까 봐 '엄마 시키지 말고 니들이 해!' 한다는데. 내 남편은 앞질러서 오지랖이다.


아~ 나의 남편은 어디 가고 아비만 남았느냐! 



아비 노릇이 그리 하고 싶으면 저 혼자 일찍 오면 되지, 어찌하여 꼭 나를 앞세우며 함께 하려고 하는지! 엄마도 없고 남편도 없는 나는 어디 가서 누구에게 기대앉아 위안받을꼬! 애초에 마누라 귀한 줄 모르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자각 없고 각성 없이 계속 한결같은 무관심에 외로움이 솟구쳤다. 이건 해도 너무 한다.


집에 오자마자 이불 뒤집어쓰고 모로 누웠다. 낌새를 눈치챈 남편이 방으로 들어오며 어디 아프냐고 물어대지만 말도 하고 싶지 않다. 딸은 자식인지라 힘들어도 힘들다 말을 못 하고, 남편은 남의 편이니 내 마음 같은 건 관심도 없고...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 하나 없는 나는 오늘, 이래저래 좀 힘들고 우울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이 바로 그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