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상도 DNA로 유전된다?
생일 케이크에는 항상 나이 수만큼의 양초를 꽂았다. 아이가 셋이니 남편까지 해서 일 년에 다섯 번 생일 축하를 해야 했는데, 축가를 부르고 나면 바로 버려지는 초가 아까웠다.
한국에서는 케이크를 사면 나이 수만큼의 초와 성냥개비 하나를 당연히 끼워주지만, 이놈의 캐나다는 케이크 따로 초 따로 라이터 따로, 다 따로따로 사야 된다. 싸지도 않다. 그래서 축가를 다 부르고 난 후에도 심지만 까맣게 타고 멀쩡하게 남아있는 초를 따로 보관했다가 다음 누군가의 생일 축하에 또 쓰곤 했다.
촛불이 없는 케이크는 의미 없는 빵 덩어리일 뿐이다. 케이크에는 반드시 양초가 있어야 하지만 반드시 새것이라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축하 노래 몇 곡 더 불러도 될 만큼 충분한 길이가 아직 남아있는데 한 번 쓴 것이라고 해서 마구 버리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새 양초를 돌려가며 다섯 번 쓰고 나면 1년 치의 생일 축하도 끝이 났고, 초도 거의 반 토막이 되었으므로 버리는 마음에도 거리낌이 없어진다.
사춘기를 맞은 딸들은 엄마의 그런 궁상이 싫었나 보다. 썼던 초를 다시 쓰냐며 입이 댓 발 나오곤 했는데, 특히 지금 손자 육아를 도와주고 있는 둘째 딸은 구질구질한 나의 옹색함에 매우 예민했다.
학교를 졸업한 둘째가 취업을 하고 돈을 벌기 시작할 때까지 나의 양초 돌려쓰기는 계속되었지만, 반대로 둘째가 해주는 내 생일선물은 급격하게 업그레이드되었다. 어린 시절의 궁색함을 돈으로 풀고 싶었던 건지, 늘 추레했던 엄마를 위해 고급진 무엇 하나를 사주고 싶었던 건지 딸의 속마음을 모르겠지만 나는 받으면서 좋았다.
그 딸이 결혼을 하고 제 살림을 시작할 때도 내 생일선물은 그런대로 고급졌었다.
'이제 애 태어나면 이렇게 못해, 해줄 때 받아.'
해준 것도 없는 내가 비싼 선물을 받는 것이 미안한 마음이 들어, 선물 안 해도 돼, 하면 딸은 늘 그렇게 말했다. 불과 3년 전까지는.
그러던 것이 첫 손자가 생기고 둘째가 태어나면서 육아비용은 하늘로 솟구쳤고 내 선물의 급은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이제는 잊지 않고 챙겨주는 것만도 고마울 지경이다. 사실 촛불 얹은 케이크 하나여도 나는 괜찮았다.
급기야 지난해 큰 손자가 네 살 되던 생일날, 나는 보고 말았다.
딸이 서랍을 열고 썼던 초를 꺼내 손자의 생일 케이크에 꼽는 것을.
생일축가를 부르고 나서 촛불을 끄고 케이크를 자르기 위해 초를 뽑아내던 딸이, 꺼낸 초를 크리넥스 한 장에 잘 모아두는 것도 봤다. 케이크를 나눠먹고, 사진을 찍고, 웃고 떠들며 축하가 끝났다. 각자 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 나는 또 봤다.
식탁 한쪽 편에서 딸이, 양초에 묻어있는 생크림을 열심히 닦고 있는 것을.
또 쓰게?
딸이 멋쩍게 웃으며 대답한다. '아까워.'
몹쓸 놈의 궁상 DNA. 이것도 유전이냐!
나 때보다 초도 더 굵고 예뻐진 것이 업그레이드가 되긴 했다만.
딸은 아예 숫자 모양으로 만들어진 초를 0부터 9까지 한 세트로 사서 쓰고, 쓰고, 또 쓰고 있다. 궁상 DNA가 제법 세련되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