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와 육아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기
또다시 감기에 걸린 큰 손자는 이번 주 내내 유치원에 가지 못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 손자는 선생님이 아프다는 이유로 5일째 집에서 놀고 있다.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딸도 몸살이 나서, 딸까지 간병하느라 정신이 더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남편에겐 여전히 청소와 정리 정돈이 일 순위다. 본인이 원하는 깔끔한 환경이 되고 나서야 육아를 거드는데, 그 조차도 가관이다.
혼자서 밥 먹는 큰 손자를 보며 밥 먹는 것 좀 도와주라 했더니 손자 옆에 앉은 남편,
김 한 장 날름 입에 넣고, 소시지 한 조각 우물거리며 본인이 밥을 먹는다.
분명히 방금 전에 점심을 먹었는데, 그건 뭐지?
밥 다 먹은 큰 손자 데리고 놀아주라 했더니, 어린것 앞에서 남편이 개그를 한다.
'롱 롱 어고우, 타잔 앤 타잔스 와이프 리브 인 더 정글. 매니 매니 애니머얼~, 포 이그잼플~'
어이구! 네살배기한테 19금 야설을 풀려고 하다니, 중간에 안 말렸으면 끝까지 갔을 거다.
큰 놈은 화장실에서 똥 닦아달라며 소리를 지르고, 똥 기저귀 바꾸려고 눕혀놓은 둘째 놈은 누워있기 싫다며 발딱발딱 일어나고 나혼자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점심을 먹고 나서 식곤증이 오는 남편은 소파 지정석에 앉아 눈만 꿈벅거린다. 졸음을 부르는 건지 눈뜬 채로 졸고 있는 건지, 지금 그에게 손자들은 안중에 없다.
어느덧 4시가 넘어 딸과 사위가 퇴근할 즈음이면 남편은 비로소 생기가 난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도 맛있는 저녁밥 먹을 시간이 다가오고, 또 저녁을 먹고 나면 우리도 퇴근할 수 있어서겠지. 그 느낌이 대충 짐작은 간다만...
자기를 잡아보라며 뛰어가는 큰 손자를 남편이 괴성을 지르며 쫓아다니는데, 손자 놈보다 더 신이 났다.
'으어허헉~, 이야얖핲, 으그큭컥헛!'
손자 놈은 재미있다며 캭깔깔 웃다가, 으크큭끼야~ 하고 도망가며 소리 지르니 당최 시끄러워서, 찌개에 소금을 넣을지 간장을 넣을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마침내 퇴근한 딸과 사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들어오면 손자 놈들은 그때부터 날 아는 척도 안 한다.
오냐 좋다. 나도 땡큐다 이놈들아!
얼른 저녁 차려서 먹고 설거지하고 있으면, 남편은 어느새 차에 시동 걸어놓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다. 씻고 나온 손자들에게 바이 바이, 굿 나잇~ 대충 손 흔들고 남편과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향한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 안에 앉아 집 나간 정신을 겨우 수습한 나도 잠시나마 단잠에 빠져든다.
손자를 육아하는 건지 자신을 육아하는 건지, 내 보기에 형편없는 자기 주도식 육아법이지만 그렇게 하루를 보낸 남편도 고단하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집에 오면 나보다 먼저 곯아떨어지고, 그르렁거리는 숨소리는 늙어 힘 빠진 짐승의 것마냥 가련하기 짝이 없다. 그것을 보며 나는 또 속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