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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May 09. 2024

내 얼굴이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애들이 아픈데 어떻게 행복하니!

손자들이 연달아 감기에 걸리면서 나는 일주일 넘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심지어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육아를 하고 빨래와 밥을 지으며 딸네 식구의 저녁을 챙겨야 했다. 이쯤 되면 힘들다는 걸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얼굴에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법이거늘, 내 표정이 밝지 않다고 그렇게 말을 하다니!


엄마, 행복해 보이지 않아. 다시 한국에 가고 싶으면 얘기해.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너 왜 그런 말을 하니?


'엄마가 힘든데도 말 못 하고 있을까 봐. 더 나이 먹어서 돌아가면 일할 자리도 더 없다고 했잖아.'


딸이 그 말을 하기 전까지 나는 그저 힘들기만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는 화가 났다. 이런 무책임한...

아이들이 열나고 기침하고 아프면 육아가 힘든 건 당연하다. 잘 놀지도 잘 먹지도 않으면서 칭얼대고, 때때로 안아줘야 하고, 수시로 열 체크해야 하고, 시간 맞춰 약 먹여야 하고..... 정말이지 내 끼니 챙기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육아를 안 해 본 것도 아니고, 저도 뻔히 알면서 뭐, 행복해 보이지 않아!

애들이 아픈데 어떻게 행복하니?


이렇게 이쁜 놈을 돌보는데 어찌 힘만 들었을까!




엄마, 나 좀 도와줘! 


육아가 힘들다며 애처롭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딸이 먼저였다. 60살이 넘어서도 꿋꿋하게 일하며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나를 불러들인 것도 저였으면서,  이제 와서 행복해 보이지 않으니 돌아가라고! 내가 돌아가면 육아와 살림을 너 혼자서 감당은 할 수 있고! 혼자 하다가 힘들어지면 그때 또다시 와달라고 할 거니! 나이 사십이 다 돼가는 애가 그렇게 앞뒤 분간이 없니!

라고, 혼자 속으로만 외쳐댔다.


황혼육아를 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 삶이 쉬울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행복과 불행을 저울질하며 뛰어든 것도 아니다. 내 딸이 힘들어하니까, 저 어렸을 때 잘해주지 못한 게 미안해서, 나도 내 엄마에게 받은 사랑이 있어서 줄곧 주장해 왔던 노년의 독립적인 삶도 마다하고 왔는데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한 발짝 쯤 화를 떨어뜨리고 곰곰 생각해 본다. 딸이 미안한 마음에 그랬던 것 같다. 엄마가 힘들어하는 것이 안쓰러워서 그랬을 거다. 아픈 아이들 때문에 밤잠 못 자고 일하느라 저도 스트레스가 쌓였겠지. 그래서 내 얼굴표정에도 예민했겠지. 그래도, 할 말과 못할 말은 가려야 하지 않니!  


딸은 그렇게 말한 후부터 수시로 내 안색을 살폈고, 나는 그러는 딸이 또 안쓰러웠다.

이 시점에서 구겨진 얼굴 표정은 당연한 것이지만, 의식적으로 얼굴 근육을 조금 풀기로 했다. 평소라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실없이 내뱉기도 하고, 아이들과 같이 노는 영상을 근무 중인 딸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도 나아졌고, 딸의 표정도 조금씩 풀어지며 우리는 또 한 고비를 넘겼다.


누구나 가끔 행복하고, 가끔은 우울하고, 화도 나고, 가끔씩 불행한 대로 사는 거지,

도대체 매일매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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