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아픈데 어떻게 행복하니!
손자들이 연달아 감기에 걸리면서 나는 일주일 넘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심지어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까지 육아를 하고 빨래와 밥을 지으며 딸네 식구의 저녁을 챙겨야 했다. 이쯤 되면 힘들다는 걸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얼굴에 드러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법이거늘, 내 표정이 밝지 않다고 그렇게 말을 하다니!
엄마, 행복해 보이지 않아. 다시 한국에 가고 싶으면 얘기해.
기가 막혀서 웃음이 나왔다. 너 왜 그런 말을 하니?
'엄마가 힘든데도 말 못 하고 있을까 봐. 더 나이 먹어서 돌아가면 일할 자리도 더 없다고 했잖아.'
딸이 그 말을 하기 전까지 나는 그저 힘들기만 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는 화가 났다. 이런 무책임한...
아이들이 열나고 기침하고 아프면 육아가 힘든 건 당연하다. 잘 놀지도 잘 먹지도 않으면서 칭얼대고, 때때로 안아줘야 하고, 수시로 열 체크해야 하고, 시간 맞춰 약 먹여야 하고..... 정말이지 내 끼니 챙기기도 어렵다. 그렇지만 육아를 안 해 본 것도 아니고, 저도 뻔히 알면서 뭐, 행복해 보이지 않아!
애들이 아픈데 어떻게 행복하니?
엄마, 나 좀 도와줘!
육아가 힘들다며 애처롭게 도움을 요청한 것은 딸이 먼저였다. 60살이 넘어서도 꿋꿋하게 일하며 잘 먹고 잘 살고 있는 나를 불러들인 것도 저였으면서, 이제 와서 행복해 보이지 않으니 돌아가라고! 내가 돌아가면 육아와 살림을 너 혼자서 감당은 할 수 있고! 혼자 하다가 힘들어지면 그때 또다시 와달라고 할 거니! 나이 사십이 다 돼가는 애가 그렇게 앞뒤 분간이 없니!
라고, 혼자 속으로만 외쳐댔다.
황혼육아를 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 삶이 쉬울 거라는 생각은 안 했다. 행복과 불행을 저울질하며 뛰어든 것도 아니다. 내 딸이 힘들어하니까, 저 어렸을 때 잘해주지 못한 게 미안해서, 나도 내 엄마에게 받은 사랑이 있어서 줄곧 주장해 왔던 노년의 독립적인 삶도 마다하고 왔는데 이런 말을 들을 줄이야!
한 발짝 쯤 화를 떨어뜨리고 곰곰 생각해 본다. 딸이 미안한 마음에 그랬던 것 같다. 엄마가 힘들어하는 것이 안쓰러워서 그랬을 거다. 아픈 아이들 때문에 밤잠 못 자고 일하느라 저도 스트레스가 쌓였겠지. 그래서 내 얼굴표정에도 예민했겠지. 그래도, 할 말과 못할 말은 가려야 하지 않니!
딸은 그렇게 말한 후부터 수시로 내 안색을 살폈고, 나는 그러는 딸이 또 안쓰러웠다.
이 시점에서 구겨진 얼굴 표정은 당연한 것이지만, 의식적으로 얼굴 근육을 조금 풀기로 했다. 평소라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실없이 내뱉기도 하고, 아이들과 같이 노는 영상을 근무 중인 딸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도 나아졌고, 딸의 표정도 조금씩 풀어지며 우리는 또 한 고비를 넘겼다.
누구나 가끔 행복하고, 가끔은 우울하고, 화도 나고, 가끔씩 불행한 대로 사는 거지,
도대체 매일매일 행복한 사람이 어디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