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만 괜찮아?

규칙만 정하고 예외 조항을 예상하지 못한 죄

손자들 육아를 돕기 위해 딸네 집으로 출퇴근을 시작했을 때, 나와 딸의 계획은 이러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후 2시 출근해서 7시 퇴근하고, 

토요일과 일요일 포함, 모든 공휴일은 쉬기로 한다. 

아무리 내 딸이고 손자들이라지만 서로 간에 규칙은 정해놓는 것이 좋을 법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딸이 회사 안 가고 집에 있는 날은 안 와도 좋다고 한 적도 몇 번 있었다. '이건 정말 꿈의 직장인데!' 혼자 생각하며, 이 정도면 얼마든지 몇 년이고 육아를 도울 참이었다.

그러나 그런 적은 아주 드물었고, 겨울이 되면서부터 손자들은 번갈아가며 계속 감기에 걸렸다. 

감기에 걸려 열이 나고 기침하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낼 수 없으므로 이런 경우 나의 출근 시간은 아침 7시 30분이 된다. 퇴근은 똑같이 저녁 7시, 거의 12시간 근무다. 감기는 보통 일주일을 지나야 낫는 병이니 아이들은 꼬박 집에서 일주일을 지내야 하며 감기 때문에 잘 놀지도 잘 먹지도 않는다. 

Photo by Ksenia Makagonova on Unsplash

아이들 감기는 쉽게 딸에게로 이어진다. 밤새 간호하느라 잠을 못 잔 딸은 면역력이 형편없다. 딸이 아프면 아이들을 돌볼 인력은 줄고 환자는 늘어나는 것이므로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그러면 주말에도 딸네 집으로 가서 육아와 간호를 해야 한다. 감기가 나아가는 아이들에게 밥을 챙겨 먹여야 하고, 이제 막 감기에 걸려 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몸살 기운이 있는 딸을 돌봐야 한다. 

한 번씩 감기 행사를 치르고 나면 모두가 건강해지는 시간이 잠시 오는데, 그럴 땐 딸과 사위가 번갈아가며 교육을 받거나 연수를 다녀온다. 그로 인해 생기는 육아 인력 공백은 당연히 또 내가 메꿔야 한다. 그리하여, 지지난주에는 주말을 아예 딸네 집에서 자며 손자들을 돌봤고, 지난주에는 토요일만 쉬었으며, 이번 주도 금토일 모두 근무했다. 

아! 이러려고 그런 게 아닌데...

이 정도 중노동이면 나도 한 번쯤 아플 만도 한데, 나는 안 아프다. 내 몸은 강철로 만들어진 모양이다. 

엄만 괜찮아?

딸은 아이들이 감기를 치를 때마다, 그리고 본인이 감기를 옮겨 받을 때마다 내게 묻는다. 엄마는 괜찮냐고.

나도 이상하다. 내가 이렇게 건강했나? 열이 나는 손자를 안아주고, 흐르는 콧물을 연신 닦아줬는데도 멀쩡하다. 심지어 손자가 기침을 내 얼굴에 바짝 대고 했는데도 아무 일이 생기지 않았다. 열이 살짝만이라도 오르면 바로, '나도 아프다!' 힘주어 말하고 당장 드러누우려고 했는데, 나의 면역 기능이 정상인가 싶을 만큼 하나도 안 아프다. 

규칙만 정하고 예외 조항을 예상하지 못한 죄,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는 없지만, 새로 돌아오는 주는 온전하게 규칙대로 한번 지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