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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랜턴 Mar 30. 2024

떡볶이 먹어, 어묵탕도 있어!

사랑의 표현도 연습이 필요하다.

어제보다 추운 오늘, 천천히 아침 산책을 하고 나니 따뜻한 어묵국물과 매콤한 떡볶이가 먹고 싶어졌다. 냉장고를 열고 주섬주섬 뒤적뒤적, 딱 한 끼 먹을 떡과 어묵이 남아있고, 마침 양배추도 있다. 떡볶이와 라면을 제일 좋아하는 남편에겐 먹겠느냐 물어볼 것도 없다. 당장 만들기를 시작한다.


칼을 꺼낸 김에 화분에 심은 파를 싹둑 잘라다가 파 기름 먼저 내고, 맵지 않게 어묵볶음도 만들었다.

어쩌나~ 실수로 떡볶이도, 어묵탕도, 어묵볶음도 모두 다 맛있게 되었다. 


이러면 딸에게 먹이고 싶어 진다. 남편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둘이 동시에 먹는 속도가 느려지더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덜어 담을 반찬통을 찾는다. 내가 떡볶이를 담는 사이, 남편이 국물 통을 내온다. 아주 착착, 손발이 맞는 것이 말이 필요 없다. 떡볶이를 먹다 말고 우리는 각자 알아서 바쁘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2960230님의 이미지입니다.


남편은 이제 본격적으로 냉장고를 열고 서서, 김치도 가져가라, 딸네 집에 파김치는 남았느냐, 멸치볶음도 가져가라, 하며 냉장고째로 들어 옮길 판이다. 이쯤이면 내 입에서 한 소리 안 나올 수 없다. 

아, 그만! 됐어. 매일매일 실어 나르는 게 얼만데. 


설령 자식을 위하는 것임에도 내가 주고 싶어 챙기는 것과 누가 주라고 해서 챙기는 것에 내 마음씀이 달라진다. 네 마음 내 마음 다 좋은 마음인데 참 못됐다. 말은 그렇게 못되게 해 놓고, 멸치볶음에, 호박에, 김까지 챙겨서 딸네 집으로 향한다.



 

떡볶이 먹어, 어묵탕도 있어!


어쩌다 맛있게 돼서 너 주려고 아빠랑 엄마랑 먹다 말고 이렇게 싸왔어, 얼른 먹어봐! 따위의 앞뒤 스토리는 잘라버린다. 표현을 해도 되련만 괜히 공치사하는 것 같아서 그만 둔다. 하루 종일 육아에 시달린 딸은 좋아하는 떡볶이를 보고도 시큰둥한 표정을 짓는다. 당장 집이라도 들어올 만큼 호들갑을 떨며 분주했던 남편과 나는 그런 딸을 보며 같이 시큰둥해졌다.

 

와~ 맛있겠다. 언제 이런 걸 다했대, 근데 나 지금은 배 안고프니까 이따가 먹을께, 라고 말하면 얼마나 좋아, 그럼 이렇게 뻘쭘 안해도 되잖아. 하긴 갈비도 아니고 그깟 떡볶이 하나에 뭐 그렇게까지 호화로운 대답을 기대한단 말인가! 남도 아닌 내 딸한테!


밥때가 되어 딸이 떡볶이를 데우더니 먹기 시작한다. 

'엄마, 나 이거  먹어도 돼? 떡볶이 맛있네.'


이것이 고맙다는 표현이란 걸 엄마인 나는 안다. 누굴 탓할까, 애교 없고 퉁명스러워도 그 마음속엔 깊은 사랑이 있음을 같은 과 같은 속의 나는 알지만, 그래도 그 깊은 사랑 예쁘고 따뜻하게 표현하고 살면 좀 좋으냐! 우리 지금부터라도 꺼내어 보여주는 연습을 하자꾸나, 딸아. 


애 보느라고 아직 점심도 못 먹었지, 얼른 이리 와서 떡볶이 먹어, 어묵탕도 있어! 얼마나 맛있게 됐는데~ 아까워서 먹다말고 이렇게 갖고 왔어. 얼른 따뜻할 때 먹고 좀 쉬어. 내가 애 봐줄게. 


안그래도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이렇게 긴 대사를 과연 할 지 모르겠지만 표현하지 않는다면 누가 그 마음을 알겠는가! 연습만이 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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