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랜턴 Mar 19. 2024

출퇴근 육아를 하지만 가끔 집에서 외근도 합니다

손자들이 내 집으로 보내졌다. 

아침 6시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더 이상 잠이 올 것 같지 않아서 거실로 나왔다. 

새벽 기상에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 '카카오~톡'하며 딸의 문자가 들어온다. 심상치 않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큰 손자가 밤새 기침을 하고 미열이 있어서 아무 데도 못 가니 엄마가 돌봐주면 좋겠다는 내용의 긴급 메시지다.


어제저녁 딸이 분명히 말했었다. 오늘은 본인이 집에 있을 예정이니 엄마는 안 와도 좋다,라고. 그래서 나의 온전한 하루를 보낼 생각에 야심 차게 일찍 일어났는데, 날벼락같이 문자가 온 것이다. 


어쩌랴! 손자가 아프다는데... 

나의 자유로운 하루는 다음으로 미루고 온종일 손자와 함께 지낼 마음의 준비를 한다. 


유치원이 봄 방학 중인 일주일간, 큰 손자는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오늘도 어느 교회에서 시행하는 데이캠프

에 갔어야 하는 날이다. 그런데 기침을 하고 미열이 있으니 캠프에 보낼 수 없고, 일을 빼고 집에 있겠다는 딸은 본인의 개인 업무만으로도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니 아픈 아이 간호해 줄 여력이 없다.


그리하여 손자는 도시락이 들어있는 백팩을 메고 캠프로 가는 대신 우리 집으로 보내졌다. 지난주 내내 작은놈이 설사 때문에 어린이집을 못 갔는데, 이번 주에는 큰 놈이 감기다. 


아! 나의 시간들이 빈틈없이 육아로 채워지고 있구나! 


미끄럼은 못 타지만 표정은 우렁차다.


남편과 드라이브하려던 것을 포기하고, 큰 손자를 놀아주고 먹여주며 하루를 보냈다. 잘 놀고 잘 먹고 낮잠도 잘 자는 것이 얼마나 다행이던지, 저녁을 먹이고 제 집으로 데려다주고 나서야 쉴 수 있었다.




한 주가 지나고 다시 토요일, 주말이라 직장근무도 없는 날이고, 손자들 유치원도 쉬는 날인데 딸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불길하다. '엄마, 오늘 집 정리하려고 하는데 애들 좀 엄마집에서 봐줄 수 있어? 점심 먹고 갈 거 같은데 엄마가 저녁까지 먹여서 이따가 우리 집으로 데려다줄 수 있어? 그 대신 내일은 엄마 안 와도 돼.'


오늘 원래대로라면 나와 남편은 육아 없이 집에서 쉬는 날이다. 그리고 내일은 일요일이니 공식적으로도 육아가 없는 날이다.


어쨌든 오늘은 손자들 두 놈이 한꺼번에 왔다. 2019년 생 큰 손자와 2022년 생 작은 손자. 아무래도 지난주에 큰 손자를 너무 잘해서 보낸 탓이다. 작은놈은 천방지축이라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고 아직 말을 못 하니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는다. 혼자서 용변도 가릴 줄 아는 큰 손자와는 급이 다르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은 과자부터 준비하고, 주전부리보다 밥을 먹여야 한다는 나는 남자들과 싸울 마음을 준비한다. 손자들이 딸네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오늘은 글이고 뭐고 없다. 


출퇴근 육아는 기본이고, 바야흐로 내 집에서 하는 외근의 영역까지 개발되고 있는 중이다.



이전 12화 요즘 남자는 다 이런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